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2일 참여정부는 소득세 과표구간 조정을 골자로 하는 감세안을 발표하였다. 이로써 참여정부의 조세정책은 감세로 시작하여 감세로 마감하는 일관된 모습을 보였다.
올해는 대선국면이다. 따라서 이 감세안이 대선국면에서 지닐 의미를 분석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번 감세조치는 범여권 대선판 전체에는 위기로 작용할 것이고 일부 대선후보에게는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우선, 감세조치가 왜 위기가 되는지 보자.
혹시 범여권에서 이번 감세조치로 떨어진 지지율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 이는 착각도 매우 큰 착각이다. 감세는 이미 한나라당의 대표 상품이 되었다. 범여권에서 아무리 감세를 주장하고 생색을 내봤자 한나라당에서 '감세를 그 정도밖에 못하냐? 우리는 화끈하게 이 정도 할 수 있다'고 성명서 한 번 내면 끝이기 때문이다. 범여권에서 감세를 주장하는 것은 남의 무대에서 춤추는 꼴이다.
이명박 '삽질경제' 넘을 핵심고리는 복지 중심 '창조경제'
한나라당 후보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으로 결정되었다. 이로써 범여권으로서는 '삽질경제' 대 '창조경제'로 대결구도가 설정되는 것이 유리하다. 삽질경제에서는 시멘트와 포클레인이 성장 동력이지만, 창조경제에서는 창조적 인간이 성장 동력이다. 따라서 사회의 모든 시스템은 창조적 인간을 양성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야 한다.
100명 중 10명만 상대로 인재를 양성하는 사회와 100명을 전부 다 인재로 양성하는 사회는 그 역동성이 다르다. 따라서 역동적인 창조경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건 부잣집에서 태어났건 모두 다 창조적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공평한 학습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대학원까지 학비가 안 드는 것은 물론 생활비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 핀란드의 평생학습시스템이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창조적 인간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복지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아프고 배고픈 상태에서는 공부하고 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생활이 고통스럽고 미래가 불안한 상황에서는 창조적 능력이 발휘될 수 없기 때문이다.
창조경제에서는 복지가 성장과 대립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성장의 기반이 된다. 따라서 교육, 사회복지 등에 국가재정이 가장 우선적으로 투입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정반대다. 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이 미국과 일본의 절반 수준이고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현재 한국 여건에서 창조경제를 주장하려면 복지지출의 과감한 확대를 주장해야 한다. 복지지출과 감세는 양립할 수 없다. 이에 대하여 정치는 어차피 립 서비스인데, 두 가지 다 주장하면 어떠냐고 할지 모르겠다.
불과 몇 달 전 일을 상기해보자. 올해 학기 초 대학생 등록금 인상 문제가 한참 불거졌을 때 한나라당에서 과감하게 등록금을 절반으로 내리겠다는 정책을 내놓았다. 이에 대하여 여론은 싸늘했다. 감세를 주장하면서 무슨 수로 매년 5조원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국민의 눈을 그렇게 만만히 보아서는 안 된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각(즉, 대립구도)을 잘 세워야 한다고 한다. '삽질경제 대 창조경제'의 각은 결국 '감세 대 복지'의 각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부가 감세를 실천에 옮겨 미리 김을 다 빼버렸으니 범여권에서는 이제 무엇으로 각을 세우고 승부를 걸 것인가?
반대로 이러한 범여권 진영의 위기는 일부 배짱과 소신이 있는 후보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정부의 감세안 발표를 계기로 유사 한나라당 후보 및 맹신적 친노 후보와 차별화를 꾀하며, 이명박식 '삽질경제'와 가장 첨예한 각을 세울 수 있다면 군계일학으로 등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세구조 역진성 강화할, 정당성 없는 방안
미래의 군계일학 후보를 위해 몇 가지 사실을 더 밝히겠다.
정부의 이번 감세안은 창조경제와 대립될 뿐 아니라 조세의 형평성 차원에서 보아도 정당성이 없다. 정부는 이번 감세안으로 서민과 중산층이 가장 큰 혜택을 본다고 밝히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연간 급여 3천만원 이하인 노동자는 과표구간 조정으로 인한 감세혜택이 전혀 없다. 2006년 기준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254만원이므로 연간 급여 3천만원이면 평균임금에 해당한다. 평균임금 이하의 노동자가 한 푼의 감세혜택도 못 받는데 서민과 중산층이 가장 큰 혜택을 본다니 이게 무슨 궤변인가?
개인소득세는 소득재분배 기능이 가장 높은 조세다. 2004년 기준으로 한국의 GDP 대비 개인소득세 비중은 3.4%로서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참고로 OECD 평균은 9.1%이다. 낮은 개인소득세 비중은 한국의 조세구조가 역진적이라고 비판을 받는 가장 큰 이유다. 이번 감세조치로 한국 조세구조의 역진성은 국제적으로 다시 한 번 더 평가를 받을 것이다.
이번 개인소득세 과표구간 조정의 가장 강력한 이론적 토대는 명목소득 상승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그 자체로만 보면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세금을 복지와 연결시키면 사정은 다르다. 물가가 오르면 국가의 복지지출도 그만큼 오르게 마련이다. 따라서 물가가 오른 만큼 세금을 조정한다면, 세수는 물가인상분만큼 증가하지 못하지만 복지지출에 필요한 재정은 물가인상분만큼 늘어나므로 국가의 실질적 복지지출규모는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된다. 정부의 감세논리는 세금을 복지와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는 극단적 신자유주의 논리 외에 다름 아니다.
부자 지갑 불리고 빈자 외면... 극단적 신자유주의 논리
이번 감세정책은 참여정부의 성격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2006년 신년연설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증세를 주장하였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참여정부를 세금폭탄 정부라고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최초 조세정책은 2003년 말 법인세 2%P 인하였고 두 번째 조세정책은 2004년 말 소득세 1%P 인하와 특소세 대폭 축소였다. 이로써 연 약 4조원의 재정이 줄어들었고 그 대부분은 상위 10%의 부자와 0.5% 이내 대기업의 주머니 속에 들어갔다. 올해 4월 임시국회에서는 해외투자펀드를 통한 소득에 비과세하여 연간 약 5천억원의 세수를 날렸고, 이번 8·22 감세조치로 향후 2년 동안 3조원이 넘는 돈이 또 날아간다.
그리고 올해 하반기부터 건강보험재정 부족을 이유로 1급 의료수급권자에게 외래진료비를 1000~2000원씩 받기 시작하였다. 저출산을 걱정하면서도 재정부족을 이유로 공공보육시설 확충에는 반대하고 있으며 아동수당 도입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2학기 등록을 앞두고 대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고민이다. 결식아동 수는 30만명을 넘고 있으며 생활고에 의한 자살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아직 참여정부에 미련이 있는 대선후보와 유권자들은 이번 기회에 과감히 껍질을 벗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이번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정권을 내주지 않는 첫 번째 의미 있는 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