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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22일 늦은 8시. 용산 철도웨딩홀에서 백기완선생 통일강연이 열렸다. 이날 강연회에는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철도노조원, 시민, 학생 등 200여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흰모시로 마름질한 우리옷에 두루마기를 차려입은 백기완 선생이 느릿느릿 연단으로 올라와 말머리를 풀었다. 건강이 편치 않으시지만 여든 가까운 연세 답지 않게 혈기가 넘쳤다. 목소리는 20년전 대선에서 민중대통령 후보로 토해내던 쇳소리 보다 더 깊고 우렁찼다.
백기완 선생은 올해초 인왕산을 오르며 누군가를 향해 '내가 한 일이 있어? 아무것도 없어...'라고 혼잣말로 서글픔을 풀었는데, 이 날 강연 머리에서 그 마음을 비치면서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우리말로 해야 제 뜻을 쉽고 제대로 담을 수 있다면서 한자나 미국말로 그릇 쓴 뜻들을 바로 잡아 가면서 풀어갔다.
'정상(頂上):summit '은 꼭대기란 뜻인데 이런 수작 대신 우리말인 '뚝샘'을 내세웠다. '뚝샘'이라 함은 '박차고 솟구쳐 가뭄으로 메마른 땅을 적시고 없던 길을 내던 샘'이란다. 두 낱말의 서로 대비되는 뜻을 살피면서 남북정상회담에 참과 거짓을 헤아려 보려했다.
"이번 만남을 두고 다음 정부에서 할 일이니, 대선 전략이니, 인기만회니 말들이 많은데 당파의 이익만을 두고 내뱉는 쪼잔한 생각들"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통일문제는 우리끼리야 백번 천번 만나야 하고, 지금 당장 만나야 하고, 우리끼리 결단을 내려야 할 급박한 문제인 까닭이다.
그러나 "노무현씨는 허무주의에 빠져 그 동안 중요한 몇가지 일들을 그르쳐 왔으니 자격미달이고 걱정"이라고 했다.
"역사 허무주의로 미국의 이라크의 침략전쟁에 이끌려 파병을 한것이 하나요. 민족 허무주의로 에프티에이를 체결하면서 미국경제의 한 주로 편입되었으니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만 것이 또 하나요. 세속 허무주의로 미국의 신자유, 신자본이 대세라며 끌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힘에 눌려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허무주의가 이러한 행태를 낳고 있다"고 꾸짖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모순된 이중구조에 빠져 있기 때문에 이런 정상의 만남도 말릴 수만은 없는 일"이라며 남측이 들고갈 의제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1. 북핵문제를 넘어 세상에 '모든 핵무기 없애기 인류양심 한반도 선언'을 할 것
2. '한반도평화협정'을 맺을 것
3. 국제동맹과 평화문제를 교란시키는 '미군을 철수'할 것.
4. 남측의 국가보안법 및 북측의 국가보안법과 유사한 악법들을 함께 없애는 선언을 할 것
5. 남측은 쌀 지원, 비료 공장 짓기, 전기를 도와 주고, 북측은 나라 밖으로 가는 자원을 남측에서 개발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하여 '남북서로돕기 한 가락 더 높이기'"
덧붙여, "'자본주의 문명'가지고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다"고 했다. "2천년전에는 굶어 죽는 사람이 없었는데, 자본주의 체제인 현실은 하루에 3만이 굶어 죽고, 5천이 목타 죽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땅별의 낱알 생산량은 넘치고 남아 도는데 이는 자본주의의 독점과 독식 탓"이라 했다. "자본은 전쟁과 무기를 바탕으로 지탱하는 것이고 평화를 위협하게 되어 있으니 전쟁이 그칠 날이 없다"고 걱정했다.
담을수록 오그라지는 망태를 '쫄망쇠'라고 한다. 채우면 채울수록 자꾸 커지는 그릇은 '바라'라고 한다. 남북 정상이 만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쫄망쇠같은 욕심으로, 자기 것만 챙기려 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시월 남북만남에 잊지말고 진정 가져가야 할 것은 '손수건 한장'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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