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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이유의 센느 강


파리 서북부 센느 강둑에 위치한 베테이유의 경관은 아름다웠습니다. 모네는 이 마을을 좋아했고 젊은 시절 몇 년을 머물렀습니다. 1878년 모네 가족이 화가로서 활동하기에 더없이 좋은 파리를 떠나 이곳에 온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네는 파리에서 몇 달을 보내고 나니 정말로 숨이 막혔다. 그는 도시 생활에 적응할 수 없었다. 시골과 신선한 공기가 필요했다. 어려워진 경제적 상황은… 부차적인 이유였다." (<MONET>(열화당) 중에서)


그 당시 그림은 잘 팔리지 않았고, 아내 카미유는 둘째를 낳은 후 잦은 병치레를 했습니다. 그는 파리에 화실도 없었습니다.


"제 화실요? 저는 한 번도 그런 걸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바로 여기가 제 화실이죠" (위의 책에서).


센느 강가의 정원이 그의 화실이었습니다. 사실 이 베테이유에서의 생활은 모네의 삶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렇게 좋아했던 베테이유를 떠나게 된 것도 사실은 집세를 내기 힘든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인상주의'라는 말이 놀림감이 된 지 몇 년 되지 않은 때고, 여전히 사람들은 모네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모네는 '인상주의'라는 말이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납득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언제나 이론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내 장점이라면 순간의 인상을 담으려고 애쓰면서 자연을 직접 보며 그림을 그렸다는 점밖에 없다." (<모네>(창해) 중에서)


모네는 다른 화가와는 다른 관점을 가졌습니다. 빛이 물결 위에서 요동을 치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걸 그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네에게 물은 항상 움직이는 것이고 변화하는 것이며 세상의 만물을 비추는 창이다. 즉 세상의 모든 색깔을 끊임없이 창출하는, 세상으로 열린 새로운 창이었다…." (도록 중에서)


그렇게 '빛'과 '물'이라는 두 요소가 모네의 화폭에서 만납니다. 그 빛과 물은 베테이유에서 문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센느강의 풍경을 담은 베테이유 시기의 작품에서는 물의 풍경과 물 위에 비친 자연의 풍광이 연출하는 빛과 어둠의 효과를 모네가 발견해 낸 병렬식 터치의 배치 방식인 색채 분할법을 이용해 시간과 날씨 변화에 따라 때론 눈이 부시게 표현해내고 있다." (도록 중에서)


'병렬식 터치'라는 말이 낯설었는데, 그림을 가만 보니 가로로 또는 세로로 두꺼운 덧칠이 연이어져 행해진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림 속에서 숲 속 풍경은 세로나 원에 가까운 덧칠이, 강물은 가로로 덧칠이 겹쳐져 칠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은 이런 덧칠이 잘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위로 향하는 나무들, 가로로 흘러가는 강물, 방향성이 불필요한 하늘을 구별 지어 나타냈습니다. 사실은 화가가 아닌 우리의 눈에도 이렇게 보입니다. 그걸 모네가 '발견'한 것이고요. 예술가의 역할이란 누구나 경험하는 평범한 사실들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처음으로 표현해낸 것이기도 합니다.


또 흰색과 녹색을 겹쳐 사용하여 순간적인 빛의 인상을 나타내려 했습니다. 그러니까 인상파 화가들은 나무는 녹색, 하늘은 푸른색 하는 식으로 고유한 색 하나만을 사물에 그리는 것을 부정했습니다. 빛에 의해 산란되는 사물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눈에 드러나게 나타나 있다는 것이 인상파 그림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상주의에 몰두해 있을 때의 르누아르의 그림 또한 그렇습니다.

 

지베르니의 센느 강


1883년 모네는 지베르니를 발견합니다. 센느 강과 엡트 강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이 아름다운 풍광의 마을에 매료된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집을 세 얻어 몇 년 지내다, 나중에 경제적인 여유가 되었을 때 아예 집을 사들입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지베르니의 정원을 가꾸게 됩니다.


그 전후로 몇 년 동안 모네는 장성한 알리스(모네의 두 번째 부인)의 딸들을 물 위 나룻배에 앉히고 그 모습을 그립니다. 그의 그림에 인물이 있게 되는 마지막 시기입니다.


"알리스가 낳은 딸들의 생기발랄함과 젊음이 그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배에 탄 아이들의 모습을 화폭에 많이 담게 되는데, 이 그림들은 진정한 '인상주의 시(詩)'가 깃들여 있는 작품들이 된다. 이를테면 물에 비친 그림자의 어른거림이나, 깊은 강물 속에서 너울대는 풀의 움직임, 이 모든 것이 그의 관심거리가 된다." (<MONET>(열화당) 중에서)


지베르니는 멋진 곳이었습니다.


"야생 붓꽃이 만발한 드넓은 목초지 사이로는 센느 강과 엡트 강에서 뻗어나온 두 지류가 흐르고 있었다. 가옥 뒤편으로는 경사가 완만한 비탈들이 펼쳐져 있었고, 늪지대에는 포플러 나무가 울창했다. 그 풍경은 고즈넉이 외진 장소인 동시에 개방된 장소로서의 매력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도록 중에서)


그리고 센느강의 지류도 그립니다. 위 작품은 지베르니에 정착한 지 3년째 되는 해에 그려집니다. '베테이유 센느강의 지류'와는 다른 면모를 이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투명하고 맑은 햇살이 바람에 의해 기울어진 빗줄기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 햇살에 의해 나무도 같은 방향으로 색채가 분할되어 나타났습니다.


요동치지 않는 것은 강물뿐입니다. 그 현란한 빛줄기를 소리 없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섞여 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인상파의 특징의 하나인, 평면성에 의한 윤곽선의 배제 때문입니다. 사물을 선으로 확연하게 구별하지 않습니다. 자연 사물의 색채도 다양하게 혼합합니다. 그리고 아주 빨리 그렸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빛과 강물은 정지를 싫어하니까요.


여기서 인상파 화가의 '색채 분할'에 대해 조금 더 언급하겠습니다. 이들은 원색을 중심으로 사용하되, 서로 섞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물감을 섞으면 밝기가 사라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중간색을 표현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하여, 섞어야 할 색을 따로따로 작은 터치로 화면에 병렬한다는 해결법을 생각해냈다. 그렇게 하면, 작은 터치이기 때문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면 개개의 터치는 보이지 않고 전체가 하나로 섞여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물감 하나하나가 따로 놓여 있기 때문에 밝기가 유지된다. 물감이 섞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물감에서 나오는 빛이 눈 속에서 섞이는 것이다. 인상파 화가들은 이것을 '시각 혼합' 또는 '망막상의 혼합'이라고 불렀다. 이 시각 혼합을 가져오는 묘사 기법이 바로 색채 분할이다." (<명화를 보는 눈> 중에서)


모네의 그림이 환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군요.

 

포르비예의 센느강


"모네는 캔버스를 들고 자연으로 나가 자연 속의 바람과 숨결, 시선을 마주한 채로 자연이 작가에게 전하는 시간과 순간의 느낌과 인상을 자그마한 화폭에 담으려고 부단히 노력한 화가이다." (도록 중에서)


사실 이렇게 된 데에는 기술의 발달도 한몫합니다. 물감 튜브가 만들어져 야외에서도 간편하게 작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야외에서 커다란 캔버스에 손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하여, (모네나 르누아르로 하여금) 시각적으로 경험한 것을 곧바로 묘사할 수 있게 해주었다." (<회화란 무엇인가> 중에서)


위 두 그림보다 더 후기에 속하는 세 번째 그림은 퍽이나 특이합니다. 화폭이 완전히 둘로 분할되어 있습니다. 실제의 모습과 강물에 반영된 모습이, 비슷한 면모와 색채로 입체성 없이 평면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연한 물감 기운이 마치 수채화 같습니다.


새벽이나 약한 노을의 저녁 모습 같은데 빛이 안개에 휩싸여 분산된 듯, 빛의 요동은 온데간데없고 차분한 기운만이 고여 있습니다. 침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 그림을 보니 인공의 빛이 없는, 자동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심지어 열차 경적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그런 곳에 가보고 싶어집니다.


포르비예의 정확한 위치를 책에서 찾다찾다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포르(port)'가 항구를 뜻하고 그림 속 풍경의 넓은 강폭을 고려하면, 노르망디 지방의 센느강 하류의 한 작은 하구 마을인 것 같습니다.


모네의 삶은 이렇게 센느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모네는 센느강을 거의 떠나지 않았습니다. 외국여행을 제외한 대부분의 삶을 모네는 파리를 비롯한 센느강 주변에서 살았고, 그의 상당수의 그림은 센느강 주변에서 그려졌습니다. 아르장테이유, 베테이유, 지베르니 등이 그렇습니다.


게다가 바다 그림도 많이 그렸는데, 그것도 센느강이 바다로 빠져나가는 노르망디 지방의 해안을 돌며 그렸습니다.


조금은 거칠게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한강과 프랑스의 센느강은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한강은 우리나라의 동쪽 지역 강원도 태백에서 기원해 흐르다가 경기도에서 북한강과 합류한 다음 서울 한복판을 지나고 김포를 거쳐 강화도 쪽으로 해서 서해 바다로 흘러들어갑니다.


마찬가지로 센느강도 내륙의 부르고뉴 지방 산지에서 발원하여 상파뉴 지방을 지나고 파리 동부에서 마른 강과 합류한 다음, 파리 한복판을 지나 지베르니, 루앙, 등을 거쳐 르 아브르에서 서쪽 영불해협으로 흘러들어갑니다.


다만 한강과 달리 센느강은(특히 파리 서쪽의 센느강) 일 년 내내 유량이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강변 문화가 발달 정착할 수 있었다는 점, 낭만적인 자연환경이 있는데다 강폭이 크지 않아 양쪽의 경관을 같이 그려낼 수 있다는 점 등이 그림을 그리는 데 아주 좋은 여건이 됩니다.


유명한 그림 '아르장테이유의 철교', 베테이유 센느강의 '해빙', '포르비예의 센느 강'도 모두 센느강 또는 그 지류의 그림입니다. 지베르니도 마찬가지고요.


사실 빛은 물 위에서 특히 흐르는 강물 위에서 가장 현란한 모습을 보이기에 모네로서는 강물을 떠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처럼 끈덕지게 센느강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모네를 '빛의 화가'라고 부르면서도 '물의 화가'라고 부릅니다.

덧붙이는 글 | <'빛의 화가 모네'전> : 서울시립미술관, 9월 26일까지. 02-724-2900, 월요일 휴관. 평일은 밤 10시까지. 


태그:#모네, #브루노,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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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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