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문국현 대선 예비후보가 8월 31일 유한킴벌리 사장 자리에서 정식으로 퇴임하며 정치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문 후보의 대선 경쟁력에 대해서는 정치권에서도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무궁한 가능성을 지닌 블루칩"이라는 호평부터 "대선 게임의 들러리로 전락할 것"이라는 냉소까지 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세인들의 눈길은 이명박 후보가 있는 한나라당에 쏠려있지만 '문국현 바람'에 대한 당내 반응은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오마이뉴스> 기자는 30~31일 전남 구례에서 열린 한나라당 원내외 위원장 합동연찬회를 찾아가 당 지도부와 이 후보의 측근들에게 문 후보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편집자주>

8월31일 오전 10시경 지리산 노고단으로 올라가는 길.

 

한나라당 사람들이 당 화합과 대선 승리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주위에는 당 출입기자와 국회의원들이 말 그대로 빽빽하게 '사람의 숲'을 이루고 있었지만, 이 후보가 하는 얘기들이 기자들의 입장에서는 영 성에 차지 않는다.

 

이 후보가 "정치(얘기)는 여의도에서 해야지…."라며 현안들에 대한 답을 피했기 때문이다. 한 신문기자는 산행이 끝난 뒤 "문 후보를 포함해 범여권 주자들에 대한 질문을 해보려고 했는데 김이 팍 샜다"고 말했다.

 

영남의 한 '친이명박' 의원의 말은 이랬다.

 

"이회창 전 총재가 2002년 '노풍'이 불기 전에 '노무현이 여당 후보가 되면 우리 당에서는 허태열 의원(노 대통령을 2000년 총선에서 이긴 인물)이 나가면 되겠다'고 한마디 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쪽의 열혈 지지자들만 자극하는 말이었다. 문국현씨도 이 후보에 대해 고약한 말을 많이 하던데, 이런 사람에게는 무대응이 상책이다."

 

"문국현은 대통합 성사됐을 때만 가능성 있다"

 

이 후보로부터 몇 걸음 뒤에 강재섭 대표가 부지런히 산을 오르고 있었다. 강 대표에게 다가가 문 후보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그의 입에서 "잘 모르겠다"는 말만 나왔다. "잘 모르겠다"는 기자가 연찬회 기간 동안 한나라당 사람들에게 문 후보에 대해 물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그러나 2002년 대선 패배 이후 오매불망 다음 대선만 기다려온 한나라당 사람들이 이 후보의 대항마로 새롭게 떠오른 문 후보에 대해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번에는 정태근 서울 성북갑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을 찾았다. 이명박 캠프의 인터넷 선거전략을 총괄했던 그는 지난 3월 기자를 만났을 때만 해도 가장 유력한 범여권 후보로 (나중에 출마 의사를 접은) 정운찬 서울대 교수를 꼽았었다. 2007년 대선의 화두는 '경제'가 될 수밖에 없고 범여권의 '때 묻은 정치인들'로는 이명박을 꺾을 수 없기 때문에 범여권이 '뉴페이스'를 내세울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그의 생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문국현이 (이명박의) 대항마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그의 전략은 자신과 민주신당·민주당후보가 '단일화 게임'을 하겠다는 것 아닌가? 문국현은 대통합이 성사됐을 때 가능성 있는 후보다."

 

그러나 정운찬의 정치적 '내공'을 만만찮게 보았던 그가 문국현의 정치력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달았다.

 

"대통령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되는 자리가 아니다. 노무현만 해도 대통령이 되기 위해 꽤 오랫동안 준비하지 않았나? 그리고 대선이라는 게 전투력 없는 후보가 버티기 힘든 게임이다. 전투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자금인데 그런 건 어떻게 조달하려고 하는지…."

 

이명박 캠프에서 활약했던 다른 의원들은 "문국현에게도 검증 바람이 몰아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문국현이 훌륭한 CEO이자 환경운동가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고…. 독특한 기업 문화를 가진 유한킴벌리에 몸 담았던 그가 신선하게 보이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대한민국을 살리는 역량으로 평가될 수 있을까? 범여권에 사람이 없다보니 주목받고 있지만 '원 오브 뎀(one of them)'이다. 사람은 시달리는 만큼 성숙하는 법인데 지금의 문국현에게 그런 게 있나?" (전재희 의원)

 

"불경에 토불부도수(土佛不渡水)라는 말이 있다. 흙으로 만든 부처는 물을 건너지 못한다는 말인데, 문국현은 아직 물을 건너지 않았다. 문국현이 환경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그가 사장 시절에 만든 휴지의 원료(펄프)는 나무에서 뽑아낸다. 이건 모순 아닌가? 이런 것부터 검증이 되어야 한다." (주호영 의원)

 

얼마 전까지 사무총장을 지낸 황우여 의원은 "문 후보가 똑똑한 사람이지만 전국 조직을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선 이후 당 장악력이 강해진 이명박 후보도 당내 ('친박근혜' 진영의) 조직을 온전히 흡수하는 데 애를 먹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문 후보에게 범여권이 선거에서 뛸 조직을 내주는 게 쉽겠냐는 설명이다.

 

황 의원은 "이번 대선에서 큰 바람이 불지 않으면 여권은 아주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 월간지가 마련한 좌담회에서 문 후보를 만난 적이 있다"는 홍준표 의원은 "내가 그때 유심히 봤는데, 이 분은 그냥 회사를 계속 하는 게 나을 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 왜 문국현이 안 된다고 보나?

"정치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다. 이명박이 샐러리맨의 우상으로 떠오른 뒤 15년 만에 대통령 후보가 됐는데, 그 동안 정치판에서 단련되고 부딪치면서 여기까지 온 거다. 나도 검사하다가 정치판 들어온 지 12년 됐는데, 아직도 정치에 적응이 안 된다. 그런데 정치권 밖에서 조그마한 회사 해본 사람이 갑자기 대통령을 하겠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 유한킴벌리의 모기업인 킴벌리클라크 북아시아 법인 CEO도 지냈는데, 이게 그렇게 작은 회사가 아니라고 하더라.

"(약간 흥분된 어조로) 결국 다국적기업의 한국지사장 한 거 아닌가?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이 노무현에게 당했지만, 이번에는 능력이 검증 안된 사람에게는 대통령 자리를 안 준다. 차라리 이해찬처럼 정치판에서 20년 있으면서 국무총리도 해본 사람이 불안감을 덜 주지... 문국현? 농촌에 가서 몇 사람이나 아나 한번 물어봐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인지도가 너무 낮아서 어렵다."

 

"문국현, 이명박과 붙였을 때 구도 나쁘지 않다"

 

그렇다고 한나라당 사람들의 반응이 냉소 일변도는 아니다. 당의 보수적인 이미지를 누그러뜨리고 외연을 확대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은 '문국현 현상'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지금은 범여권에서 어느 누가 나와도 이명박의 상대가 안 되지만 단일화 게임이 사람을 키워낼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원희룡 의원은 문 후보와 함께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몇 차례 동행하는 등 그를 잘 아는 몇 안 되는 한나라당 의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문 후보가 범여권 단일후보에 오를 가능성을 60~70%로 내다봤다.

 

"인물도 범여권 후보들 중에서는 제일 낫고, 이명박과 붙였을 때의 구도 또한 나쁘지 않다. 문국현은 '노무현 정부의 계승자'라는 비판에도 '내가 이 정부의 환경부·노동부 장관 제의도 고사하고 노 대통령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외부에서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답할 수 있는 인물이다. 물론 지금의 이명박에겐 게임이 안 되지만, (범여권의 기류가) 마지막에 문국현을 밀어줄 것 같다. 그러나 (단일화 게임의) 와일드카드로 올라설 문국현이 2002년의 정몽준 역할을 할지, 노무현 역할을 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그는 "범여권의 신뢰를 얻어내는 것이 문 후보의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색깔이 불분명한 정치 초년생에 불과한 문 후보를 흔쾌히 믿고 따를 정치인이 얼마나 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

 

남경필 의원은 '범여권 최후의 3인'으로 손학규와 이해찬, 문국현을 꼽았다. 남 의원은 "범여권에서는 손학규·이해찬이 후보가 돼도 자력으로는 이명박을 이길 수 없다. 판을 뒤집으려면 결정적인 네거티브 한 방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반해 문국현은 이번 대선을 새로운 구도로 만들 수 있는 후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명박 대망론의 본질적 요소가 경제대통령인데, 이게 허물어지지 않으니 아무리 네거티브 공세가 들어와도 지지율이 35% 이하로는 안 빠진다. 그러나 문국현이 성장 일변도 경제에 대한 반성과 약자에 대한 배려, 환경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면 이번 대선은 '누가 정말 경제대통령이냐'는 본질의 싸움이 된다."

 

남 의원은 "문국현은 여권 후보로서의 가능성이 그나마 있거나 아예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그가 (이명박의 대항마로) 나오면 아주 재미있는 싸움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태그:#문국현, #남경필, #정태근, #이명박, #원희룡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