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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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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미얀마, 남해, 중국 중에서 선택하여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미얀마에는 나 혼자 가야할 것 같은데 아이들 두고 가기 불안하고, 남해는 남편이 바빠 함께 가지 못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고, 중국 청도와 화북지방은 온 가족이 함께 가야만 가능하고. 해서 우린 중국으로 결정하고 짐을 꾸려 떠났다.

여행 떠나기 한 달 전부터 작은 준비들을 했는데, 가장 먼저 한 것이 체력준비였다. 남편은 "중국에선 많이 걸어 다녀야 한다"며 마라톤 연습할 때처럼 식구들을 청계천으로 데리고 나가 걷기 연습을 시켰다. 똘망이와 밤톨이는 4학년과 2학년답게 잘 걷는데(요즘은 초등학생들이 아줌마들보다 체력이 더 좋다), 문제는 바로 나였다. 빠른 걸음이었는데 어느새 혼자만 뒤처져서 속도가 나지 않는다.

아이들 학교 간 시간에 차근차근 여행 갈 준비를 했다. 신문사에 전화해서 여행기간(7월 28일부터 8월 7일까지)동안 넣지 말라고 부탁하고, 우체부아저씨에게 연락해서 여행기간동안 오는 편지들은 8월 8일 날 직접전달을 개인적으로 부탁하고, 휴대폰 로밍 알아보고, 귀중품들 다른 곳에다 옮겨놓고, 주인아주머니께 문 앞에 붙여놓은 광고지들 떼어달라고 부탁하니 어느새 시간이 흘러 출국할 날짜다.

남편은 두 번 정도 북경으로 출장을 갔었다. 그 때 경험을 살려 짐을 최대한 북경과 청도 날씨에 맞춰서 싸고(혹시 이동이 잦을지 몰라 네 식구가 각자 소화할 수 있는 무게만큼 배낭을 챙겼다), 드디어 7월 28일 인천에 있는 제2국제여객터미널로 갔다. 동인천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가 국제여객터미널 가는 버스를 타고 이마트 건너편에 내리면 된다. 버스운전사 아저씨가 연안부두에 가야 청도 가는 배를 탄다고 잘못 알려 줘서 다시 돌아오는 고생을 했다.

터미널에는 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모두들 짐이 어마어마하게 컸다. 우리가 탈 배는 'New Golden Bridge V'다. 약 700명가량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배다. 오후 5시에 승선하였는데 그 날 배에는 450명이 탔다고 한다. 우리는 청도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어머님을 찾아뵈려고 가는 지인의 식구들과 함께 배를 탔다. 마침 텔레비전에서 하는 한일전 축구경기를 중계해주고 있었는데 우리나라가 승부차기 끝에 6:5로 이겼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공연히 기분이 더 좋아서 여행 첫날 배에서 보내는 밤이 무척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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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워낙 커서 배 멀미가 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7월 29일 오전 9시경 드디어 중국 청도에 도착했다(중국이 1시간 느리니 우리시간으로는 10시다. 17시간이 걸렸다). 갑판 위에 나가보니 멀리 정박해 있는 배가 보인다. 인공기가 선명하게 나부끼는 것을 보니 북한 선박인가 보다. 새삼 중국에 왔다는 것이 실감난다.

지인의 어머니께서 미리 택시를 두 대 빌려 놓으셔서 우린 그 택시를 타고 내서시로 이동했다. 청도 항에서 내서시까지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창 밖에 보이는 하늘은 무척 파랗고, 멀리 보이는 집마다 지붕의 기와가 붉은색이라 아름다워 보였다. 항구에서 빠져 나갈 때는 길 가 풍경이 시골의 모습이었는데 문이 없는 공중화장실도 보이고, 더위에 윗옷을 벗은 채로 그늘에 앉아 쉬고 있는 중국아저씨들 모습도 보였다.

길 가에는 낯익은 이름들의 공장들이 보였는데 외국유명브랜드 공장들과 자동차 대리점(포드, 볼보, 닛산, 현대 등)들이다. 그러나 그 브랜드보다 더 많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도로 옆 가로수 마다 매달려 나부끼고 있는 '하이얼'깃발이었다. 

우리 동네 할인점에서도 볼 수 있는 하이얼. '중국가전제품을 사서 쓰다니'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펄럭거리며 기세 좋게 나부끼는 그 이름을 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중공이라고 부르다가 중국이라고 부른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변화가 엄청나다. 당장 우리들이 입고 있는 옷들과 배낭, 양말 등 한국에서 사서 입고, 신고 왔는데도 메이드 인 차이나다. 

도로 주변에 집이 보이지 않자 이번에는 끝도 없이 펼쳐지는 옥수수 밭이 나타났다. 산도 없고 강도 없고 오로지 옥수수 밭만 있다. 가격이 비싼 자일리톨 껌이 갑자기 저렴해진 가격으로 시장에 나와서 정보를 찾아 본 적이 있다. 가격이 저렴한 자일리톨 껌을 생산하는 회사가 사용한 자일리톨의 성분은 중국산 옥수수에서 추출한 것이었다(그래서 자작나무에서 추출한 자일리톨보다 더 가격이 훨씬 저렴했다). 옥수수 한 가지만 보더라도 '저 넓은 땅에 저렇게 많은 양을 심으니 중국의 물량은 내가 상상할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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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서시에 도착하여 저녁 때 쯤에 시장구경을 하러 갔다. 지인의 어머니께서 여러 가지 정보를 말씀해 주셔서 경청을 하였다. 중국 사람들은 우리와 달리 오후 4시부터 저녁이라고 한다. 또 우리처럼 여러 가지 반찬과 밥으로 포만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시장기만 면하는 정도라고 한다. 저녁 7시나 8시쯤엔 벌써 저녁시간이 끝나 메뉴에는 있으나 주문할 수 없는 음식도 있다고 한다. 

오후 5시 쯤 나와 차도 옆을 40분쯤 걸어갔다. 인도가 없다. 그리고 횡단보도에서 건너가기 위해 초록 불을 기다리는데, 사람들이 빨간 불인데도 막 건너가고, 초록 불인데도 차들이 도무지 서질 않고 휙휙 지나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뛰지도 않고 잠시 멈췄다가 차가 지나가면 다시 걸어간다. 우린 무서워서 막 뛰어 횡단보도를 건넜는데, 길 가던 중국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시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가장 많이 본 건물은 금융기관이었다. 중국은행부터 여러 은행들이 보였는데 남편은 그 은행들은 우리나라 농협이나 새마을금고 같은 곳이라고 했다. 중국드라마를 보면 은행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시골 같은 이곳도 이 정도니 중국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장사와 이익에 대해서 터득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드디어 시장에 도착했다. 낯선 풍경들이 마음이 든다. 우리 재래시장처럼 차도에 진열대를 세우고 옷도 팔고, 장난감도 팔고, 액세서리와 기타 생활용품들도 팔고 있다. 좁은 길 사이를 차와 삼륜차들과 오토바이 자전거가 사람들과 함께 아슬아슬하게 잘도 다니고 있다. 아까 지나왔던 차도와는 달리 이곳은 가게 앞 인도가 엄청 넓다. 의자와 탁자를 놓고 야외음식점을 차리고 있었다. 저녁에만 열리는 야시장이라고 한다. 구경하며 지나가는데 김현정 노래가 한국어로 어느 가게에서 울리고 있다. 좀 더 걸어가니 이번에는 이정현의 '바꿔'가 울려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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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너무 더워서 그곳에 있는 니콜라이백화점에 들어갔다. 깨끗하고 물건들도 괜찮아 보인다. 그 곳에서도 가전제품은 거의 하이얼이었다. 1층에는 KFC가 있었다. 국제적이란 것은 때로 여행을 와서 볼 때 별로 좋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것을 보고 싶은데 자꾸만 질리게 본 것들이 나타나니 얼른 그곳을 피하는 것이 좋겠다. 하지만 깨끗한 그곳에서 치킨과 콜라를 마시는 중국인들의 모습이 여유있어 보인다.

시간이 지나 좀 지나 어두워지자 아까는 없었던, 여러 가지 음식들을 파는 노점상들이 가득했다. 여기저기에서 기다랗게 생긴 화로를 마련하고 그 위에다 꼬치를 구우며 부채질을 했다.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며 특이한 냄새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우리 일행도 자리를 마련하고 앉았다. 마침 지인이 군것질 거리를 사러 간다기에 구경하러 같이 따라 나섰다.

사람들은 간이 의자에 앉아 음식들을 먹고 있었다. 볶음밥, 포자탕, 교자, 만두, 꼬치. 그 중에서 어떤 반죽을 프라이팬 위에 올려놓고 재빠르게 뒤집어 구운 다음 손으로 도를 말아서 동그랗게 만든 과자가 마음에 들었다. 손으로 얼마냐고 물은 다음 돈을 보여주니 가장 작은 단위로 파는 만큼의 돈을 집어 저울에 달아서 비닐봉지에 담아 주었다.

비닐봉지는 아주 얇은데, 사람들마다 이 비닐봉지가 없는 사람이 없다. 아까 도로 옆에서 걸어올 때 어떤 사람들은 길 바닥위에 비닐을 깔아놓고 앉아서 쉬거나, 음식물을 담아가거나 물건을 담아서 들고 갔다. 우리 동네에서는 아줌마들이 사장 가방을 들고 다닌다. 생선이나 두부를 살 때 나는 아예 집에서 그릇을 가져가기도 한다. 비닐봉투를 줄이기 위해서.어쩐지 중국도 그 비닐봉지쓰레기 때문에 곤욕을 치르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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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도 어른들도 이제는 자리 잡고 앉아서 먹기 시작한다. 그 중에 금충벌레라고 하는 꼬치가 있는데, 그 꼬치를 시킨 당사자는 고소하다고 먹어보라고 한다. 그러나 도저히 입 속에 집어넣을 수가 없었다(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번데기를 보고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청도맥주를 시켜서 양고기와 함께 먹으니, 바람은 불어 땀을 식혀주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니 낯선 땅이라는 두려움도 없이 그저 행복한 저녁 한 때였다. 우리 일행이 꼬치를 백 개도 넘게 먹으니, 다른 가게 사람들이 부러운 듯이 보기도 한다. 꼬치 한 개에 일 위안이나 이 위안이니(우리 돈으로 일 위안이 130원 정도) 10명이서 실컷 먹었는데도 그리 비싸지 않았다.

거리구경을 좀 더 하기로 하고 발걸음을 니콜라이백화점 맞은편에 있는 월호 공원으로 옮겼다. 내서 시 사람들이 모두 쏟아져 나왔을까? 사람들이 천지다. 입구에는 장난감 자동차를 죽 세워놓고 아이들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고, 한 쪽에서는 어린 소년과 소녀가 스포츠 댄스를 시범으로 추고 있고, 또 한 쪽에서는 노래방기계를 놓고 노래를 부르는데 맥주 시음회인지 여자사회자가 열심히 맥주에 대해 설명을 하는 듯이 보였다. 그 뒤쪽으로는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중국 사람들의 사교춤이 펼쳐지고 있었다.

중국음악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파트너를 정해서 춤을 추는데,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고, 여자끼리 남자끼리 춤을 추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공원에서도 그런 춤을 추지 않으니 재미있기도 하고 해서 한참 구경 했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밤 새 놀 것처럼 공원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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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파는 아이들 장난감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돼지 끈적이가 있는데 탁 던지면 돼지가 쫙 바닥에 퍼졌다가 제 모습을 찾는다. 우리나라 지하철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데 공원에서 그 장난감을 팔고 있었다. 또 요술공이라고 해서 우리집 아이들에게도 사준 접었다 폈다 하며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도 팔고 있었다. 문방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청도 내서시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은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크고 있다.

청도에서는 지인의 어머님 댁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아이들은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것 같은 삼륜차 타기를 좋아하는데, 타고 앉아있으면 덜덜덜거리고 경운기처럼 딸딸딸 소리도 나서 '딸딸이'이라고 불렀다. 딸딸이를 타고 가니 아이들은 좋아서 환호성이다. 중국말도 하나도 할 줄 모르면서 이렇게 중국의 첫 날 밤을 즐겁게 보냈다.

중국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아이들 일기쓰기다. 그 기록은 나중에 보물이 될 것이기에 꼭 해야 할 아이들 일과로 만들었다.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만두는 밀가루 덩어리고 포자가 우리나라 만두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똘망이는 썼고, 밤톨이는 금충벌레가 너무 징그러웠지만 포자 탕은 아주 맛이 좋았다고 썼다. 내일은 해수욕장에 가기로 한 날이라 두 녀석 모두 기대에 부풀어 잠이 들었다.


태그:#청도, #중국여행, #내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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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위생사 . 구강건강교육 하는 치과위생사. 이웃들 이야기와 아이들 학교 교육, 책, 영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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