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쩌우? 어디야? 베이징에 그런 역 없어!"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중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 만난 베이징 토박이 친구 쉬지아가 했던 저 말에 대해 왜 깊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땅을 아니 지하철 노선표를 움켜쥐고 후회했다.
인터넷을 뒤져 예약한 베이징의 한인 게스트하우스는 베이징 지하철의 교외선인 13호선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었다. 베이징 중심부인 천안문 광장으로 가기 위해 장장 1시간이 걸리는 그런 동네에 숙소가 있다는 것은 무척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지하철의 크기는 서울의 그것보다는 약간 작은 인천 지하철 정도의 크기에 이용객은 서울보다 1.5배 정도 많은 것 같았다. 유교의 본고장이었지만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경우보다 오히려 어린아이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광경이 더 많이 눈에 보였다. 중국이 산아제한정책을 쓰면서 소황제(小皇帝)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연인들은 지하철 내에서도 무척 자연스럽게 애정표현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무척 더운 베이징이었지만, 부둥켜안은 연인들에게는 더욱 더울 법한 지하철의 천장에는 안타깝게도 에어컨이 아닌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다행히 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한 팀의 여행객을 만났다. 그들과 함께 만리장성과 용경협에 가기로 약속했다. 다음날 아침, 헤이처(黑車) 기사가 숙소 앞에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헤이처는 우리나라의 개인택시와 비슷한 개념으로 만리장성처럼 다소 먼 거리를 이용할 때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이동할 수 있는 차량이지만, 원칙적으로는 불법이라고 했다. 중국인들 역시 장거리 이동에 편리하고 비교적 값이 싼 헤이처를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베이징시 당국은 내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이 헤이처의 영업을 막아야하는 곤혹스러운 상태라는 말도 들었다. 우리를 기다리던 헤이처는 기대 이상이었다. 낡은 승용차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웬걸 검은 도요타 세단 한 대가 숙소 앞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실제로 베이징 시내에는 수많은 고급 승용차들이 보였다. 가장 많은 수가 독일의 폭스바겐이었고 다음이 도요타 그리고 우리의 현대자동차 순이었다.
'만리장성을 밟아보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사람이라 할 수 없다'고 마오쩌둥이 말했던가. 진정한 사람이 되기 위한 많은 관광객들이 만리장성에 오르고 있었다. 그 수가 엄청나서 마치 지하철에 탄 느낌이었다. 달에서도 보이는 유일한 인공건축물이라는 만리장성의 규모는 과연 엄청났다. 일행과 나는 다소 가파른 팔달령장성을 택했는데 오르는 동안 땀이 비 오듯 쏟아져 티셔츠가 젖을 정도였다. 지난 198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는 만리장성은 기원전 3세기 진 시황제의 명에 따라 기마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팔달령은 1505년 경 명나라 때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중건된 것이라고 했다. 오르는 것조차 힘이 드는 이 장성을 건설할 당시를 떠올리면서, 나는 20세기에 제국이 아닌 국가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진심으로 안도했다. 중국 국내의 총 22개 성 중 무려 7개의 성을 지난다는 만리장성의 총길이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만 6000km에 이른다고 한다. 만리장성의 총길이를 확인한 순간, 마오쩌둥이 "만리장성을 종주하지 않은 사람"이 아닌 "밟아보지 않은 사람"으로 범위를 축소시켜 '진정한 사람'에 이르게 해 준 것에 감사하며 오르기를 중단했다. 대신, 진정한 사람이 되었다는 증거로 마오쩌둥의 글귀가 새겨진 비석 옆에서 증거사진(?) 을 남겼다. 아쉬운 것은 만리장성을 다 돌아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증거사진을 찍기 위해 20원의 요금을 지불해야 했다는 것이다.
만리장성에서 진정한 사람으로 거듭난 일행은 용경협이라 불리는 협곡으로 향했다. 여행안내서에는 용경협을 남방 산수의 부드러움과 북방 산수의 웅장함을 두루 갖췄다고 표현하고 있었다. 입장료가 다소 비싼 (유람선 포함 인민폐 100원/한화 13,000원 가량) 탓일까? 용경협에는 한국 관광객이 80%이상이었다. 상인들 역시 한글 간판을 걸고 장사를 하고 있었고, 어설픈 한국어로 상품을 홍보하기도 했다. 노란색 용모양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5분 정도를 올라가니 용경협 유람선 선착장이 나왔다. 용경협의 절경은 과연 베이징 16경 중 하나로 선정될 만했다. 초록의 울창한 숲이 높게 솟아 우거져 있었고 댐으로 만들어진 호수를 둘러싸서 이어져 있었다. 산수화에서 볼 수 있던 깎아내린 기암절벽은 그 자태를 자랑했고, 유람선에서 바라보는 초록빛 호수는 더없이 시원했다. 마냥 바라만 봐도 좋은 풍경의 연속이었다.
마지막으로 베이징의 한인타운 우다오커우(五道口)로 향했다. 헤이처 기사는 자신도 우다오커우에 살고 있다며 한국에 대한 호감을 드러냈다. 한류 덕분인지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한국에 우호적이었지만, 헤이처 기사는 조심스레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의 말인 즉, "한국인들이 들어오면서 우다오커우 뿐 아니라 베이징의 물가가 상승했다"는 것이다. 이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우다오커우 상점 곳곳에 붙어있는 한국어 간판과 쇼핑을 즐기는 한국인들의 모습은 확실히 적지 않았다. 중국 대졸자의 평균초봉이 인민폐 2300원(한화 약 30만원)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다수의 중국인들이 느끼는 소외감은 적지 않을 것 같았다. | 베이징의 교통수단
베이징에는 많은 교통수단이 있다. 택시와 버스 그리고 지하철은 우리와 다르지 않지만 헤이처라고 불리는 대절 택시와 오토바이, 삼륜차 그리고 인력거 역시 그 수요가 적지 않다. 베이징 시민들은 특히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많이 이용하는 듯 했다. 출근시간이면 지하철역으로 이동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부분의 시민들이 자전거를 이용했다. 자전거의 종류 역시 다양했다. 전동 자전거가 눈에 띄었는데 자전거에 전기 모터를 장착해 전기 충전을 시켜 엔진을 돌리는 방식이었다. 중국의 택시는 서울의 요금에 비해 저렴한 요금 (기본요금인민폐 10원/ 한화 1300원 가량)이었으며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중국의 택시에서 특이했던 점은 운전석과 승객 사이에 창살을 달아 놓은 것이었는데, 마치 미국 영화에서 보던 택시 내부와 유사했다. 승객으로 가장한 택시 강도가 많아 택시 기사를 보호하기 위해 달아놓았다고 한다. 현대자동차의 소나타와 아반테(현지 명 엘란트라)가 전체 택시 수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만큼 많이 눈에 띄었다. 인력거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오토바이와 자전거로 나뉜다. 오토바이로 움직이는 인력거는 탈 만하지만 자전거 인력거는 추천하고 싶지 않은 교통수단이다. 왜냐하면 더운 날씨에 자전거 페달을 굴리는 인력거꾼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말 그대로 가시방석 위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밖에 서울보다 3도 이상 높다는 베이징의 더위를 식혀줄 에어컨이 없다는 것과 택시 요금보다 적어도 2배 이상 비싸다는 것도 추천하고 싶지 않은 이유다. 그러나 이런 자전거 인력거도 북해공원 북문 건너편 등지에 있는 '후퉁'을 돌아볼 때는 이용할 만하다. 워낙 미로처럼 길이 얽혀있는 탓에 혼자 걸어 돌아보기에는 길을 잃기 십상이고, 또 인력거 아저씨의 칭글리쉬(chingish) 가이드도 알아들을 만한 까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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