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 한국인 19명을 납치한 사건이 장기화고 있는 가운데, 아프간에서 평화활동을 하고 돌아온 개척자들 김영미·오승화 간사를 만나 현지 반응과 평화운동의 전망 등을 들어보았다.
김영미·오승화 간사는 납치사건이 터진 지난 7월 20일 아프간 수도 카불로 출국했다. 이들을 비롯해 세계 평화활동가 22명은 개척자들이 활동하는 아프간 북쪽 바미안 지역으로 이동해 평화학교를 여는 등 평화캠프 활동을 할 예정이었지만, 사태가 악화되면서 이동이 불가능해 카불에서 봉사활동을 펼치다가 2주 후 파키스탄으로 나왔다.
"8월 3일 파키스탄으로 이동했어요. 아프간은 한 달짜리 비자를 주는데, 지난해 인터콥이 선교활동을 벌인 뒤 비자 기간이 반으로 줄었다고 해요. 우리는 당연히 연장될 줄 알았는데…."(오승화)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의 영향력이 급속하게 약화되어 카르자이 카불시장이라는 말까지 나오지만, 카불은 비교적 안전한 편이다(물론 최근 카불에서 폭탄테러로 일본인 한 명이 희생된 일이 있었지만). 평화캠프 참가자들은 카불에 있는 장애인 요양시설인 마더테레사의집, 카리타스가 운영하는 지체 장애인 고아원 등에서 봉사활동을 펼쳤다.
누구보다 아쉬움이 컸던 사람은 김영미 간사였다. 그는 바미안 지역에서만 2년 가까이 활동하다가 1년 만에 다시 들어가게 되어 마을 사람들을 만날 기대에 부풀었다. 카불에서는 과거에 사귄 어린 아이들의 편지가 도착해 있었다. 보고 싶다고, 빨리 오라고 아우성인 아이들의 편지에 김 간사는 발만 동동 굴렀다.
"평화운동이란 그저 이웃이 되는 것"
"우리들이 하는 일이요? 뭐 특별할 게 있나요. 아이들과 놀면서 평화에 대한 이야기 해주고, 마을 사람들의 농사 일손을 거드는 거지요. 무너진 집을 고치고 밭에 고랑을 내주면, 마을 사람들은 밤에 감자도 쪄오고 콩도 볶아줘요."(김영미)
김 간사의 말처럼 평화활동은 말 그대로 주민들과 어울려 살면서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평화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삶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한 번의 가르침과 짧은 행사로 평화가 정착되는 게 아니기에 개척자들은 이곳에서 5년째 상주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여름에 한 달간은 전 세계의 청년들이 자원봉사를 하러 이곳을 방문한다.
이들이 올 때는 그야말로 축제가 벌어진다. 평화활동가 두세 사람이 머물 때는 할 수 없었던 재미난 일들을 그 때 집중적으로 펼치기 때문이다. 서로 총을 겨누었던 종족의 청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아이들과 활동가들이 냄비와 감자, 양파 등을 싸서 소풍을 간다.
"영화 보는 날은 정말 신나요.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텔레비전을 빌리고, 사정사정해서 VTR 빌리고, 제너레이터 빌리고 기름 사와서 인도 영화를 봐요. 원래 이곳 사람들이 쓰는 말과 인도 말이 비슷하기도 하고, 인도 말과 더 가까운 말을 쓰는 파키스탄에서 난민 생활을 하다가 돌아와서 40% 정도는 알아들어요. 나도 대충 무슨 스토리인지는 알겠더라고요.(웃음) 그렇게 마을 주민이 되어서 같이 사는 거죠. 우리가 야채 볶음해서 주면, 마을 사람들은 콩 요리를 해서 보내줘요. 겨울에는 춥지 않느냐고, 자기들도 덮을 이불이 부족하면서 주겠다고 그래요. 그렇게 정이 쌓이죠." (김영미)
"사람 만나는데 장애물이 왜 그리 많은지"
그렇게 조심스럽게 전쟁과 죽음이 난무한 마을에 평화를 일구어가고 있는데, 이번에는 우리 정부가 평화의 길을 막았다. 피랍사태 이후 정부가 여권법을 개정해 아프간을 여행금지국으로 지정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아프간에서 활동하던 NGO 활동가들에게 8월말까지 떠나라고 명령했다. 아프간에 머물던 개척자들 활동가들도 일단 철수했고, 평화캠프에 참가한 이들도 마을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2주 만에 파키스탄으로 철수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을, 평화를 일구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많구나 싶었어요. 평화활동을 하다보면,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여권이나 비자 같은 게 걸림돌이 될 때가 있어요." (오승화)
이들이 나머지 2주 동안 활동한 파키스탄 카슈미르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분쟁 지역 가운데 한 곳이다. 이곳에는 지난 2005년 예장통합 사회부의 지원을 받아 개척자들이 다시 지은 학교가 있다. 이일을 시작으로 월드서비스(평화활동가가 상주하면서 펼치는 평화활동)가 진행되었다. 이들은 이곳에 이미 와 있는 봉사단과 결합해 컴퓨터나 외국어를 가르치고, 무너진 집들을 수리했다.
"마음 통하면 종교 간 대화도 평화롭다"
"헤어지려 할 때 파키스탄 사람들이 아쉬운 점을 토로했어요. 어떤 이야기든 알고 싶은 게 있는데, 우리가 도통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특히 왜 너희의 종교 이야기는 하지 않느냐고. 난 개신교인이지만 평화활동을 할 때는 포교하지 않아요.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런데 그들은 서로 친한 사이라면 서로의 종교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지 않느냐고 서운해 했어요." (김영미)
"저에게는 어떤 분이 이슬람에 관한 책을 선물로 주었어요. 그는 이슬람 밖에서는 자신들을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편견이라고 했어요. 그는 자신이 준 책을 읽고 자신들과 만난 경험을 사람들에게 알려달라고 내게 말했어요." (오승화)
두 평화활동가의 이야기는 선교 자체가 문제거나, 선교를 하려는 자세를 문제 삼는 게 아니다. 자신이 복음(기쁜 소식)을 전하는 대상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안중에도 없이 그저 소식만 전하려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삶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관계가 바뀌면 대화가 달라지는 것을 카불에서 만난 이들과도 경험했다. 평화활동가들이 버미안 지역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오히려 아프간에서 쫓겨나게 되자, 아프간 평화활동 참가자들이 고개를 들지 못하고 계속 미안하다는 말만 했다고 한다. 오 간사는 "자기네 잘못도 아닌데 꼭 자기들이 죄를 지은 사람처럼 사과하고 부끄러워했다"고 말했다.
아프간 청년들이 탈레반의 저항 방식에 대해 먼저 비판하고 나섰다면, 미국에서 온 평화활동가는 미국의 횡포가 더 잔인하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탈레반과 미군에 대한 세계의 시선이 편파적임을 고발했다. 탈레반이 자기네 나라 사람들을 도우러 온 외국 손님을 인질로 잡고 죽이기까지 하는 것을 미개하게 보지만, 미군과 나토군이 레이더로 움직임을 관찰하다가 단추를 눌러 민간인을 죽이면 세련되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마침 이들이 토론을 벌이기 며칠 전, 아프간군은 탈레반을 공습했지만 민간인 28명만 죽는 피해를 내고 말았다.
"한국인 인질 한사람 한사람의 생명이 고귀하듯, 어이없게 죽어간 아프간 민간인 28명의 생명도 소중하지 않나요. 그런데 세계는 그들의 죽음을 외면하고 침묵해요. 알자지라 방송만 보도했을 뿐이에요. 아무리 억울함을 호소해도 누구 하나 들어주지 않을 때 그들이 취하는 방식이 극단적인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어요. 아프간에서 탈레반을 옹호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이유가 있어요." (오승화)
"평화운동은 어디서부터 해야 한다는 원칙이 없다"
평화활동을 하다보면, 꼭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이들만 만나는 건 아니다. 낯선 외국인에게 극도로 경계하는 이들 뿐 아니라,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종교 문화를 강요하고 따라하지 않으면 위협했다.
"가끔 나를 이슬람교도로 개종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어요. 나와 친한 사람이 하는 전도는 성의껏 들어주고 싶어요. 꼭 종교를 바꿔야 대화가 성공하는 건 아니지 않아요.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끼리 나누는 종교 간 대화는 그야말로 평화로워요. 그런데 우위를 점하려는 전도는 그것 자체로 폭력이에요. 친하지도 않는데 나에게 다가와 이슬람식 기도를 강요하는 사람이 있어요. 한 사람은 나에게 알라에게 드리는 기도문을 암송하라고 윽박지르더라고요. 가끔 그런 사람들 있어요. 그들은 사영리(기독교 복음을 네 단계로 축약해 전하는 전도 방식)만 믿으면 구원 받는다고 외치는 기독교인이랑 똑같아요." (김영미)
두 간사는 고지식한 종교인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말했다. 서로의 마음이 확인하는데 뜸이 들 뿐이지, 결국 사람들은 서로 돕고 격려하며 사는 일에 인색하지 않다는 걸 숱하게 경험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가족들에게도 잔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지천인데, 꼭 그런 위험한 곳에 가서 활동해야 하느냐고 핀잔을 주는 가족이 있었다. 걱정하는 마음은 고맙게 받았지만, 평화를 이루는데 어디가 먼저여야 한다는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독교 대안 언론 <뉴스앤조이>(www.newsnjoy.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