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아마 '노무현' 다음으로 '싸가지'라는 표현일 것이다. 이른바 김영춘 어록이라 불리는 "유시민은 왜 저토록 옳은 얘기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할까"라는 말이 늘 따라다닌다. 이에 대해 유시민 의원은 "그 말이 맞을 수 있다"며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고 순순히 인정했다.
21일 <오마이뉴스>의 유시민 인터뷰 두번째 파트는 그의 '말'에 관해서다. 말은 사랑을 낳기도 하고 미움을 낳기도 한다지만 유시민에겐 너무 극단적이다. 한 치의 오차범위도 허용하지 않을 듯한 유시민의 매서운 말투가 최근 들어 달라졌다. "말은 공감을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최근 들어 깨달았다고 한다.
사실, 내면의 변화는 2년 전부터 일어났다고 한다. 2005년 지방선거 패배로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보건복지부 장관 입각을 앞둔 즈음이다. 그 전에는 "알면서도 일부러 엇나갔다"고 말한다. 왜 그랬을까? 유시민의 '싸가지'를 논하는 대목에선 그 자신, 솔직하고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다가도 가장 자신이 멋있어 보일 때는 "아무리 생각해도 축구하다가 골을 넣었을 때"라며 크게 웃었다.
- 2002년 12월 18일 밤, 정몽준씨가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을 때 유시민이 대단한 역할을 했다. 당황해하던 노무현 지지자들에게 "이길 수 있다, 투표율을 높여라"는 긴급 격문을 썼는데, 그러한 자신감은 판세를 계속 지켜본 이의 과학적 확신이었나, 패색이 짙은데도 벼랑 끝 선동을 해본 것인가.
"확신이었다. 밤 10시 40분경에 퇴근길에 자가용을 타고 일산 집을 향해 자유로를 달리고 있는데 '정몽준 건'에 대한 전화를 받았다. 바로 차를 돌려서 선거 사무실로 갔다. 30분간 그동안의 판세 데이터를 분석하고, 30분 만에 그 글을 썼다."
- 그 분석력, 기민함… 그 글을 본 독자들이 '노빠'를 넘어 '유빠'로 형성되는 것을 보면서 나(오연호)는 '다음은 유시민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도 그렇지만, 주변을 보면 '유시민이 다음 대통령감'이라는 바람이 언제부턴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아까 노 대통령에게 유 의원이 출마 결심을 전했을 때 '더 상처받을 수 있을 것 같아 걱정이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는데, 왜 상황이 이렇게 됐나? 이렇게 5년 후에 대통령 출마까지를 고려했다면 2002년 이후 좀 '관리'를 했어야 하지 않나.
"다음은 유시민? 그런 바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위치까지 가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계속 부딪친 측면이 있다. 나에게 다음에 대통령에 출마해야 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그래서 정치 더 안할 거라고 생각하고 일부러 부딪히고, 주변 사람들을 안 챙겨주고 그랬다. 자유롭게 사는 삶에 대한 갈망이 커서 정치인으로서는 불성실한 면이 있었다. 선출직 공직자로서는 책임성이 부족한 면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여기까지 와버렸으니…, 어떻게 해?"
이 때, 배석해 있던 허동준 정무특보가 끼어들었다. 유 의원에게 받은 상처를 폭로했다. "내가 아는 유시민은 그렇지 않은데 사람들이 자꾸 욕을 하니까 한번은 만나서 그랬다. '의원님 그렇게 하지 마세요'."
그런데 돌아오는 답은 너무 간명했다. "나 정치 안 할 거야!" 그 때 허 보좌관은 "확 돌았다"고 한다.
유 의원의 해명이 이어졌다.
"내가 공적인 영역에서 들어오는 인신공격에 대해 반박할 수 없는 게 그 때문이다. 알면서 일부러 엇길로 갔다. 겉으로는 화딱지가 나지만 속으로는 되게 찔린다. 내가 날 아는데 사람들도 그걸 감지하는 거다. 국민들은 귀신 같이 안다. 특정 이미지가 고착되어 있다면 분명히 내 안에 그런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머리 위에서 정치인들을 본다. 정말 무섭다. 거기에 맞출 자신이 없었다. 책임의식이 부족한 것과 관계가 있다.
인생이 그렇지 않나. 거울 보면 보인다. 검게 도드라진 눈물주머니, 축 처진 몸매. 이제는 마음먹어도 못하는 나이로 가고 있구나. 욕심 부려서 안 되는 일도 되게 하는 나이가 지났구나. 중년남자가 느끼는 것을 느낀다. 지난 5년 동안 많은 일을 저지르고 겪고, 하고 싶은 대로 해봤기 때문에 집착하고 무리한 욕심을 낼 이유가 없다."
- 이른바 김영춘 어록이라고들 하는데 "어떻게 저렇게 옳은 소리를 저렇게 싸가지 없게 하느냐"는 지적이 있었다. 그런 평가를 어떻게 받아들이나.
"김영춘 말이 맞을 수 있다. 나는 논리적이라고 말을 했는데 그 말이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내 안에서도 그런 지적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복지부장관으로 갈 때부터 나를 바꾸려고 노력했다."
- 그런 '싸가지' 이야기들이 나오다 보니 2002년에 '유빠'였던 사람들이 언제부턴가 '나 유시민 지지해'라는 말을 자신 있게 하지 못하게 된 것 아닌가.
"사실 그동안 많은 나의 지지자들이 당신 스타일을 바꿔달라고 요구해왔다. 모임에서 만나면 조용히 와서 아주 우회적으로 그런 지적을 해왔다. 그런데 내가 그걸 거부하고 버텨왔다. 그러다가 2005년 11월 보건복지부장관으로 가기로 결정하면서 그런 요구들을 받아들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그러면 2005년 11월 이후 자신이 상당히 변화되었다고 느끼나.
"사실은 2005년 6, 7월 지도부에서 나오면서 변화는 왔는데 행동으로 옮길 기회가 없었다. 그 전에 의원총회에서도 '죄송하다'고 2번 사과했다. 그런데 아무도 인지하는 사람이 없고 또 내면의 변화를 밖으로 드러낼 방법도 없지 않나. 내 마인드를 바꾸고 정을 붙이고 성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에서는 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내각으로 가서 일을 더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 유시민에게 '말'은 아주 대립적인 두 측면이 있다. 유시민의 말에 '후련하다'고 하고 다른 쪽에선 등을 돌리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유시민에게 말은 어떤 의미인가.
"말은 공감을 위한 수단이다. 말로서 이루고자 하는 종착점은 정서적 공감이다. 소통의 최종 목적은 공감에 있다. 최근에 든 생각이다. 내 말은 한편에선, 우리 사회 뿌리 깊게 존재하는 낡은 정치에 대한 분노를 자극하고 대변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나의 메시지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에겐 반감을 줬다. 메시지에 동의하지 못해도 정서적 반감까지는 가지 않을 수 있었다. 정치인으로선 결점이다.
장관하면서 많은 충고를 받았다. 공무원들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일하지 않는다고 한다. 보는 앞에서 복종하는 것 같지만 뒤돌아서서 가면 움직이지 않는다. 최소한으로 움직인다. 그게 굉장히 나를 성장하게 했다. 복지부에 있을 때 공무원들과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지 그 공감을 이루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 저기 유시민이 뛰고 있는 운동장에 1만 유티즌들이 신나게 놀고 있다. 그 주변을 과거 '유빠'였다가 상처받은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다. 이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나.
"글쎄… 다들 선량한 생활인들일 텐데…. 참 관계란 게 어렵다. 정치인과 지지하는 유권자로서 관계를 맺는 것인데 인위적으로 규정이 안 된다. 이제까지 나는 투표로, 15억 소액 후원금으로, 인터넷의 댓글로 사랑을 받았다. 나는 뭘 줄 수 있을까? 후련한 느낌? 꼭 그것일까? 아닐 것이다. 저를 좋아하는 분들이 주변에 당당하게 만들 수 있도록 해야겠다. 주변의 반응이 좋을 때 아, 내가 정말 좋은 사람을 지지하고 있구나 라고 행복을 느끼지 않을까.
정치는 결국 그런 것 같다.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어야 하는데 소수의 지지자에게는 큰 기쁨을 줬을지 몰라도 그 외 널리 있는 지지자들에게는 기쁨을 주지는 못한 것 같다. 내가 돌려드릴 게 있다면 유시민과 즐거웠다, 후원금 보낸 게 잘한 일이다, 또 주변에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인 것 같다.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 5년 동안 정말 가파른 성장을 했다.
"더욱 겸손하고 배려해야 했는데… 그런 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 했으니 국민이나 다른 정치인들에게 어떻게 보였겠나. 국민들은 정치인의 그릇 크기를 재면서 본다. 이제는 겁도 알게 되었다. 사는 게 그런 게 아닌가. 부딪치고 느끼고 돌아보고 후회하고 다시 희망도 품어보고 그렇게 그렇게 가는 것 아닌가."
- 인터뷰 서두에 대통령 되는 게 겁나는 일이라고 했는데 왜 이 두려움의 세계로 자신을 던져야 되겠다고 생각했나.
"편안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답이 있는데 엉뚱한 데 가서 싸우는 게 안타까웠다. 내 나름의 답을 가지고 있는데 국민에게 말을 안 하고 돌아서는 게 도리인가 싶고. '지식 소매상'으로 돌아가서 책 쓰면 살 수 있지만 그건 나중에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직접 나서는 것은 지금 아니면 못하는 것 아닌가. 도전이다. 전망은 지극히 불확실하지만 내가 구한 답을 한번 내놓고 동의를 구해보고 싶다. 잘 되면(대통령이 되면) 하루하루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가다가, (임기) 5년이 지나면 아무도 더는 정치하라는 얘기 안할 것 아닌가. 흐흐흐."
- 정치인 유시민에 대해 '제대를 기다리는 공익근무요원'이라고 말해 왔는데.
"늘 그런 마음이었다."
- 자연인 유시민은 행복한가.
"별로 안 행복하다. 더 행복한 길이 다른 데 더 있는데…."
- 유시민에게 정치는 뭔가.
"한 사람의 생애가 자기가 바라는 마음으로 채워지기 어렵다. 내가 선출직 공직자로서 갖는 책임감이 있는 한편, 자유와 개인적 행복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늘 후자가 우세한 분위기에서 정치생활을 했다면 최근 2년 동안에는 책임의식이 지배적이었다. 지금은 책임의식이 주도하고 있다. 자유의 길은 접었다.
사람은 누구나 복수의 페르소나(persona)를 가지고 있다. 집에서 자상한 아버지가 혹독한 상사가 될 수 있고, 학교에서 인기짱인 남자가 애인에겐 폭력남이 될 수 있다. 나는 공직자로서 마땅한 페르소나를 표출하지 못했다. 마음의 힘이 곧 내공인데 그런 점에서 박근혜씨를 보면 자기를 통제하는 능력이 놀라운 사람이다. 초인 수준이다. 내가 배워야 할 점인데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에게 굉장히 필요한 강점이다."
- 스스로 가장 멋있다고 생각할 때는.
"아무리 생각해도 축구하다가 골을 넣었을 때다. 하하하. 최고로 멋있다."
덧붙이는 글 | 유시민 의원과의 이 인터뷰에서는 정태인씨(전 청와대 국민경제 비서관, 현 민노당 FTA저지 사업본부장) 이야기도 있었다. 정태인씨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30년 친구 유시민과 결별했다, 한미FTA찬성한 그와는 더이상 친구가 아니다, 낚시도 함께 가지 않겠다"고 한 것(오연호리포트: 선택2007대선5)에 대한 유시민의 답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오연호리포트>에서 곧 다룰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