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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적 납골묘(제주시에서 조성한 납골묘. 비록 화장을 했지만 제주무덤의 특성을 살려 벌초를 할 수 있게 묘를 조성했다. 원내는 최고의 명당자리로 알려져 있는 제주시 어승생공설공원묘지 안내판)
친환경적 납골묘(제주시에서 조성한 납골묘. 비록 화장을 했지만 제주무덤의 특성을 살려 벌초를 할 수 있게 묘를 조성했다. 원내는 최고의 명당자리로 알려져 있는 제주시 어승생공설공원묘지 안내판) ⓒ 장영주
음력 8월 초하루가 다가오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음력 8월 초하루를 벌초일로 정해 조상의 묘를 돌보고 있다.(오랫동안 관습적으로 내려오고 있는 수눌음 정신) 최근에는 음력 8월 초하루 2주 전 일요일부터 벌초일로 정하는 집안이 늘어나고 있다.

벌초라는 특별한 세시풍속이 있다. 벌초는 일본 등 외국이나 다른 지방에 살고 있는 친족들이 한 데 모여 조상의 묘를 손질하는 날로 오랫동안 전승되는 문화이다.

돌 많고 바람 많고 여자 많아 삼다라 불리는 제주, 돌은 제주사람들의 삶의 동반자였다. 돌담을 쌓아 바람을 막아 농사를 지었으며, 올레라는 특수한 형태의 돌 무리 길을 만들어 드나들었고, 정낭을 걸치는 고리도 돌로 만들었다. 이렇게 소중한 돌은 무덤을 만드는 데도 쓰이고, 무덤의 수호신인 동자석의 재료이기도 하며, 돌하르방이란 제주의 수호신으로 변모되기도 했다. 그러기에 제주사람들은 사람이 죽어 무덤을 만든 후에도 그 무덤을 지키고 보호하는 역할을 돌에게 맡겼다. 그게 산담이다.

골총으로 추정되는 묘(주인이 돌보지 않아 무성히 자란 나무, 산담이 묘소란 것을 대변하고 있다. 원내는 정상적으로 백일홍이 심어져 있는 묘소)
골총으로 추정되는 묘(주인이 돌보지 않아 무성히 자란 나무, 산담이 묘소란 것을 대변하고 있다. 원내는 정상적으로 백일홍이 심어져 있는 묘소) ⓒ 장영주
골총은 벌초할 후손이 없거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벌초하지 못하고 방치한 묘를 가리킨다. 골총은 풀이 우거져 있고 나무가 제멋대로 자란 상태가 대부분이다. 원래 산담 안에는 나무를 잘라 내기 때문에 나무가 없다. 또한 묘소 주변의 나뭇가지도 잘라 내어 햇볕이 잘 들게 한다.

제주에서 벌초를 하지 않는 것은 불효이다. 국내는 물론 외국에 나가 있는 사람들도 명절·제사에는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벌초일에는 반드시 참가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벌초를 미풍양속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학교는 벌초방학을 하여 그 뜻을 기리게 한다.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조상의 묘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기위해 다른 지방이나 외국에 나가 있어도 벌초일에는 귀향하기를 교육시킨다. 대부분의 직장에서도 벌초휴가 만큼은 내준다. 공무원도 벌초연가를 내기도 한다.

요즘은 벌초를 하지 않고 내버려 둔 산소도 마을청년회 등이 주축이 되어 깨끗이 손질해 주는 등 아름다운 풍속이 한 데 모여 제주의 특색을 잘 살려 주고 있다.

산담(벌초를 할 때 산담 안의 잡초나 이끼, 나무는 모두 베어 낸다.)
산담(벌초를 할 때 산담 안의 잡초나 이끼, 나무는 모두 베어 낸다.) ⓒ 장영주
소분은 묘지의 풀을 깎고 묘지 주변의 산담을 정리하는 일이 중요하다. 제사는 지내지 않아도 모르지만 산담을 보면 벌초를 했는지 안했는지 금방 눈에 띠어 그 집안의 됨됨이를 알아보는 척도로 사용하였다. 하물며 벌초객 수효로 그 집안의 부와 명예를 상징했으니 그 척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벌초 대행업이 유행하고 있다. 한 기당 70,000원 정도로 제주도 중산간지역에 천막을 치고 벌초를 해 주며 음식점에서 음식을 불러다 먹는 풍경도 목격할 수 있다. 그만큼 세태에 따라 풍습이 달라지고 있는데 다문화국가로 변신하는 제주의 모습은 외국여성들이 시집오면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중산간지역 평화로의 차량 행렬(원내는 못 먹는 버섯, 벌초하려 주변에 세워 둔 차량)
중산간지역 평화로의 차량 행렬(원내는 못 먹는 버섯, 벌초하려 주변에 세워 둔 차량) ⓒ 장영주
벌초하는 날이면 중산간지역의 들녘은 벌초객들로 넘쳐난다. 평소에는 한가하다가도 벌초일에는 교통 체증이라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고향을 찾는 사람들을 배려한 항공사는 특별기를 띠우는 경우가 있고, 벌에 쏘인다든지 벌초 기계로 인한 부상, 독버섯의 유혹 때문에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위해 의료원이나 소방서도 긴급 특별 근무령이 내려지기도 한다. 기상청도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만약 일기예보가 빗나가면 벌초객들에게 불편을 주는 일이 생기기 때문에 긴장하면서 신중한 예보를 한다.

농협은 지역농협별로 벌초업을 대행하는데 저렴한 가격으로 농협 청년부, 영농회 회원이 담당하고 있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전화로 농협에 신청하면 처리해 준다. 지방은행도 재일교포 벌초를 대행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묘지정보시스템을 작동하면 언제, 어디에, 누구의 묘가 있는지 검색이 가능하기도 한다.

예전에 묘는 쓰고 싶은 곳에 썼다.(원내는 오름 꼭대기의 묘, 단장된 묘)
예전에 묘는 쓰고 싶은 곳에 썼다.(원내는 오름 꼭대기의 묘, 단장된 묘) ⓒ 장영주
묘는 쓰고 싶은 장소에 맘대로 썼다. 오름 꼭대기에 쓰기도 했고 남의 밭에 쓰기도 했다. 부모 묘터로 사용하려고 애지중지 아껴 두었던 촐왓(우마 목초 밭)에 낯선 묘가 생겨서 황당한 경우도 생겨난다. 하지만 죽은 사람의 원은 살아있는 사람은 어쩌지 못한다는 미풍양속(?) 때문에 그냥 묘를 쓴 사람이 술과 음식을 들고 찾아와 한 기당 주변 땅 값 330㎡(한마지기-보통 100평) 만 내면 넘어가곤 하였다.

소나무 가지를 꺾어 걸쳐 놓으면 벌초를 끝내 돌아갔다는 암호(차량이 귀한 1970~80년대 초반 마을 사람들은 작업 차량을 빌려 타고 벌초를 다녔다. 원내는 주변 음식점 안내판)
소나무 가지를 꺾어 걸쳐 놓으면 벌초를 끝내 돌아갔다는 암호(차량이 귀한 1970~80년대 초반 마을 사람들은 작업 차량을 빌려 타고 벌초를 다녔다. 원내는 주변 음식점 안내판) ⓒ 장영주
1970~80년대 초반까지 마을에 차량은 별로 없었다. 경운기(일명 딸딸이)를 타고 간다든지, 회사 작업 차량을 빌려 벌초를 가게 되면 동네, 이웃 사람 모두가 차를 빌려 타고 어느 지점에서 해산한다. 벌초가 끝나면 차량 운전수는 차량이 이 길을 지나갔다는 징표로 소나무 가지를 꺾어 걸쳐 놓으면 사람들은 차량이 지나 갔기에 기다리지 않고 걸어서 집으로 가곤 했다(나뭇가지가 걸쳐 있지 않으면 이 동네 저 동네 사람들이 소나무 아래에 모여앉아서 먹다 남은 음식을 펼쳐 놓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차량이 오길 기다렸다).

노지의 수박은 거의 파장 무렵이다. 벌초를 하다 수박밭이 보이면 무작정 들어가 파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돈을 놔두고, 그냥 버린 것이라고 판단되면 공짜로 따 먹었다.

요즘은 점심을 준비하지 않고 음식점에 전화로 주문하여 해결하는 일이 많아졌다. 벌초일에는 음식점 주변은 차량을 세울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혼잡하고 음식점 주인은 정신없이 배달하면서 하루를 보내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돌로 만든 납골묘(화장하는 인구가 늘어나며 화장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돌로 만든 납골묘(화장하는 인구가 늘어나며 화장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 장영주
별초에 유별난 제주사람들에게도 장묘문화에 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후손들이 벌초를 해야 하는 매장보다 화장을 선호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핵가족화로 벌초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주인터넷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제사#제주도#벌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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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통일교육위원, 한국녹색교육협회이사,교육부교육월보편집위원역임,제주교육편집위원역임,제주작가부회장역임,제주대학교강사,지역사회단체강사,저서 해뜨는초록별지구 등 100권으로 신지인인증,순수문학문학평론상,한국아동문학창작상 등을 수상한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고 싶음(특히 제주지역 환경,통일소식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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