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는 23일 후보 확정 뒤 첫 민생탐방 행보로 서울 종로 광장시장과 중구 남대문 시장을 방문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광장시장 한복상가를 방문해 상인들에게 하트를 그리고 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는 23일 후보 확정 뒤 첫 민생탐방 행보로 서울 종로 광장시장과 중구 남대문 시장을 방문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광장시장 한복상가를 방문해 상인들에게 하트를 그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21세기 지구상에서 좌우이념 논쟁으로 싸우는 국가는 거의 없다."(2005년 12월 30일)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에 나선다면 북한의 1인당 소득이 10년 안에 3천 달러가 되도록 적극적으로 돕겠다."(2006년 6월 26일)

이명박 후보의 말이다. 아마 자신도 깜짝 놀랄 것이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 후보의 노선을 '중도' 혹은 '개혁적 중도'로 이해해 왔을 것이다. 그런 이 후보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

"이번 대선은 '친북좌파'와 '보수우익'의 대결"이란다. 여지껏 해온 자신의 발언을 송두리째 뒤집어 버린 것이다.

자신이 보수우익임을 전제로 친북좌파와의 대결구도 상정은 의도된 허구일 뿐

먼저 상식적인 기준으로만 보자. 이 후보가 보수주의자인가?

보수주의는 공동체 유지를 위한 전통, 질서, 법 준수 등 '지켜야 할 가치'를 우선시하는 태도다. 과도한 땅 투기, 위장전입, 선거법 전과 등 공동체의 법질서와 경제질서를 철저히 위반하고 살아왔는데, 어떻게 진정한 의미의 보수라고 할 수 있는가? 이 후보에게 있어 '지켜야 할 이념은 없었고, 꼭 지켜야 할 땅'은 있었다. 그래서 자신을 '보수'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틀렸다.

그러면 '우익'인가?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우익은 민족의 자주, 국가 공동체 강화 등을 우선시한다. 북핵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주한미국 대사를 만나 존재하지도 않는 '친북좌파'를 가공해내고, 자신을 '보수우익'(?)의 대표로 참칭한다. 자신이 후보이면서도 되려 미 대사에게 이번 대선의 향방을 묻는다. 과연 우익인가?

이렇듯 이 후보는 보수우익일 수 없다. 그렇다면 자신이 보수우익임을 전제로 친북좌파와의 대결구도를 상정하는 자체는 의도된 허구일 뿐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적 보수우익'은 상대방을 철저히 장애물로만 인식하고 '붉은 색깔'을 덧칠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해왔다. 물론 기득권 유지와 강화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아무도 이해되지 않는 의혹으로 막대한 부를 쌓아온 이 후보가 '색깔론'을 들고 나온 것은 하나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왜 지금인가?

이 후보가 '친북좌파' 발언을 공식화한 것은 놀랍게도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참여정부를 '좌파정부'라고 규정하는 '인식상의 오류'를 드러낸 적은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특별한 구속력을 갖는 '친북좌파'라는 발언은 처음이다.

'위장전입' 통해 '차명매입'한 '중도'는 언제든 소유권 분쟁 대상

첫 당무보고를 받기 위해 24일 오전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를 찾은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회의실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첫 당무보고를 받기 위해 24일 오전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를 찾은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회의실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간 '친북좌파' 발언은 박근혜 의원의 전매특허였다. 박 의원은 "민주화 운동 속에는 친북좌파의 탈을 쓴 사람들이 있다", "민주화의 탈을 쓴 친북좌파", "울진삼척 사건, 서해교전과 1.21사태에 대해 친북좌파가 사과한 적이 있느냐" 등의 발언을 계속해왔다. 이런 박 의원은 한나라당 경선에서 패배했다.

사실 이 후보는 박 의원의 덕을 많이 본 셈이다. '극우 편향적'인 박 의원 덕에 자신은 '중도' 내지 '개혁적 중도'라는 이미지를 쉽게 가질 수 있었다. 박 의원이 '친북좌파' 발언을 하면 할수록 이 후보의 '탈이념적' 이미지는 빛났다. 이 후보가 자신의 '극우 본성'을 감추고 '탈이념'을 제시할수록 박 의원은 이념적으로 고립되어 갔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동안 이 후보는 한나라당의 전통노선을 '배신'(?)하고, '중도'라는 지역에 '위장전입'했다. 박 의원이 '이념'을 얘기할 때 이 후보는 '경제'를 얘기했다. 그러면서 중도의 땅투기를 통해 박 의원을 오른쪽 끝의 벼랑으로 내몰았다. 박 의원이 사라진 지금, 극우보수의 땅은 온전히 이 후보의 단독 소유다. 여기에 '위장전입'을 통해 사실상 '차명매입'한 중도의 땅까지 소유한다.

극우보수 지역이 이 후보의 본진이라는 점에서 이 후보는 당연히 이 땅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위장전입'을 통해 '차명매입'한 '중도'는 언제라도 소유권 분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여기에다 박 의원의 '냉담'은 이 후보에게는 '재앙'이다. 박 의원 스스로의 근본보수우익 규정을 통해 상대적으로 중도개혁 이미지를 강화시켜왔던 이 후보로서는 반사적 이익을 더 이상 얻을 수 없다. 이제 이 후보는 박 의원을 지지했던 한나라당의 전통적 지지층의 환심을 사기 위해 '친북좌파' 발언을 계속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순간 '중도의 땅'에서는 멀어져간다. 이 후보로서는 '순망치한'의 형국이다. 또 한편으로는 박 의원의 '소리 없는 복수'다.

이명박의 '커밍아웃', 솔직히 범여권으로서는 매우 잘 된 일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29일 오전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을 방문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29일 오전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을 방문했다. ⓒ 한나라당 제공
솔직히 범여권으로서는 매우 잘 된 일이다. 이 후보 스스로 '커밍아웃'을 해줬기 때문이다. 중도나 개혁, 탈이념에의 '위장전입'을 스스로 철회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론 줄곧 경제만을 얘기했던 이 후보가 이제 '평화'를 거론해야 하는 상황을 자초해 버린 것이다. 온전히 경제만을 놓고 구도를 설정했던 이 후보가 '경제' 대 '평화' 라는, 보수언론이 상정해 놓은 범여권의 구도 속으로 말려든 것이다. 또 하나의 축인 '평화' 대 '평화' 구도에서는 이 후보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이 후보가 안 됐다는 생각도 든다. '친북좌파' 발언은 스스로의 '커밍아웃'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극우꼴통보수' 세력이 사실상 강제한 측면도 있다. 그렇게 본다면 이 후보는 '위장중도'와 '극우꼴통보수'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면의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