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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충무로에서 인쇄물 제작 업체를 운영하는 하아무개씨는 '쿽 익스프레스 6.5k'를 샀지만 정작 사용하지는 못하고 3.3k 버전을 사용하고 있다.
서울 충무로에서 인쇄물 제작 업체를 운영하는 하아무개씨는 '쿽 익스프레스 6.5k'를 샀지만 정작 사용하지는 못하고 3.3k 버전을 사용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4일 안에 컴퓨터마다 250만원짜리 정품 소프트웨어를 사라고 우편물이 날아왔다. (칼로) 푹 찔러놓고 안 사면 불법복제 고발하겠다는 거다. 그것도 당장 쓸 수도 없는 프로그램이다. 유예기간도 없다. 이러니 분통 터진다."

서울 충무로에서 출판물 제작 업체를 운영하는 하아무개씨의 말이다. 하씨는 "요즘 출판업계는 '쿽'의 높은 가격과 고압적인 불법 복제 단속으로 힘들어하고 있다"고 밝혔다.

'쿽'이란 미국 쿽(Quark)사에서 내놓은 출판·편집 프로그램인 '쿽 익스프레스(Quark Xpress)'를 말한다. 이는 출판·디자인·출력 회사 등 출판업계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프로그램이다.

현재 한국 출판업계에서는 제품의 높은 가격 등으로 지난 94년에 출시된 3.3k버전을 불법 복제해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 쿽사는 2005년 6.5k버전을 내놓은 이후, 한국 쪽 법률 대리인을 통해 불법 복제 단속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영세 출판 업체들은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하씨는 "당연히 정품 쓰는 게 맞다"면서도 "불법 단속을 하면서 250만원 하는 프로그램을 며칠 안에 사라고 한다, 그럴 여건이 안 된다"고 말했다.

"단속이 너무 고압적이다"는 하씨의 얘기를 듣기 위해 그의 사무실에 닿은 건 21일 오후 3시께. 직원 한명과 함께 2~3평(6.6~9.9㎡) 정도 되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그는 자신의 형편을 출판업계의 평균 수준이라고 소개했다.

당장 쓸모없는 프로그램 구입... "분통 터진다"

하씨는 먼저 S 법률사무소로부터 지난 3월 26일 받았다는 우편물을 보여줬다. 우편물에는 "쿽사를 대리해 서신을 드린다"며 "컴퓨터 프로그램 저작권 침해 행위를 중단하고 정품 프로그램을 구입할 것을 촉구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어 "3월 30일까지 정품 프로그램 사용여부에 관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 법적 책임을 추궁하기 위한 신속한 조치에 착수할 것이다"고 쓰여 있었다.

하씨는 "30만원 월세도 빠듯한데 4일 안에 250만원 하는 '쿽 익스프레스 6.5k' 2개를 사라는 건 말도 안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너무 부담돼서 1개만 카드를 긁어 샀다"며 "컴퓨터 한 대는 놀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씨는 "그 전에 '쿽 익스프레스' 한국 내 독점 판매사인 인큐브테크 실사팀이 찾아와서 불법복제 사실을 확인하고 구입 유예기간을 주겠다고 했지만 결국 뒤통수를 쳤다"고 말했다.

하씨는 또한 "비싼 돈 주고 산 6.5k버전은 당장 사용할 수 없다, 분통 터진다"고 밝혔다. 현재 대부분의 인쇄물 출력소는 가격부담 때문에 10년도 더 된 3.3k버전을 사용한다. 그런 이유로 기획디자인·인쇄물 제작 업체 역시 3.3k버전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하씨는 "계속 불법 복제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정품을 사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어 "가격이 150만원 정도만 되거나, 구입 유예기간·구입 비용 분할 납부·구매 개수의 유연한 적용 등이 가능해지면 사라고 하지 않아도 살 것이다"고 밝혔다.

하씨는 또한 "(쿽사가) 영세한 한국 출판 업계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싼 가격에 강압적으로 마케팅하고 있다"며 "독점 기업이기 때문에 한국시장을 물로 보고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S 법률사무소에서 보낸 내용증명우편. 하아무개씨가 3월 26일에 받은 이 우편물에는 '3월 30일까지 정품 컴퓨터 프로그램의 사용여부에 관한 확인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 법적책임을 추궁하기 위한 신속한 조치에 착수할 것이다'고 나와있다.
S 법률사무소에서 보낸 내용증명우편. 하아무개씨가 3월 26일에 받은 이 우편물에는 '3월 30일까지 정품 컴퓨터 프로그램의 사용여부에 관한 확인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 법적책임을 추궁하기 위한 신속한 조치에 착수할 것이다'고 나와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쿽사의 정책은 강매이자 협박이다"

경남 김해에서 인쇄물 제조 업체를 운영하는 김영준(가명)씨 역시 '쿽'에 대한 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김씨는 "('쿽 익스프레스 6.5k'를) 250만원에 판다는 건 폭리를 취하는 도둑이다"고 소리 높였다.

김씨 역시 지난 6월말 S 법무법인으로부터 "7월 10일까지 정품 사용여부 확인 조치를 해달라"는 우편물을 받았다. 김씨는 "정품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영세한 대부분의 출판 업체들은 보름 안에 도저히 수 백 만원을 마련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겨우 8월 초 카드 할부로 프로그램을 구입했다. 김씨는 "분납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권고기간도 없이 이렇게 하는 것은 강매이자 협박이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이어 "당장 쓰기 위해서는 사는 게 아니라 단속 피하려고 산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오혜경 '서울특별시 인쇄정보산업 협동조합' 홍보실 과장은 불법복제 단속과 관련해 "다른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불법복제사실이 드러날 경우 큰 피해 없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조정의 여지가 있지만 쿽사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오 과장은 또한 "출판 업계는 '쿽 익스프레스' 때문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며 "쿽사와 인큐브테크는 가격 부담을 소비자한테 떠넘기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오마이뉴스>가 6.5버전의 미국 내 판매 가격을 조사한 결과 이베이에서는 약 70만원(744.05달러), 아마존닷컴에서는 약 71만원(749.49달러)에 판매되고 있었다. 한국 내 판매 가격은 이에 비해 3배 이상 비싼 것이다.

인큐브테크 "'소프트웨어는 무료' 인식 전환이 필요"

한편 쿽 프로그램의 한국 판매권을 가진 인큐브테크 쪽은 "출판업계의 비싼 제품가격 등에 대한 불만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회사 쪽은 우선 한국 내 판매 가격이 비싼 이유에 대해 "쿽사 정책 상 미국 내 판매 가격과 인터내셔널판 판매 가격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글판 제품은 국내 출판 문화와 환경에 맞춰 많은 부분이 추가되거나 새롭게 제작된 제품이다"고 강조했다.

"판매 가격이 영세업자에게 부담스럽다"는 출판 업계의 주장에 대해 인큐브테크는 "어떠한 영세업체도 정품을 사면 한 달 안에 제품 구입 비용을 만회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어 "하드웨어는 고가의 비용도 감수하면서 소프트웨어는 무료로 쓰려고 하는 고객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인큐브테크는 또한 "500여 만원의 가치를 지닌 서체 1730여종을 번들(무료)로 제공하고 있다"며 "또한 200여 만원의 상당의 'XTension' 툴 역시 번들(무료)로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불법 복제 단속과 관련 S 법무법인 관계자는 "쿽사의 허가 없이는 인터뷰를 할 수 없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쿽#쿽 익스프레스#불법 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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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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