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억만!” “네......” 밤송이와도 같은 수염을 기른 포수 하나가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손을 들고 기운 없이 대답했다. 김억만처럼 함경도 길주에서 회령까지 온 포수는 모두 35명이었다. 그 외 함경도 명천, 경성, 부령, 회령, 종성, 경원, 온성에서 온 포수가 모두 200명이었다. 앞에서는 군관 하나가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리저리 설명하고 있었지만 김억만은 이를 한귀로 흘러들으며 천천히 다른 포수들의 얼굴을 훑어볼 따름이었다. ‘저 치는 뭐가 그리 긴장이 된다고 겁을 먹고 있누? 어이구 저 치는 기대에 부풀어 있꼬마. 그래봐야 산짐승 대신에 사람 쏘아 잡는 일이구마.’ “거기 너!” 군관의 호령소리에 김억만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김억만의 눈앞에 군관이 굳은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변군관이라고 알려진 그자는 각 고을을 돌며 포수들을 길주까지 이끌고 온 사람이기도 했는데, 기골이 장대하고 성격이 거칠어서 고분고분하지 않은 포수들도 그 앞에서는 기를 못 펴고는 했다. “나 불렀소?” 군관은 성큼성큼 다가가 김억만의 눈을 노려보았다. “내가 방금 뭐라고 그랬나?” 김억만은 능글능글한 태도로 대답했다. “못 들었음매.” 말은 그러했지만 김억만의 태도는 불손하지도 않았고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군관은 험악한 인상을 짓기는 했지만 더 이상 김억만을 탓하지 않았다. “우리는 청나라로 가 라선과 싸운다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라선이라고 얘기는 많이 하던데 라선이 어디찌비? 이름이 요상한 것이 청국 사람들도 못 당해 우리까지 부르니 이건 도깨비 이름인가?” 김억만의 말에 모두 키득거리기 시작하자 화가 난 군관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포수들을 다그쳤다. “배군관, 왜 이리 조용히 말하지 못하는가?” 위엄 있는 목소리와 함께 전립을 갖춰 입고 지휘관인 병마우후 신유가 모습을 드러내자 군관은 깊이 허리를 숙이며 그를 맞이했다. 포수들도 더 이상 키득거리지 않고 앞으로 자신들의 목숨을 내놓고 맡겨야 할지 모르는 신유를 바라보았다. “라선이 궁금하다는겐가?” “예! 궁금합매다. 장군님!”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가운데 김억만만이 힘차게 소리를 쳤다. 군관이 김억만을 슬쩍 노려보았지만 김억만은 별로 이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는 궁금한 것은 참고 넘기는 성격이 아니었다. “나도 그저 영고탑(지명. 현재 중국의 닝안현성)옆에 있는 별종이라는 사실 밖에 모르니라.” “그럼 장군도 모르는 적을 치러 간다는 말입매까?” 김억만의 계속되는 물음에 참지 못한 군관이 또다시 나섰다. “어허! 자네는 왜 이리 자꾸 나서는겐가!” 성질 급한 군관과는 달리 신유는 껄껄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은 후 말했다. “청국의 요청으로 조정에서 결정한 일이거늘 어쩌겠나? 이 중에는 4년 전 라선과 싸웠던 이야기를 소문으로 들은 이가 있을지 모르겠네. 그들의 생김새가 우리와 사뭇 달라 괴이하게 여길지 모르나 그들도 결국 사람일 뿐이네. 허나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네. 비록 조정의 명으로 우리가 이렇게 출병하게 되나 살기위해서는 원한이 없는 라선과 싸워야 하네. 그리고 싸워서 이긴 후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지.” 신유의 말로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 김억만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한 가지만 더 물어도 됩매까?” “뭔가?” “영고탑에 가면 청국에서 주는 밥을 먹는 겁매까?” 김억만의 말에 엄숙했던 분위기에 다시 웃음이 감돌았지만 신유는 진지하게 대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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