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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순마'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내게 다가온 라면

▲ 끓인 라면
ⓒ 정현순
오래 입어 물 빠진 블루진처럼 알맞게 색이 바란 알루미늄 냄비가 맹렬하게 끓는다. 투명한 물이 거센 분노 같은 포말을 분출할 때 봉지를 뜯고 스프를 꺼내었다. 스프가 떨어지는 순간 냄비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뒤튼다.

투명한 물은 얼큰한 질감의 국물로 변환된다. 무심한 눈길과 마음으로 라면을 넣었다. 이제는 기다림의 미학을 즐길 시간이다. 딱딱하고 건조한 밀가루 뭉치는 약 3분 뒤에 음식의 제왕으로 거듭날 것이다.

그것이 환골탈태할 동안 김치를 썰어 담고 그릇을 준비하는 것이 규정된 순서다. 뜨거운 면발을 냄비 뚜껑에 덜어 후루룩 삼킨 다음 잘 익은 김치 한 조각을 곁들이는 맛은 어디에도 비길 수 없다. 이렇게 맛있고 푸짐한 음식을 만드는 데 약간의 수고밖에 소요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매번 놀란다.

라면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채 열 살이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왈순마'라는 생소한 이름의 라면을 처음 보았는데, 이름이 생소하기 이전에 라면이라는 자체가 생소한 것이었다. 고급스러운 비닐봉투에 담긴 하얀 지렁이처럼 꼬불꼬불한 사각형의 밀가루 뭉텅이는 늘 먹었던 국수와는 전혀 달라 보였다.

그것만 보았을 때는 별로 입맛이 돌지 않았지만 찌그러진 알루미늄 냄비에 끓인 라면이 풍기는 냄새에 그만 넋이 나가버렸다. 꼬불거리며 요동치는 쫄깃한 면발과 개운하고 기름진 국물의 앙상블은 황홀한 협주곡과 완벽한 황금분할을 합친 것 같았다. 정신마저 몽롱하게 만드는 그것은 모차르트와 렘브란트를 처음 대했을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모자라지 않을 감흥이었다.

면발 사라져도 국물에 찬밥 말 수 있어 행복

이후부터 라면이 없는 삶은 결코 상상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에 연탄아궁이나 석유곤로 앞에 쭈그리고 앉게 된 것은 언제나 거기서 끓이는 라면 때문이었다. 물이 왜 그렇게 더디게 끓는지 몇 번이나 뚜껑을 열어보기 일쑤였으며 마침내 다 익은 라면을 보고는 마냥 행복할 수 있었다.

동생들과 젓가락을 다투다 보면 면발은 어느 틈에 진한 아쉬움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지만 남은 국물에 찬밥을 말아서 충분히 포만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국수와 함께 먹는 날이 더 많았다. 식구가 많다 보니 국수에다 라면 한두 개를 넣어 삶았는데, 가끔가다 건지는 라면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한 솥 가득 삶아낸 국물에 포함된 스프의 비율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라면 스프가 들어간 국물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어렸을 때 흔하게 먹던 멀건 국물의 국수는 정말 지긋지긋했어도 라면이 들어간 국수는 두 그릇은 거뜬히 비워낼 수 있었다.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최고의 환대가 계란을 풀어 넣은 라면이었으니, 더 이상 말해 무엇 하리오.

중학생이 된 다음부터는 학교 근처에 있는 분식집을 자주 찾게 되었다. 버스비를 털어 라면을 사 먹고는 다섯 정거장을 걷는 수고쯤은 흔쾌히 감내할 수 있었다. 거기서 먹는 꼬들꼬들한 라면은 집에서 먹는 것과는 전혀 다른 공정과 비법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시원한 색상의 큼직한 플라스틱 그릇에 송송 띄운 파와 함께 다소곳이 김을 올리는 라면은 보는 자체로 행복감을 주었다.

가지런히 썰어낸 개나리 빛깔의 단무지도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었다. 내가 짝사랑하던 이은미 - 어쩌면 이름도 그렇게 예쁜지 모르겠다 - 라는 여자아이를 우연히 분식집에서 만났는데, 그 아이가 라면을 먹는 모습에 그만 숨이 막혔다.

음식을 먹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눈부시게 하얀 교복을 맵시 있게 차려 입은 바비 인형이 얌전하게 라면을 먹는 것만 같았다. 그녀가 자장면이나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면 오래 기억되기는커녕 짝사랑의 거래처가 다른 곳으로 변경되었을 확률이 컸다. 그만큼 라면은 자신을 먹어주는 사람의 외모까지 배려해 주는 고마운 음식이다.

라면 없는 세상은 상상 불가

술을 알게 된 다음부터 라면은 해장국의 기능도 겸하게 되었다. 내 라면요리 솜씨가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신 김치를 넣는 것은 기본이었고 오뎅이나 김을 넣어도 좋았다. 콩나물을 넣어 끓인 라면 국물은 숙취 해소에 최고이며 햄이나 소시지를 넣어도 훌륭했다.

라면은 군림하지 않으면서 모든 음식을 넉넉하게 포용하는 군자의 미덕이 있다. 게다가 라면은 김치와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우리 민족의 상징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김치와 라면은 따로 구획하여 생각하기 어렵다. 잘 끓인 라면에 알맞게 익은 김치는 생각만 해도 황홀한 카타르시스가 철철 넘친다.

하늘이 유비를 내고 공명을 내었듯, 김치를 내고 라면을 낸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라면은 가격과 양, 맛의 모든 면에서 밥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민식품'이다.

그렇게 좋아했던 라면에게 배반을 당한 것은 1987년의 여름, 스님처럼 머리를 박박 깎고 훈련소에 입대했을 때였다. 얼마나 닦지 않았는지 기름때가 꼬질꼬질한 식판에 담긴 라면은 봉지 안에 들어 있을 때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끓이지 않고 스팀으로 쪄낸 다음 따로 준비한 국물을 부어준 그것은 도저히 라면이라고 할 수 없었다. 억지로 먹기는 하였지만 생존의 법칙에 의했을 뿐이었다. 훈련소의 라면은 정말 최악이었지만 그곳을 나온 직후부터 다시 최고의 음식으로 거듭났다. 군대를 가본 남자들이라면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라면에 최우선 순위를 부여할 것이다. 그것을 끓이는 도구가 연탄아궁이에서 석유곤로로 바뀌고 다시 가스레인지로 기능이 향상됐지만 라면의 가치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가격과 노력에 비하여 이렇게 푸짐한 포만과 맛을 선사하는 음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계속 라면과 함께 하기를 바라며 오늘도 라면을 끓여 먹어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라면, #왈순마, #국수, #김치, #찬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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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권 출판을 목표로 하는 재야사학자 겸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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