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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한국문학전집3 손창섭集>
ⓒ 김주석
며칠 내내 얄궂은 비('손창섭' 하면 떠오르는 사물은 '비'다)다. "개이려나 보다 하면 빗물 소리가 도로 들려오곤 하는" 날씨. 소설 앞자락은 마치 구남영(具南英) 선생 반의 창훈이(昌薰)를 예고하려는 듯하다.

창훈의 어머니(생모는 아니다)는 그렇고 그런 술집을 운영한다. 환경이 이러한데다가 학대까지 심하다 보니 창훈은 방과 후에도 집에 가려 하지 않거니와 행동도 별스러워졌다. 평론가 유종호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치한(小癡漢)'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구남영 선생의 3남매 역시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는 통에 남영 자신은 고모 손에서 두 동생 그러니까 남식(南植)과 남희(南姬)는 이모 손에서 컸던 것이다. 그리고 현재 남희는 같이 지내고 있지만 남동생은 끝내 탈선하여 행방을 모른다.

하여 구남영 선생에게 창훈의 일은 각별하게 생각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창훈의 현재는 자신의 남동생인 남식의 현재와 맞닿아 있다. 남식의 현재가 아닌 구남영 자신의 현재와 연결시켜 주어야 하는 책임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창훈에게 관심은 쏠리면서도 딱히 해결책은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인가. 교직 경험이 부족해서일까? 오히려 교직생활 10년이 넘은 백 선생은 전(前) 학년 담임으로 먼저 포기해 버린 상황이다. 백 선생이 구남영 선생에게 반을 인계하면서 하던 말이다.

"앞으루 창훈이 때문에 속을 좀 썩이실 겝니다. 허지만 그 녀석 원체 머리는 좋아요. 그래서 특별히 유의해서 좀 바로잡아 볼려구 애써 보았지만 그애 가정 환경이 아주 나쁜 데다가, 내 노력두 부족했구 해서, 결국은 실패였습니다." - 323쪽

그럼 깊은 이해와 따뜻한 애정 그런 노력들이 부족해서일까? 물론 간간이 미숙한 점(가령 창훈이가 집을 뛰쳐나왔을 때 아버지인 척하는 사람 말만 믿고 도로 집으로 돌려보내는 등)을 보이기는 하지만 구남영 선생은 충분히 애쓴다고 볼 수 있다. 창훈의 집으로 돌려보낼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는 자신의 집으로 창훈이를 데려오는 것을 확인하는 데서 그 진심을 짚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 창훈이는 구남영 선생 집에서도 사고를 치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어느결에 창훈이에겐 쉽게 치유되지 않는 어떤 부분들이 들어차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애정과 노력만으로 해결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창훈이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거니와 사회적으로 애써야 하는 부분도 분명 있는 까닭이다.

창훈의 행동이나 창훈 어머니의 태도 등이 가감 없이 서술되는 가운데 구남영 선생의 고민이나 대응이 연계되어 소설은 그런대로 사실감과 긴장감을 준다. 그리고 소설 끝 부분은 어쩌면 창훈의 미래를 걱정하고 아끼려는 구남영 선생의 마음으로 비치는 것도 같다.

남영은 창훈의 그림을 모조리 떼어서 곱게 말았다. 집에 가져다 보관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것만은 창훈의 구김없는 자기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훈이가 남겨 주고 간, 가시 돋은 기념품이기도 했다. - 338쪽

아이를 가르치는 일은 얼마나 조심스럽고 신중한 일인가. 겉으로 나타나는 것만 보고 몰아세울 일도 아니지만 정작 단단히 야단칠 일을 관대한 척 어물쩍 넘겨버릴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 텍스트: <현대한국문학전집3 손창섭集>, 신구문화사, 1965.11.30.


태그:#소년, #손창섭, #현대한국문학전집, #문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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