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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독도 이런 모독이 없다. 신문 만드는 사람들로서는 '총궐기'할 만한 일이다. 어제(6일) 정몽구 현대그룹 회장에게 '희한한 판결'을 내린 서울고법 형사10부(재판장 이재홍)의 사회봉사명령이 그렇다.

 

이재홍 부장 판사 스스로 '처음'이라고 말할 정도로 법원의 사회봉사명령은 이례적이다. 정몽구 회장이 언약했던 바대로 2013년까지 8400억 원을 출연해 좋은 일에 쓰라고 명령한 것까지는 그래도 봐줄 만하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가관이다. 준법 경영을 주제로 2시간 이상 강연하라는 것과 국내 일간지에 준법 경영을 주제로 기고하라는 '명령'이 바로 그렇다.

 

일부 언론이 지적한 것처럼 도대체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강연을 하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준법 강연을 들어야 할 사람한테 준법 강연을 하라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다. 또 누가 그 강연을 들으려 할 것인가. 현대 사원들 모아놓고 강연하라는 이야기인가. 들을 사람이 없으면 법원이 국민 세금이라도 써서 '들을 사람'을 사서 모아주기라고 할 것인가. 도저히 정상적인 판단이라고 보기 어렵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신문에 기고하라는 '명령'이다. 도대체 이들 판사는 신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건가. 재벌 회장의 글이면 아무 생각 없이 신문이 이를 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광고 지면을 사서 기고문을 실으라는 것인가. 도대체 범죄인에게 어떻게 '준법'을 논하는 글을 쓰게 해서 실으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모든 신문들이 정몽구 회장의 글을 받아 싣지 않으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신문, 나아가 언론에 대한 인식치고 이렇게 천박한 인식도 없다.

 

게다가 명색이 판사라는 분들이 헌법에 보장된 사상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에 대해서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이분들이 과연 법관인지 의심스럽다.

 

사회봉사명령으로 자연보호나 공공시설 봉사 같은 일을 시키는 것은 범죄자에게 그 생각과 무관하게 봉사활동으로 죗값의 일부를 대신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범죄자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지만, 그럴지 여부는 전적으로 범죄자 본인에게 달린 일이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든,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회봉사활동을 수행하든 그것은 전적으로 그 자신에게 달린 문제다.

 

하지만, 준법경영을 주제로 강연하거나 기고를 하라는 것은 정몽구 회장의 생각과 양심을 강제하고, 강요하는 것이다. 법원의 명령대로 할 때 정몽구 회장은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못할 것이다. 이는 명백히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준법경영이라는 주제에 대한 '모범답안'을 강요하고, 강제하는 일이다. 강요된 '준법서약'이라면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는 생각과 양심에 대한 검열이자, 강제다. '준법경영'에 대한 정몽구 회장의 평소 생각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쨌든 그 속마음이 됐든, 거짓된 꾸민 마음이 됐든 그것을 사람들에게 털어놓으라는 것 자체가 '억압'이며 '강제'다. 헌법적 가치를 준수해야 할 법원과 법관들이 어떻게 이런 판결을 내렸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한마디로 '반성문'을 쓰라는 것이지만, 따지고 보면 과거 독재 정권 시절 양심수들에게 '반성문'이나 '전향서'를 쓰라는 것이나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

 

사회봉사명령에 앞서 현대차가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는 재판부의 판결 자체가 보통 황당한 일이 아니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교과서적 정의에 대한 회의는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하지만 법원과 법관들이 이번처럼 벌거벗고 나서 그 평등과 정의의 원칙을 저버린 경우도 드물 것이다.

 

대한민국의 법원이, 법관들이 이래도 되는 것인지 근본적으로 생각할 때가 된 것 같다.


태그:#정몽구, #사회봉사명령, #사법정의, #재벌의 힘, #재벌봐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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