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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이형모 전 사장의 성희롱에서 촉발된 시민의신문 경영공백 사태가 최근 이사회 전원이 사퇴하면서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 전 사장이 시민의신문 편집국장, 노조위원장, 기자 등 6명을 상대로 1억8천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지난 1월15일자를 끝으로 3주째 신문 발행이 중단되는 등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이형모 전 사장의 성희롱에서 촉발된 시민의신문 경영공백 사태가 최근 이사회 전원이 사퇴하면서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 전 사장이 시민의신문 편집국장, 노조위원장, 기자 등 6명을 상대로 1억8천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지난 1월15일자를 끝으로 3주째 신문 발행이 중단되는 등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독자들의 알권리를 위해 이번 사건(이형모 전 <시민의 신문> 사장의 성추행) 기사를 게재했다는 기자들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으며, 이런 점에서 기사 게재에 대해 공익성이 인정되어 고소인(이 전 사장)을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검찰은 전 <시민의 신문> 기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사주라 하더라도 그가 일으킨 성추행 사건은 보도의 예외일 수 없다는 뜻이다.

서울서부지검은 지난 7일 이 전 사장이 자신의 성추행 사건을 보도한 편집국장과 기자, 노조위원장 등을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소송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기사 내용을 살펴보면, ▲피해자가 당시 정황을 아주 구체적으로 적시한 점 ▲피해자가 수치심을 무릅쓰고 허위 주장을 할 이유가 없는 점 ▲이 전 사장이 피해자의 주장을 인정하고 대표이사직을 물러난 점 등을 비춰볼 때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검찰은 독자들의 알권리와 기사의 공익성, 신문의 정체성 등을 강조하며 이번 보도가 사주를 비방할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시민운동가로서 공인인 이 전 사장의 성추행을 보도할 책무 때문에 기사를 실었다"는 기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셈이다.

기자들은 "당연한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피의자 중 한 명인 이준희 당시 노조위원장은 2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사주의 성추행을 보도한 우리들의 의도를 검찰이 인정해줘서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자들은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시민의 신문> 사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2월 27일 오전 이사회의 주주총회 강행을 앞두고 프레스센터 앞에서 규탄집회를 열었다.
'<시민의 신문> 사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2월 27일 오전 이사회의 주주총회 강행을 앞두고 프레스센터 앞에서 규탄집회를 열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시민의 신문> 기자들의 현실

이 전 노조위원장은 지난 4월말 정리해고됐다. 이미 4개월간 임금이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이 전 노조위원장뿐만 아니라 당시 남아있던 5명(출산휴가자 1명 포함)은 "경영 악화로 인해 더 이상 신문사를 운영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사장의 성추행 사건을 보도한 뒤 노사 갈등을 심해졌고, 이 전 사장이 사퇴한 뒤에도 신문 발행 중단, 경영 악화, 신임 사장 인선 실패 등의 악재는 계속됐다. 편집국, 광고국, 업무국 등 33명의 직원들은 생존을 위해 <시민의 신문>을 떠나야 했다.

독자의 알권리와 공익을 위해 사주의 성추행 사건을 알린 기자들에게 지면이 없어진 셈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35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시민의 신문> 사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도 동력을 잃기는 마찬가지였다.

공대위를 제외한 시민사회는 성추행 사건 이후 <시민의신문>의 내홍에 대해서도 무관심했다. 이 전 사장의 성추행 사건에 적극적으로 칼을 들이대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1993년 <시민의 신문> 창간 당시 "한국 시민운동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던 취지에 비해, 이 신문의 오늘은 참담했다.

최문주 전 노조부위원장은 "이 전 사장에 대항해 싸우던 세력이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이번 사태에 책임있게 대처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지만, 싸운 보람이 무엇인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이 전 사장의 성추행과 같은 사례가 또 발생하면, 시민사회는 어떻게 대처할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9월 이형모 전 사장의 성희롱에서 촉발된 시민의신문 경영공백 사태가 최근 이사회 전원이 사퇴하면서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 전 사장이 시민의신문 편집국장, 노조위원장, 기자 등 6명을 상대로 1억8천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지난 1월15일자를 끝으로 3주째 신문 발행이 중단되는 등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이형모 전 사장의 성희롱에서 촉발된 시민의신문 경영공백 사태가 최근 이사회 전원이 사퇴하면서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 전 사장이 시민의신문 편집국장, 노조위원장, 기자 등 6명을 상대로 1억8천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지난 1월15일자를 끝으로 3주째 신문 발행이 중단되는 등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성추행 가해자는 남고, 이를 알린 자들은 떠나고…

기자들의 참담한 현실과는 달리 <시민의 신문>은 복간의 기지개를 펴고 있다. 신문사는 이달초 경력·인턴 기자를 모집하면서 "전통과 정론을 자랑하는 <시민의 신문>이 복간을 앞두고 21세기 '희망지킴이'로 자리 매김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고 채용 공고를 냈다.

이 전 사장은 여전히 <시민의 신문>의 대주주다. 그의 성추행을 알린 기자들은 언론사를 떠나고, 성추행 가해자는 남은 셈이다.

기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악화됐던 경영이 지난 몇달새 정상화됐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전 사장과 맞서다가 정리해고 되거나 회사를 떠난 기자들의 빈 자리에 새로운 인력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언론사의 재량이다. 하지만 사주의 성추행을 알린 기자들에 대해 '괘씸죄'가 적용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저 다시는 사주의 성추행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덧붙이자면, 이 전 사장이 전 <시민의 신문> 기자 6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아직 진행중이다. 3차 변론이 이달말 열리고, 1심 판결은 다음달 중순께 나올 계획이다. 법원은 이번에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이형모#<시민의 신문>#성추행#불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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