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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돼지'. 이 말은 초등학생 때부터 서른셋이 된 지금까지 항상 저를 따라다니는 별명입니다.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별명이지만 친구들이 살갑게 "돼지야~~" 하고 부르면 아주 친근한 애칭이 되기도 합니다. 또 아주 어릴 때부터 '돼지'라는 말을 들어오다 보니 이제는 이 말이 저를 상징하는 또 다른 이름이 되어버렸습니다.

 

제 성격이 꽤 긍정적이고, 외모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살다보니 제 자신이 '뚱뚱하다'는 사실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거나 콤플렉스를 가진 적은 없었습니다. 넉넉한 몸집과 웃음으로 주변으로부터 '사람 좋아 보인다'라는 평을 듣는 것이 오히려 더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에게도 살이 쪘다는 이유만으로 크게 상처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사람 좋아 보이는지요?
사람 좋아 보이는지요? ⓒ 문동섭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2년, 대학을 갓 졸업하고 한창 일자리를 구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대학도서관 사서를 꿈꾸고 있던 저는 이곳저곳에 응시원서를 넣었고, 운 좋게 지방의 한 4년제 대학도서관에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긴장감과 설레는 마음으로 도서관 실무자 면접과 인사담당 처장 면접을 보았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총장 면접이었는데 대학의 사정으로 인해 최종면접이 총장 면접에서 재단이사장 면접으로 갑작스럽게 변경되었습니다.


조금 당황이 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저를 포함한 최종면접자 다섯 명은 폭신폭신한 카펫이 깔린 널찍한 재단이사장실로 들어갔습니다. 재단이사장은 유명한 종합병원의 원장으로 연세가 일흔은 넘어 보였습니다. 최종면접자들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재단이사장 앞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재단이사장은 좌측부터 차례대로 장래 포부와 업무 능력, 성격의 장단점 등을 질문하였습니다. 좌측에서 네 번째 앉아 있던 저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재단이사장이 저의 예상과는 너무나 다른 질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네는 몸무게가 몇 키론가?"

 

재단이사장의 뜻밖의 질문에 저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구… 구십팔 키롭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저의 대답에 재단이사장은 "자네 같은 몸은 나중에 30대 중반쯤 되면 성인병 생길 확률이 높아지거든, 그러면 업무에도 지장이 있을 거고…, 취직하고 싶으면 먼저 살부터 빼야 할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재단이사장의 말에 면접탈락을 직감한 저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조직에서는 저도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지만 풀이 죽은 목소리로 "네…"라는 대답만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다시는 뚱뚱하다는 이유로만으로 누군가에게 거부당하지 않겠다

 

 그 당시 이력서에 붙였던 증명사진
그 당시 이력서에 붙였던 증명사진 ⓒ 문동섭

면접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참으로 서글프고 길었습니다. 처음으로 '뚱뚱한' 제 자신이 싫었습니다. 재단이사장의 살 빼라는 말이 며칠 동안 계속해서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그 면접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은 저는 살을 빼기 위해 동네 근처에 있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다시는 뚱뚱하다는 이유로만으로 누군가에게 거부당하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로 한발 한발 열심히 산을 올랐습니다.

 

하지만 제 몸에 등산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마음은 정상을 향해 힘차게 내달렸지만 몸은 강력한 중력의 힘으로 늘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저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제 몸은 이미 제 몸이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힘들게 등산을 하다 보니 살 빼는 것도 싫어지고, 괜히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내가 비록 지방대 나왔지만 졸업평점도 괜찮고, 따기 힘든 자격증도 4개나 땄고, 어디 그 뿐인가 군대에서는 사단장 표창에, 대학에서는 총장 표창까지 받았는데, 이런 내가 단지 뚱뚱하다는 이유로 취직을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내가 반드시 취직에 성공해서 뚱뚱해도 취직할 수 있고, 일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야 말테다.'

 

취업실패에 대한 저의 울분은 결국 '비만인의 취업성공'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설정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이 당시에는 아주 진지한 목표설정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다이어트 포기 혹은 실패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그후 저는 취업을 하기 위해 더욱 더 열심히 노력했고, 마침내 꿈꾸던 대학도서관 사서가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일 못한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비만인의 취업성공'이라는 목표를 이룬 것입니다.

 

비록 제가 키 173cm에 몸무게 100kg으로 고도비만이지만 사회생활과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다이어트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물론 부모님과 주변으로부터 '제발, 살 좀 빼라'라는 잔소리를 늘 듣고 있지만 굳건한 저의 의지로 다이어트와는 담 쌓은 채 얼마 전까지 잘 지내왔습니다.

 

건강검진 소동으로 집안의 걱정거리가 된 나

 

그러다 얼마 전 직장에서 건강검진을 실시하였는데 제 혈압이 160/100mmHg 고혈압으로 나왔으며,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2차 정밀검진 대상자로 분류되었습니다. 검진결과를 가족들에게 이야기하자 그때부터 저는 집안의 걱정거리가 되었습니다.

 

평소 혈압이 높아 혈압약을 복용하고 계신 어머니는 혹시나 이 아들이 당신의 체질을 닮아 그런 것은 아닌지 걱정과 함께 괜히 제게 미안해 하셨습니다. 또 평소 집보다 성당에 있는 시간이 더 많으신 저희 할머니는 곧바로 손자의 무탈함을 기원하는 철야기도에 돌입하셨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평소 다이어트에 대해 가장 많은 잔소리를 해 오신 아버지는 혹시나 제게 큰 병이 있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모든 가족들을 걱정시키며 2차 검진을 받았습니다. 2차 검진결과 지방간이 있으며, 콜레스테롤수치와 간수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검사를 담당한 의사는 저에게 잘못된 식습관과 운동 부족이 이런 결과를 낳았으며, 앞으로 건강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성인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가족들은 큰 병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검진 결과에 안심을 하면서도 앞으로 건강관리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습니다. 저의 건강검진 소동(?)은 그렇게 저에 대한 가족들의 강력한 다이어트 요구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일을 통해 어머니의 걱정과 미안함, 할머니의 기도, 아버지의 노심초사를 보면서 저에 대한 가족들의 무한한 사랑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또 만일 제가 아픔으로 인해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겪게 될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한다면 저는 함부로 아플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몸은 제 혼자만의 몸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저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럴 것입니다.

 

뚱뚱한 것이 죄도 아니고, 무능력을 상징하는 것도 아니지만...

 

뚱뚱한 것이 죄도 아니고, 무능력을 상징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건강에는 분명히 좋지 않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걱정과 슬픔을 줄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달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현재 5kg 정도 감량을 했습니다. 제가 다이어트를 시작한 이유는 사랑하는 가족들의 당부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석 달 후 저와 결혼하게 될 그녀에게 저의 건강한 몸과 마음을 선물하기 위해서입니다.

 

저 하나만 믿고 결혼을 결심한 고마운 그녀에게 '오래오래 행복하게'라는 말이 무엇인지 평생토록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제가 건강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요즘 매일같이 폭발하려는 식욕을 억누르며, 힘차게 걷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마음 속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걷는 걸음 수만큼, 흘리는 땀방울 수만큼 행복의 크기도 커지다고 믿으며 오늘도 저는 굵은 땀방울을 온 몸에서 토해내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비만=질병'이라고?> 응모글


#비만#다이어트#뚱뚱#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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