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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구연 국제가족 남매의 한국어와 일본어 동화구현
▲ 동화구연 국제가족 남매의 한국어와 일본어 동화구현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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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우리 농촌학교는 한국사회 가족문제가 집약된 전시장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모자가정, 부자가정에서 시작해 부모의 이혼으로 조부모와 같이 사는 가정, 외국출신 엄마를 둔 다문화가정까지 만나게 되는 가족의 형태는 정말로 다양하다. 다문화가정에도 초혼인 경우와 재혼인 경우가 또 다르다.

문제도 많다. 형제간 피부색 차이에서 오는 갈등, 언어가 서툴러 적응속도가 느린 어머니와 자식들과의 갈등, 가족의 일원보다는 대가를 지불하고 데려온 일꾼 정도 취급하는 시댁식구의 차별 등등 헤아릴 수없이 많은 문제들이 있다.

A라는 3학년 아이가 있다. 아이들이 '쟤네 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A를 아무 이유 없이 때려요. 이유 없는 때리는 건 범죄행위예요'라고 일러바친다. 이 나이 때 아이들은 선생님의 능력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 뭔가 해결사 노릇을 해줄 것이라고 믿는 모양이다.

벽화그리기 20년 후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아이들
▲ 벽화그리기 20년 후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아이들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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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공단지의 작은 공장에 다니는 그 아이의 아빠는 무기력증에 항상 아프다고 누워있는 아내와 탈출하고 싶어도 탈출할 수 없는 현실에 막막함을 느꼈을 것이다. 자꾸만 추락하는 삶에서 자식과 가족을 젊은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아이 아빠는 소극적이고 자신감도 부족한 소시민의 전형이다. 마을 사람들에겐 한없이 순한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만만한건 아내와 아이들인 것 같다. 2학기 때는 전라도에서 막장인 섬 염전의 염부로 일자리를 구해 가족을 데리고 이사를 간다고 한다. 이미 폭력에 익숙해지고 무기력하게 수동적으로 세상을 사는 아이 엄마라도 힘을 내었으면 좋겠다. 가족 전체의 치료가 필요한 경우다.

B라는 3학년 남자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부모의 이혼으로 외조부모와 함께 생활한다. 숙제 한번 해온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수업시간에 제대로 집중하지도 못하고 산만하다. 외손자 처지가 딱해서인지 이 아이에겐 훈육은 없고 양육만 있다. 간혹 내려오는 엄마도 게임기나 장난감, 간식을 한보따리를 사오고 과한 용돈까지 준다.

단소불기 6학년 아이들이 단소 연주
▲ 단소불기 6학년 아이들이 단소 연주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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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으로 이 아이에게 매를 들었다. 울고불고 엄살을 떠는 녀석과 5분 가까이 실강이를 벌이다가 끝내 손바닥 3대를 때렸다. 이 아이는 외조부모에게 단 한 번도 매를 맞지 않았을 것이다. 시위하는 양 수업 내내 훌쩍거리며 고개를 처박고 들지 않았다.

지금 바로잡지 않으면 '세상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을 것 같아서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가슴은 아팠지만 자기잘못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하고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올바른 훈육방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었다. 그러나 한참을 아이 눈을 보지 못했다.

C라는 2학년 여자 아이와 1학년 여동생이 있다. 엄마가 필리핀 사람이다 보니 두 아이는 얼굴이 검다. 그래도 큰 아이는 아빠를 닮아 외모는 우리와 별반 차이는 없지만 작은 아이는 엄마와 외모가 닮았다. 큰 아이는 동생과 나란히 서는 것도 싫어하고 이유 없이 괴롭힌다. 영문을 모르는 동생은 자꾸만 이어지는 언니의 폭력을 이해 할 수 없다.

사물놀이 20년만의 학예회에서 사물놀이 공연
▲ 사물놀이 20년만의 학예회에서 사물놀이 공연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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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딘스키 그림
 칸딘스키 그림
7월 둘째 주 수업에서  아이들에게 칸딘스키와 바스키아의 그림을 보여주며 어떤 것이 연상되는지 발표하라고 했다. 난해하다는 추상화를 과연 아이들이 읽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칸딘스키의 그림이 인간심리에 대한 치열한 사투였다면 아이들의 눈에도 보일 것이라는 다소 무리한 욕심이었다.

'동물들이 언덕을 오르는 것 같아요', '숲속의 궁전 같아요' 등등 아이들의 기발한 상상력들이 봇물 쳤다. 평소 발표에 소극적이던 A와 B의 발표는 나를 충격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A는 "거울속의 얼굴 같아요"라고 했고 B는 "외로운 섬이에요"라고 했다.

A의 발표는 시인 이상의 '거울'이라는 시를 연상케 했다. 이성적일 것을 강요받는 현재의 자신과 내면에 숨은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자신 사이에서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자라 표출의 방식이 다분히 폭력적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섰다.

서당교육 서당 훈장님으로 부터 예절교육을 받는 모습
▲ 서당교육 서당 훈장님으로 부터 예절교육을 받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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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를 통해 가정이 구성돼 있다고 아이들이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폭력에 길들여진 일상과 무조건적인 복종이 강요되는 부녀 관계와 비정상적인 부부관계 속에서 아이는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받을 수 있는 창구가 없다. 대화의 상대가 없는 가정,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가정 속에서 스스로가 느끼는 외로움은 '외로운 섬'이 될 수도 있다.

평소 너무나 조용하고 모범적인 B가 더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 안의 또 다른 자신을 발산할 줄 아는 H와 달리 B는 참고 삼키는 아이기 때문에 그것이 자라서 어떤 방식으로 표출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도 심리적 배설의 욕구는 강렬하다. 그러나 그것을 발산하지 못했을 때 흔히 말하는 삐뚤어진 아이로 변해가게 되는 것이다.

D라는 4학년 여자아이 집은 모자가정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지도하는 시간은 1주일에 한번 뿐이다. 그때마다 아이는 교무실 밖에서 항상 나를 기다린다. 가끔은 박하사탕을 가져와 내 손에 쥐어 주기도 한다. 아빠의 부재에 따른 공백을 내게 찾는 싶어 가슴 아프기도 하지만 그 특유의 밝음에 나도 경쾌해진다.

유치원 아이들 유치원 아이들의 연극공연
▲ 유치원 아이들 유치원 아이들의 연극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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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는 엄마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한다. 공장에서 일하느라 화상을 입은 엄마의 거친 손과 피부질환으로 약간 얽은 엄마 얼굴이 세상에서 제일 곱다고 말한다. 이 엄마는 아이들과 요리하는 시간을 자주 가진다고 한다. 이 시간이 아이들에겐 가족 간의 교류와 소통, 심리적인 배설의 욕구까지 발산하는 중요한 창구가 되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부모와 자식, 혹은 가족들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인 것 같다. 교류와 소통이 원활한 아이들은 편부․편모슬하건 혹은 조부모와 같이 살건 성격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 덧붙여 아이들의 심리적 배설의 욕구를 채워 줄 수 있는 가족 구성원 간의 놀이와 꺼리들이 다양하게 모색돼야 할 것 같다.

시골학교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가족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나는 이유는 경제적인 빈곤이 아니라 자녀들의 교육 문제라는 것을 안다면 해법도 분명할 것인데 교육정책 입안자들은 소규모학교 통폐합이 유일한 대안인양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타일벽화 학교 스탠드에 타일벽화를 제작하는 모습
▲ 타일벽화 학교 스탠드에 타일벽화를 제작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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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변한 학원 하나 없는 시골인지라 사교육 기관이라 해봐야 5㎞가량 떨어진 청계면소재지에 있는 태권도 학원이나 속셈학원이 전부다. 그래서 교사도 아닌 예술인 일곱이 근 2년째 시골초등학교 아이들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논술, 영어, 미술, 한문, 서예, 국악, 다도, 도예 등 분야도 다양하다.

이런 노력의 성과로 36명에 불과하던 학생 수도 늘어 60명에 이르렀고 10년 이내에 100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당초에 작은 시골학교의 폐교를 막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지역사회와 예술인들이 학교와 뜻을 모은 것인데 성과는 의외로 컸다. 막 학교 살리기가 농촌 살리기의 기틀이 되고 있는 셈이다.

초등학교 교육은 6년 과정이지만 이 학교는 4학급뿐이다. 1학년과 2학년이 같이 배우고 5학년과  6학년이 같이 배운다. 학생 수로 반을 가르고 작은 학교를 통폐합 대상으로 보는 교육정책은 마치 학교와 농촌을 부실한 기업처럼 구조조정 대상으로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작곡 아이들이 학교 주제가를 직접 작곡하는 모습
▲ 작곡 아이들이 학교 주제가를 직접 작곡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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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학교#다문화가정#모자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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