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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고생이라는 것 창피하지 않은데" 동호공고생들은 말한다 "학교의 주인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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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승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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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여고-이화여대. 흔히 '장관 사모님 라인'으로 불리는 학력 코스입니다.
에둘러 가지 않겠습니다. 저는 서울 강남에서 자랐고 경기여고를 졸업해 지금은 이화여대에 다니고 있습니다. 세상의 말대로라면 '사모님 코스'를 밟고 있는 셈이지요.
고등학생 시절, 동문회 행사가 있는 날이면 검은 세단과 '사모님'을 기다리는 운전기사들로 바다를 이루던 운동장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물론 그 대단했다던 '대한민국 여성 엘리트 양성소'의 위세는 지금 예전만 못합니다. 하지만 많은 어른들은 여전히 저의 고등학교 이력을 들으면 "공부 잘 했나보다"라며 칭찬을 하기도 합니다. 또 반대로 "이대? 시집 잘 가려고 간 대학이구만"이란 비아냥거림도 많이 지긋지긋하게 듣는 것도 현실입니다.
그래요, 저 경기여고 나와서 이화여대 다닙니다행복에 겨운 말이라고 저를 욕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살아왔고 지금 살고있는 이력이 때로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오마이뉴스> 인턴을 하던 지난 여름 한 선배는 제게 이런 농담을 던졌습니다. "야, 넌 그냥 학교 졸업하고 대기업이나 취직하지 그래?" 이 말은 저에게 적지 않은 아픔으로 작용했습니다.
취재 현장에서도 종종 난처했습니다. 뉴코아 비정규직 대량해고를 취재할 때, 몇몇 노조원들은 저에게 살갑게 "집이 어디에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마다 저는 시원하게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제가 5일 반대로 "중학교 때 어지간히 놀았나보다"라는 편견에 신물이 난다는 동호정보공업고등학교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동호공고는 현재 남산타운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으로 폐교에 직면한 학교입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캠코더를 들고 동호공고로 향하는 게 많이 부담됐습니다. 선배에게 "겁이 난다"는 말도 했습니다. 저 역시 공고생들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것이지요.
학교에서 만난 학생들은 당당한 목소리로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고 외쳤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너무 '거친' 말로 튀어 나오면 "또 쌍시옷이 나오네, 다시 할게요"라며 원칙 없이 학교를 없애려는 어른들을 또박또박 비판했습니다.
작은 카메라를 보며 울음을 참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학교를 지켜주세요"라고 말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제 가슴을 쳤습니다. 학생들 말 속에 틀린 것은 없었습니다.
"경기여고가 어디 있나요?" "......"
"누나는 어느 대학교 나왔어요?"인터뷰를 마친 후 동호공고 1학년에 다니는 영준이가 제게 물었습니다. 저는 다소 망설이다 말했습니다.
"응, 이화여대 다녀."영준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영준이게 제가 물었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아니?"
"아니요, 모르겠어요."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 많이 놀랐습니다. 하지만 곧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고교생활의 목적이 대학입시가 아니라면 몰라도 되는 사항입니다. 반대로 제가 너무 당연한 기계 작동법을 모른다면, 공고생 영준이도 충격을 받을 수 있겠지요. 영준이는 이어 물었습니다.
"누나 고등학교는요?"
"경기여고."
"어디 있는 건데요?"망설여졌습니다. 왜 선뜻 강남에 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소각장 반대" "화장터 반대"…. 툭 하면 들고 일어나는 강남의 지역이기주의와 동호공고를 이전하라는 남산타운아파트 주민들의 모습이 너무 닮아서였을까요?
"학교의 주인은 우리라면서요"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동호공고에서 나와 남산타운아파트를 통과해 지하철역으로 향했습니다. 그 곳을 걷는 동안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지금도 한 학생의 너무도 당연한 말이 계속 생각납니다.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듯이 학교의 주인은 학생 아닌가요? 학교 주인은 우리들인데 왜 우리들 생각은 묻지도 않고 무시하죠?"아이들만이 할 수 있는,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말입니다. 학생들조차 납득시키지 못하는 교육행정은 그 자체로 비교육적입니다. 그건 민주주의 원칙을 위반한 폭력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밖에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서울시 교육위원님, 그리고 남산타운아파트 주민 여러분. 동호공고 학생들 가슴에 못을 박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