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찬성? 반대?
매일 집으로 밥을 먹으러 오는 길고양이에게 중성화 수술을 시키기로 결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1년 전, 길고양이에게 정기적으로 먹이를 주기 시작하면서 정보를 얻기 위해 들락거리는 한국고양이보호협회에서 줄기차게 길고양이 중성화가 중요하다고 세뇌(?)시키고, 나도 거의 100% 찬성했지만 당장 내 눈앞의 고양이에게 수술을 시켜야겠다고 결심하는 일은 어려웠다.
내가 현재 14년째 같이 살고 있는 반려견도 13살인 작년에 중성화 수술을 시켰다. 수컷이라 나이가 드니 전립선 비대 증상이 나타나 부랴부랴 시켰던 것이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의 유기견 문제 중의 하나가 대책 없이 새끼를 낳고 분양하는 것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우리 개는 발정기 때 집을 뛰쳐나가 다른 암컷에게 임신을 시키는 일은 없게 할 것이고, 만약 계획에 의해 새끼를 낳게 된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책임지고 새끼를 좋은 곳으로 분양시킬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갖고 태어난 것은 끝까지 지켜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길고양이의 경우는 경우가 달랐다. 암컷의 경우는 1년이면 서너 번 임신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때마다 새끼를 서너 마리 낳는다고 한다면 1년에 한 마리 암컷 고양이가 10마리 이상의 새끼를 낳는 셈이었다. 물론 도시 길고양이의 생활환경 때문에 그 새끼들이 모두 성묘로 자라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숫자가 많아지면 사람들의 민원이 많아지고 점점 고양이들의 생활환경이 나빠질 것은 뻔하다.
그래서 심정적으로 길고양이의 중성화에 찬성하는 입장이었고 TNR(포획한 후 중성화 수술을 시켜 같은 자리에 방사하는 방법)도 길고양이와 인간이 공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동네의 경우는 길고양이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아 이웃 주민들이 불평하는 소리도 듣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가끔 고양이들이 발정기 때 내는 소리 때문에 어느 집의 신짝이 날아가는 소리는 들었지만!
내가 매일 우리 집 마당에 길고양이들 밥을 챙겨주기 때문에 하루에 서너 마리의 고양이들이 밥을 먹고 마당에서 쉬고 놀다가 사라지기를 1년여, 그중 한 녀석이 길 고양이 답지 않게 사람에게 다가왔다. 사람에게 몸을 비비고 만져 주면 예의 그 기분 좋은 골골 소리를 냈다. 그래서 부쩍 우리 집 식구들과 가까워졌는데 지난봄 그 녀석이 세 마리의 새끼를 낳은 것이다.
새끼들이 부쩍부쩍 크고 마당에서 노는 모습에 식구들도 보며 귀여워하곤 했는데 여름에 들어서면서 또 발정기가 되어 수고양이들과 돌아다니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더 이상 중성화 수술은 미룰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새끼들에게 아직도 젖을 먹이고 있는 녀석이 또 임신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길고양이들은 암컷의 경우 잦은 임신과 출산으로 몸이 상해 4∼5살을 넘겨 사는 경우가 드물다고 했다.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찬성이고 반대고 간에 눈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자 판단은 초 스피드로 이루어졌다. 밥 먹으러 온 고양이를 잡아서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고 30여 분만에 중성화 수술은 끝났다. 또한 "고양이가 자궁이 너무 많이 상했네요. 벌써 꽤 많이 출산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라는 수술을 한 수의사의 말을 듣고 수술 결정을 하길 백번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 집에 드나들던 길고양이는 중성화 수술을 당하고 말았다.
아프게 해서 미안해, 그리고 믿어줘서 고맙다!
그 길고양이의 이름은 대장이다. 처음 봤을 때 암놈인지 수놈인지도 몰랐고 시꺼먼 놈이 듬직하게 잘 생겨서 대장이라고 불렀다. 그 대장 고양이를 수술 후 5일간 마당에 접해 있는 창고에서 돌보다가 오늘 방사했다.
그런데 창고에 갇혔을 때는 그렇게 나가고 싶다고 울며 조르더니 막상 창고 문을 열어주자 몇 걸음 걷지 못하고 한참을 주저앉아 있다. 자유롭게 세상을 활보하던 길고양이가 좁은 곳에 너무 오래 갇혀 있어서 잠시 길을 잃은 모양이다. 길고양이가 길을 잃다니….
그런 모습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게 얼마나 큰 공포였을까? 자유롭게 살던 길고양이가 생전 처음 이동장이라는 좁은 공간에 갇혀, 생전 처음 차라는 것을 타고 가서, 바로 수술에 들어갔으니. 내가 길고양이한테 이런 고통을 줘도 되는 권리가 있는 것일까? 내 판단은 옳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모습에 조금 마음이 찡했다.
마당에 나오더니 잠시 주저앉아 길을 찾는 녀석. 그 뒷모습을 보면서 '이 녀석 다시 우리 집에 안 올지도 모르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너무 큰 고통을 겪어서 우리 집 자체를 미워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잠시 그렇게 마당에 앉아 있던 고양이는 마당을 천천히 이리저리 구경하더니 담을 훌쩍 넘어 사라져 버렸다.
대장 길고양이는 안전한 자유를 찾아 떠나가 버렸을까? 이제 정말 인간 따윈 믿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떠나가 버린 걸까? 하지만 그날 대장 고양이는 밥 시간이 되자 정확하게 다시 나타났다. 3마리의 새끼와 함께. 얼마나 고마웠던지. 대장 고양이야, 아프게 해서 미안하고, 믿어줘서 고맙다!
이렇게 나는 도시에서 다른 생명체인 길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하나 더 터득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무리한 출산이 이어질 기미가 보이면 길고양이들을 잡아다가 또 중성화시킬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