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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독대 곁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카사
ⓒ 박도
누군가 기다린다는 것은 흐뭇한 일이다

주말에 집안일로 1박 2일의 서울나들이를 하고, 뙤약볕 아래 서둘러 안흥집으로 내려왔다. 카사(집고양이)에게 간식(우유)을 주고자 함이었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흐뭇한 일이다. 집에 이르자 카사란 놈이 장독대 곁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카사의 몸단장 시간으로 매우 길다.
ⓒ 박도
가방을 내려놓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냉장고 문을 열고 우유를 찾아줬다. 하루 이틀 집을 비울 때 아침 저녁밥은 무인 급식기로 해결하지만, 하루 한 차례씩 간식으로 주는 우유는 사람이 줄 수밖에 없다.

간식을 먹고 난 뒤, 이놈이 고맙다고 제 몸으로 내 몸에 비비며 그르렁거렸다. 고양이들은 기분이 좋을 때 그르렁거린다. 나는 그놈의 등을 긁어주고 "잘 있었냐?", "심심치 않았냐?" 둥 제게 말을 건네면 저도 "아, 아" "어, 어" "응, 응" 등의 소리로 화답한다.

지난날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이 죽을 때 자기가 기르던 개나 고양이에게 적잖은 유산을 물려주는 걸 보고는 별 미친 사람이라고, 어떻게 된 사람이라고 흉을 보았다. 그러던 내가 요즘은 그 사람들이 조금씩 이해가 되어간다.

사람들에게 물질의 풍요와 개인주의 발달은 가족해체라는 부산물을 던져주었다. 지난날은 먹고 살기 위하여 대가족제가 유리했지만, 기계와 컴퓨터 등 최첨단 산업의 발달과 경제시스템의 고도 발달은 돈만 있으면 혼자 사는데 조금도 불편치 않게 하고 있다. 그러자 사람들은 더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가정이라는 굴레조차도 박차버리는 세태다.

사람들은 전에 누리지 못한 빵과 자유를 얻었지만 고독하다. 그 고독을 메우기 위하여 가장 손쉬운 게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다. 가장 많이 선택하는 게 개요, 고양이다.

유럽 사람들은 개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남의 집 개를 욕하다가는 이웃 간 원수지게 마련이라고 한다. 그들은 우리나라나 중국 사람들이 개고기를 좋아하는 걸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야만시하는 까닭도 개를 반려동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한밤중에 방으로 뛰어든 카사

▲ 자기와 놀아달라고 내 방 방충망 앞에서 나를 부르고 있다.
ⓒ 박도
우리 집 카사란 놈은 아내가 없으면 더욱 나를 따른다. 아내가 저의 모든 뒷바라지를 하던 걸 대신 내가 해주기에 그럴 게다.

밤낮없이 수시로 내 방 창가로 다가와 배가 고프니 먹이를 달라, 심심하니까 애무해 달라, 함께 놀아 달라…, 마치 어린 애가 칭얼거리듯 보챈다.

요즘은 한밤중에도 불 꺼진 내 방 창가 언저리를 맴돌면서 보챈다. 그럴 때는 다시 불을 켜고 놀아주기도 하지만 많이 졸릴 때는 못들은 척 눈을 감아버린다.

그저께 밤은 잠결에 시커먼 게 머릿결을 스쳤다. 깜짝 놀라 깨어보니 카사였다. 문을 닫고 잤는데 어쩐 일인가 불을 켜고 살펴보니, 이놈이 방충망 창문을 용케 열고서는 내 방으로 뛰어들어왔다. 조금 놀아주고는 "너도 이제 자라"고 달랜 뒤 밖으로 내보냈다.

카사는 고독하다. 그에게는 가족도 없다. 카사는 수컷인데 내 집에 오기 전부터 이미 거세된 중성 고양이다. 그러니 가족이 있을 리가 없다. 이 산골마을에도 고양이가 있지만 잘 어울리지도 못한다. 사내구실을 못한다고 암컷조차 눈길도 주지 않는 모양이다.

사실 한때 나도 비염 때문에 이놈의 털 공해로 내 집에서 쫓을 궁리를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한사코 반대해서 함께 생활했는데, 올해 봄부터는 과감하게 카사란 놈을 바깥에서 기르니 털 공해 문제가 해결되었다.

▲ 내가 자기 곁에 가면 그 자리에 눕고는 애무를 기다리고 있다.
ⓒ 박도
날이 갈수록 저놈이나 나나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자 서로 대화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곰곰 저놈을 생각하면 무척 가여운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나도 서구인들이 자기가 기르던 개나 고양이에게 유산을 남긴다는 말이 사뭇 이해가 되고, 어쩌면 나도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다.

"고독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고통이다. 어떠한 공포도 모두 함께 있다면 견딜 수 있지만 고독은 죽음과 같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의 말이다. 고독은 사람만이 느끼는 게 아니라 하늘의 피조물은 모두가 느끼나 보다. 앞으로는 카사와 함께 놀아주는 시간을 더욱 늘이면서 동병상련의 고독감을 함께 나눠야겠다.

▲ 3년 전, 안흥에 내려온 첫 해 겨울의 카사. 그때는 집안에서 키웠다.
ⓒ 박도

덧붙이는 글 | 박도 기자가 쓴 산문집 <로테르담에서 온 엽서>가 대교베텔스만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태그:#카사, #고양이,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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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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