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5·18묘역에는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한쪽은 신군부에 맞서 적극적으로 투쟁하다가 순국한 시민군들이고, 또 한쪽은 아무 이유도 없이 길거리에서 총에 맞아 죽은 일반 시민들이다.
5월항쟁 당시 신군부는 ‘고정간첩’과 이를 추종하는 ‘빨갱이’들이 ‘폭력사태’를 주도하고 있다고 흑색선전을 하였지만, 실제로 광주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은 크게 보아 위의 두 부류뿐이다.
특히 길거리에서 아무 이유도 없이 희생된 경우에는 ‘고첩’이니 ‘빨갱이’니 하는 오명이 더욱 더 억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광주 5·18묘역을 돌아보면 너무나 터무니없이 희생된 무고한 시민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고 방광범은 80년 당시 어린 소년에 불과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군인 트럭만 지나가면 손을 흔드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손을 흔들면 군인 아저씨들도 손을 흔들어주니까 그게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80년 5월 평소에 좋아하던 군인 트럭들이 아예 대규모로 몰려오자, 고 방광범은 이번에도 그저 반가운 기분에 손을 흔들어댔다. 그러나 그에 대한 반응은 군인 아저씨들의 반가운 답례가 아니었다. 총알이었다.
고 전재수(당시 12세)는 사건 9일 전에 엄마로부터 고무신을 선물 받고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데 계엄군의 진압현장에서 새 고무신을 떨어뜨리자 그것을 주우려고 돌아서다가 그대로 고꾸라졌다고 한다. 고 전재수의 비문 뒤에는 죽은 아들에게 아버지가 전하는 글이 남겨 있다.
5·18묘역 오른쪽에 있는 유영봉안소 안으로 들어가면, 그곳에서도 가슴 저린 사연의 소유자들을 만날 수 있다.
고 박금희. 사진에서 보다시피, 그는 사건 당시 앳된 소녀에 불과했다. 5월 21일 그는 부상자들을 위해 헌혈을 하고 나오다가, 병원 입구에서 헬리콥터의 정조준 사격을 받고 그대로 쓰러졌다고 한다.
사망한 그의 손에는 음료수 오란씨 병이 하나 들려 있었다. 5분 전에 받은 헌혈 기념품이었다. 오란씨를 마시기도 전에 그는 피를 분출하며 쓰러졌던 것이다.
유영 봉안소 오른쪽 끝부분에 보면, 정말 기 막히는 유영 하나가 있다. 백일 사진인지 돌 사진인지 알 수 없는 어느 유영 하나가 어른들 틈에 걸려 있다.묘역 해설담당자의 설명에 따르면, 사건 당시 시신을 찾을 수 없어 행방불명 희생자로 처리된 여섯 살짜리 이창현의 유영이다. 사고 당시 최근에 찍은 사진이 없어서 백일 사진이나 돌 사진을 걸어놓은 듯하다.
신군부의 주장대로라면 이 꼬마 희생자 역시 ‘고첩’ 아니면 ‘빨갱이’인 셈이고, 그렇게 되면 이 아이도 최연소 ‘고첩’이나 ‘빨갱이’가 되는 것이다.
계엄군 트럭에 손 흔들던 소년, 엄마가 사준 고무신에 신경이 곤두서 있던 소년, 헌혈 하고 오란씨 병 받아 나오던 소녀. 최근 몇 년간 사진 한 장 찍은 적 없는 여섯 살짜리 꼬마.
이런 희생자들이 모두 신군부가 말하는 ‘고첩’이나 ‘빨갱이’였다.
어떤 사람들은 광주항쟁이니 5월항쟁이니 하는 말들이 이젠 지겹다고들 하지만, 죄 없는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살상한 전두환 집단의 죄악은 훗날의 경계를 위해서라도 지겹도록 강조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