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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시간, 시뻘건 해가 북경의 지평선 위로 솟았다. 북경의 지평선은 참으로 넓다. 그러나 과거의 북경과는 달리, 이제 그 지평선을 수많은 빌딩들이 막고 서 있었다. 나는 북경 시내 지도를 펴고,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산책 지점을 찾아보았다. 우리 일행이 묵는 숙소는 천단(天壇)에서 남동쪽 방향에 있고, 천단과 호텔 사이에 용담공원(龍潭公園)이 있었다.

나의 여행 일행은 아침 8시에 호텔 로비에서 집합하므로 산책 시간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시간 절약을 위해 호텔 앞의 택시를 잡아탔다. 호텔에서 용담공원까지는 걸어서 갈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지도에서는 바로 옆에 있는 듯이 보이는 공원이었지만, 택시를 타고 가다 보니 여러 개의 대로를 지났다. 그만큼 북경은 대도시이고, 다시 오게 된 북경에서 나는 북경의 규모를 다시 가늠해야 했다.

아직 이른 새벽이라 출근 차량이 많지 않고 대로변은 한산했다. 이 공원은 우리나라의 어느 가이드북에도 나와 있지 않지만, 공원의 규모는 엄청나게 큰 곳이다. 용담공원은 북경의 전통적 아름다움을 현대적 미로 조경한 공원이다. 외국의 관광객이 들르는 명소라기보다는 북경 시민들이 아침, 저녁에 산책과 운동을 즐기는 곳이다.

용담공원 북문을 통해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시민들이 이용하는 곳이라서 그런지 입장료가 중국 돈 2원밖에 되지 않는다. 공원의 호수가 북경 시내를 흐르는 구불구불한 운하와 연결되어 있고, 호수의 모양의 용의 머리와 꼬리를 닮아서 용담공원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공원을 들어서자마자 대도시에 자리 잡은 거대한 호수의 공원이 펼쳐진다. 호수 크기가 사방 4km나 되고, 공원 중 호수면적이 40%나 되니, 아침 산책코스로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밤에 조명을 밝혀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 용담공원 조형물 밤에 조명을 밝혀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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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앞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올림픽 조형물이 서 있고, 그 아래에는 총천연색의 꽃들이 가꾸어져 있다. 호수 위에는 금산사(金山寺) 본전과 탑이 인상적인 종이 조형물들로 만들어져 있고, 그 건물 아래에 각양각색의 무기를 든 무인들이 서 있다. 이 조형물 앞에는 '수만금산(水漫金山)'이라고 적혀있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금산에 물이 넘친다는 뜻이다. 밤에는 저 조형물 안에 조명을 밝혀서 야경과 화려한 볼거리를 즐긴다.

북경의 노인들은 아침마다 이 공원에서 운동을 즐긴다.
▲ 검무를 즐기는 노인들 북경의 노인들은 아침마다 이 공원에서 운동을 즐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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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공원 내에서는 태극권과 검무를 즐기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다. 나는 내가 여행했던 중국의 모든 도시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이른 새벽부터 운동을 즐기고 사교댄스를 열심히 즐기는 모습을 보아 왔다. 이 용담공원에서도 공원 호수변마다 수많은 노인들이 건강을 단련하고 있다. 많은 면에서 우리나라에 뒤떨어지는 중국이지만, 노인들의 이러한 건강 단련은 충분히 배울만한 가치가 있는 사항인 것 같다.

인공으로 만든 돌산과 연못이 아름다운 경치를 연출하고 있다.
▲ 용담 인공으로 만든 돌산과 연못이 아름다운 경치를 연출하고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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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공원의 이름을 있게 한 용담(龍潭)이 공원 내에서 가장 볼 만한 곳이다. 중국의 정원에 가면 항상 만날 수 있는 태호석을 용 모양의 석림으로 쌓아 가산(假山)을 만들고, 그 앞에는 작은 연못을 만들었다.

북경에서도 큰 공원에 속하는 용담공원은 1949년까지도 황무지였던 곳에 만들어졌다. 이 용담공원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완성되었고, 이후 수차례에 걸쳐 확장되었다. 호수 주변 건축물들은 북중국의 고대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정원의 조경양식은 당시의 현대적인 정원 디자인이 결합되어 있다. 이 공원에 산재한 사당과 사찰, 그리고 호수의 조경은 이때에 만들어졌고, 지금은 다양한 나무와 풀들이 풍성한 녹음을 자랑하고 있다.

용담공원이 만들어지던 당시의 중국은 국공내전이 끝나고 일본군이 물러간 후에 새로운 공산정권이 들어선 시기였다. 그들은 수도 북경에 새로운 공원을 만들어 국민들이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인력이 풍부한 중국답게 이곳의 황무지 땅을 파서 사방 십리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인공호수를 팠다. 한국전쟁 당시에 엄청난 병력을 우리나라에 쏟아 붓고도 그들은 이 공원에 또 엄청난 인원을 동원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인력도 놀라웠지만, 그 당시에 도시의 계획적인 발전을 위해 이 넓은 땅에 인공호수를 만들어버린 그들의 발상이 더 놀라웠다.

용담공원의 모든 시설에는 ‘용’이라는 이름이 들어 있다.
▲ 옥룡교 용담공원의 모든 시설에는 ‘용’이라는 이름이 들어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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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용담공원의 모든 건축물과 구조물에는 '용(龍)'이라는 이름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권력을 상징하는 용에 대한 강박증적인 추종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시원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는 다리 이름도 옥룡교(玉龍橋)이고, 거북할 정도로 현란하게 치장된 정자의 이름도 용정(龍亭)이다. 아름다운 수석을 모아놓은 정원은 그 이름이 용자석림(龍字石林)이다. 공원 안내문에는 중국의 고대 용문화를 드러나게 하는 현대적인 공원이라고 되어 있는데, 모든 장소에 용 이름을 붙이는 억지 설정이 많다.

이렇게 인위적인 설정을 빼고, 공원의 경치만 놓고 보면 이 용담공원도 참으로 아늑한 곳이다. 스모그 가득 찬 북경의 외곽에 만들어진 호수는 북경의 외관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용담공원의 시원스런 호수는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식혀줄 것이다.

호수 위로는 버드나무가 호숫물에 닿을 듯 그 줄기를 드리우고 있다. 독특한 용 모양이라는 편백나무, 대추나무가 무성히 자라 공원의 산책로를 덮고 있다. 이 장성한 나무들은 공원 건립 당시에 심어졌으므로 나이가 50대에 달하고 있을 것이다. 공해 냄새 짙은 도시 북경에서, 이 공원의 아침 공기는 잘 가꾸어진 정원만큼 상쾌하기만 하다.

중앙이 불룩한 아치형 모양의 옥룡교를 건너 호수 중앙의 섬에 들어섰다. 커다란 공연시설의 객석이 섬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섬의 주변은 호숫물이 찰랑거리고 있었고, 섬이 호수와 만나는 지점에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이 공원에서 만나는 북경 시민들은 무뚝뚝하기는 하지만 그 표정에서 여유가 묻어나온다.

사랑스런 정원을 산책하다 보니 차의 싹에서 나는 향기라는 이름의 명향정(茗香亭)이 있다. 호수 한 편의 이 고풍스런 누각은 맑은 차 한 잔을 마시기에 좋은 곳이다. 차를 마실만한 운치가 있는 곳이다. 나는 중국인들의 무례함과 공중도덕 상실에 짜증이 나다가도 차를 즐기는 중국인들을 보면서 중국 문화의 깊이를 다시 한 번 뒤돌아보게 된다.

산책을 즐기다 보니 어느덧 나의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용담공원 북문으로 다시 나와서 공사 중인 길을 따라 대로까지 걸어나갔다. 시간이 자꾸 흘러가는데 어느덧 출근시간이 되어 대로는 붐비고 있었다. 산책을 즐기던 여유로운 마음은 간데없고 빈 택시를 찾는 나의 눈은 바빠졌다.

겨우 타게 된 택시에서 택시 기사는 내가 준 북경 지도의 호텔 위치를 자꾸 더듬고 있었다. 나는 택시 기사에게 호텔까지 가는 길을 가리키며 호텔로 돌아왔다. 다행히 제시간 안에 호텔 방으로 돌아왔고, 호텔 방의 내 여행 동료는 아직도 잠을 자고 있었다. 더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상황, 나는 다시 여유를 찾았다.

덧붙이는 글 | 2007년 5월의 여행기록입니다.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북경, #용담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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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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