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여름휴가를 떠난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각오가 필요하다. 극심한 교통 체증과 피서지에서의 인파, 피서를 왔는지 사람구경 왔는지 구분이 안 되지만 그래도 고생 자체에서 재미를 느낀다며 휴가지로 떠난다. 얼마나 사람이 많았으면 해운대 해수욕장에만 100만이 모였다고 할까?
그런데 동남아 지방은 다르다. 해변 어딜 가나 우리 나라의 잘 가꿔진 해수욕장 수준의 아름다운 백사장과 낭만적인 야자수가 있다. 그리고 너무 한적하여 외로울 정도로 사람이 없다. 그런 해변에 누워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외롭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며칠 전 말레이시아의 아빌론 리조트로 휴가를 다녀 왔다. 아빌론 리조트는 수도인 쿠알라룸프르에서 남쪽으로 약 150Km 떨어진 곳으로 아주 좋은 시설을 갖춘 휴양지다. 특히 이곳은 바다 위에 집을 지어서 방안에 누워 있으면 침대 아래로 출렁이는 파도 소리가 전해진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실 그 곳은 유럽에서 온 관광객들이 많이 찾기 때문에 비키니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들도 많으리라는 부가적인 기대도 있었다. 예약하면서 바다가 보이는 제일 앞 쪽의 수상 방갈로를 부탁했다. 바다 쪽은 안쪽 건물의 호텔보다 훨씬 비쌌지만 무리를 하면서까지 말이다.
요즘 말레이시아에는 중동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다. 중동의 나라들이 미국이나 유럽과 사이가 나빠지면서 그쪽으로 관광을 가던 사람들이 같은 이슬람 국가이면서 자유롭고 좋은 관광 여건을 갖춘 말레이시아로 방향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동 관광객들은 요즘 넘치는 오일 달러 덕분으로 씀씀이가 크기 때문에 어디서나 환영받는다.
기대와 함께 우리는 출발했다. 차를 2시간 가량 달려 도착한 아빌론은 정말 좋은 곳이었다.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바닷물이 눈 아래 출렁이고 있어 마치 바다 위에 떠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서쪽이라 바다 물은 생각보다 깨끗하지 않은 듯했지만 날씨도 좋았고 숲으로 둘러 쌓인 주변과 아름다운 백사장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이 붐비지 않는 것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이곳의 리조트 백사장은 리조트에 소유된 곳이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의 출입이 제한된다.
그곳에서도 투숙객들의 대부분은 중동에서 온 관광객들이었다. 그런데 어디에도 비키니 차림의 여인은 없었다. 수영장을 살펴보니 수영하는 여인들은 몇 있었지만 전신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한 사람이 "비키니 여인이 어데 있어?"하며 물었을 때는 궁색한 얼굴로 쳐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수영장 옆 파라솔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다 해변으로 나가 보기로 했다. 우리는 해변으로 나가면 여기보다는 더 나은(?) 볼거리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울타리를 지나 해변으로 갔다.
역시 일반 해변으로 나가니 사람들은 많았다. 그런데 이상한 풍경을 발견했다. 수영복을 입은 애들은 아주 어린 애들뿐이고 바닷가에 앉아 있는 여인들이나 물 속에 있는 여인들이 모두 비키니 대신 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동에서 온 관광객들은 그 긴 망또 같은 검은 옷을 입고 제트 스키를 타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런 풍경은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것보다 더 신기한 장면이었다.
그런 풍경에 신기해 하며 다니다 보니 점점 새로운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을 가린 여인들은 밥을 먹을 때도 마스크를 벗지 않고 마스크를 한 손으로 든 다음 조심스럽게 숟가락을 입 안으로 가져갔다.
더 황당한 일도 겪었다. 휴게실에서 중동 여인이 아기에게 젖을 줄 것 같아서 젖 먹일 때는 어떻게 하나하고 흘끔흘끔 살폈더니 남편인 듯한 사람이 사람이 와서 무섭게 뭐라고 하는 게 아닌가. 보지 말라는 말처럼 들려 얼른 자리를 떴다. 멀리서 보니 아기에게 모유를 줄 때도 옷을 들추지는 않았지만 아이를 안는 모습은 우리나라 엄마들과 같았다.
결국 우리의 휴가는 예상 못한 상황 때문에 처음 기대한 것에는 훨씬 못 미쳤다. 하루를 지낸 다음 일행에게 미안해서 다른 곳으로 숙소를 옮길까 했더니 새로운 풍속을 아는 계기라 생각하고 괜찮다 해서 하루를 더 묵었다. 결국 남자들끼리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려던 기대는 깨졌지만 새로운 풍속을 알 수 있었던 휴가였다.
덧붙이는 글 | <나의 여름휴가 실패기> 응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