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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우리나라의 기후가 우기와 건기로 나누어지는 아열대성 기후로 점차 변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올여름은 유난히 비가 오래 내린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막상 이러한 보도를 접하고 나니 마음속에 커다란 실망감이 밀려왔다. 봄과 가을을 좋아하는 나에게 있어 이 두 계절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은 당연히 슬플 수밖에 없다.

 

학창시절엔 우리나라의 기후는 사계절이 뚜렷한 것이 특징이라고 배웠다. 아름다운 사계절을 감상할 수 있는 우리의 강산은 그래서 볼수록 정이 들고 매력이 넘친다고 노래 부르듯, 너무 쉬운 수학 공식을 외우듯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여름이 길어진다는 것은 가뜩이나 몸에 열이 많아서 힘든 나에게 곤혹스러운 일이다. 또한 추운 겨울이 길어진다는 것도 우리 같은 서민, 특히 소외계층에게는 더없이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싼 연료 값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겨울은 결코 만만한 계절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나친 '기우'일까?

 

하지만 이제는 정말 교과서의 내용이 바뀔 때가 온 것이다. 슬그머니 요즘 아이들이 배우고 있을 교과서의 내용이 궁금해지면서, 자꾸만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해온다.

 

안 그래도 요즘 들어 기후의 변화를 실감하는 일도 많다. 이제는 일명 '미친 개나리'를 보는 것은 그렇게 특별할 일도 아니다. 한겨울에 개나리가 피어나는가 하면, 여름이 시작되기도 전에 해바라기와 코스모스가 핀다. 계절을 가리지 못하고 피어난 꽃들을 보면 그 희소성(?) 때문에 신기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앞선다.

 

이렇듯 철을 모르고 피어나는 꽃들에게 '미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너무나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의 속도에 대한 원망, 그리고 환경을 파괴한 인간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꽃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며칠 전 '모기의 입도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났다. 하지만 아직까지 뜨거운 여름더위는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이만하면 더위가 가실 때가 된 것 아니냐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늘은 제법 물러나 있었다. 가을이 어느 틈엔가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와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타들어 가는 듯한 땡볕은 여전하지만 이젠 그늘에 들어가면 그래도 참을 만하다.

밤이면 창문 너머 선선한 바람을 타고 풀벌레의 낮은 울음소리도 들을 수 있다.

 

벌써부터 돌아올 가을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번 가을은 좀 더 남다르게 맞아들여야 할 것만 같다. 얼굴을 스치는 서늘한 바람과 곱게 물든 단풍잎들, 꿈을 꾸는 것처럼 높고 투명한 가을 하늘까지, 눈에 밟히는 모든 풍경들이 가슴 속에 물기를 가득 머금은 수채화처럼 아롱지겠지

 

황사란 것도 잘 모르던 시절, 물오른 가지 끝마다 연둣빛으로 피어나던 앙증맞은 새순과 봄의 향기에 취하고, 곱게 단장한 색시처럼 발그레 단풍든 가을 길을 거닐며 맑고도 청량한 가을바람 한 줄기를 깊게 들이마시던 내 어린 시절의 소중한 기억들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인간은 훼손되지 않은 자연 속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고 행복하다는 것을.


태그:#이상기후, #온난화, #코스모스, #꽃, #개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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