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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달력을 보지 않는다

말라위 호수에서 멋진 밤을 보낸 다음 날 수도인 릴롱궤(Lilongwe)로 가는 버스를 탔다. 릴롱궤로 직접 가는 봉고버스는 아침 8시에 출발하는 한 대뿐이다. 은카타베이에서 릴롱궤로 가는 길은 출발부터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외곽으로 빠져 나가자마자 커다란 나무 숲 사이로 시원하게 달린다.

쭉 쭉 뻗은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길은 마치 국립공원의 숲속을 달리는 기분이다. 키가 큰 나무 숲속의 도로를 만나니 생소하고 반갑다. 그동안 작은 관목이 자라는 탄자니아의 사바나 초원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20여분 정도 숲길이 이어진다. 은카타베이 외곽의 칼웨 숲(Kalwe Forest)을 지나는 길이다.

은자야 숙소 나무들에서 많이 보았던 개똥지빠귀(Gunning's Robin)새들을 숲속을 지나며 또다시 만난다. 참새같이 생겼으나 붉은색과 노란색을 띤 화려한 아프리카 개똥지빠귀는 여기저기 나무사이를 날아다니며 열심히 벌레를 쪼고 기분이 좋은 듯 지저귄다.

누렇게 단풍이 든 나뭇잎들도 많다. 적도 이남인 남반구의 아프리카에서는 7월은 날씨가 가을을 넘어 겨울이다. 우리가 사는 북반구와 달리 남반구에서는 7, 8월이 겨울이고 1, 2월이 여름이다. 사계절 기후가 정반대이다. 7, 8월을 여름으로 보는 것은 북반구에 사는 사람들의 사고일 뿐이다. 칼웨 숲의 누런 나뭇잎들은, 나무는 달력을 보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남반구든 북반구든 나무는 어디서나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지, 달력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바꾸지는 않는다.

크고 작은 강을 건너는 수십 개의 다리를 지나며 말라위 호수로 흘러드는 강들을 보는 재미도 있다. 루웨야 강의 다리를 건너 30분 정도 달리니 친테체(Chintheche)라는 곳이 나왔다. 역시 호수 해변의 관광지이다. 20여분을 더 가자 칸데 해변이 나왔다. 이 칸데 해변(Kande Beach)은 우간다와 콩고민주공화국의 비룽가 공원에 마운틴고릴라를 함께 보러갔던 뉴질랜드 여행객 로렌스가 적극 추천했던 곳이다.

은카타베이보다 조용하고 다양한 수상스포츠와 말 타기 등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트럭투어 여행하는 사람들의 단골 캠핑장이다. 버스를 타고 오다보니 도로 오른쪽에 칸데 승마(Kande Horse)라는 승마장 간판이 걸려 있었다. 승마장에는 10여 마리의 말들이 자유롭게 풀을 먹고 있었다.

칸데 비치에서 1시간 30분 더 내려와 드왕과(Dwangwa) 지역을 지나 조그만 마을 입구에 이르니 '월드비전'(World Vision)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에티오피아 랄리벨라의 플랜(Plan) 팻말처럼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이 지원하는 마을이다.

말라위 호수에서 잡은 잉어 같은 참보 물고기
 말라위 호수에서 잡은 잉어 같은 참보 물고기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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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스턴이 노예무역을 중단시킨 은코타코타

유명한 관광지중의 하나인 은코타코타(Nkhotakota)에 버스가 도착해 한참을 머무른다. 3시간째 차를 타고 달려왔다. 은코타코타는 국경도시인 카롱가와 함께 옛날 노예무역의 주요 항구였다. 19세기 야오족은 아랍 노예상인들이 제공하는 총포로 이웃 부족들을 잡아다가 그들에게 팔아넘겼다.

말라위 호 근처에서 잡힌 노예들은 카롱가와 은코타코타 항구에서 다우선에 실려 말라위 호를 지나 탄자니아 대륙으로 옮겨진 뒤, 바가모요와 킬와를 거쳐 잔지바르 섬으로 끌려가 중동과 세계 각지로 팔려나갔다.

다우선에 실려 가는 노예를 보면서 리빙스턴이 충격을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1858~1864년 사이 두 번째 아프리카 탐험에 나섰던 리빙스턴은 모잠비크의 시레(Shire) 강을 거슬러 올라오면서 말라위 호수를 따라 이곳에 도착했다. 리빙스턴이 쓴 아프리카 탐험기인 <잠베지 강과 그 지류>라는 책에는 은코타코타에 도착했을 때의 인상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우리는 1863년 9월 10일 오후 코타코타(은코타코타)베이에 도착했다. 길이가 10인치, 넓이가 5인치나 되는 큰 나뭇잎을 가진 장대한 무화과나무 아래 앉았는데, 주마 벤 사이디(부족장 줌베)의 마을에서 4분의 1마일 떨어진 곳이었다…얼마 기다리지 않아 이곳 부족장인 주마(줌베)가 50여명의 수행원을 데리고 우리에게 인사하기 위해 나타났다."

리빙스턴은 부족장인 줌베를 설득해 결국 노예무역을 중단시켰다. 은코타코타 병원 입구에서 있는 커다란 무화과나무는 리빙스턴이 부족장 줌베(Jumbe)를 만나 노예무역을 중단하도록 설득했다는 장소이다. 무화과나무는 이름도 '리빙스턴 나무'(Livingstone TREE)라 불린다.

은코타코타에서 오래 머물다 보니 승객들이 차에서 내려 화장실도 가고, 음료수도 사고, 움츠려든 어깨를 펴고 기지개를 켜기도 한다. 나도 내려서 맨손체조 비슷하게 스트레칭운동을 했다. 잠시의 운동이지만, 맨손체조는 몸이 개운하게 느낄 정도로 효과는 크다.

물고기를 파는 말라위 소년들

오는 길은 호수를 따라 달리기 때문에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았다. 버스가 호수 가까이 다가갔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면서 내려온다. 어느 길이나 바다나 강, 호수를 끼고 달리는 길은 재미있다. 지루한 직선이 아니라 약간의 굴곡이 있는 곡선 길을 따라 달리기 때문이다.

은코타코타가 호숫가 도시라는 것을 보여주는 풍경은 물고기 행상들이다. 정류장에 버스가 서자 각종 물고기를 팔려는 젊은이들이 버스를 둘러싼다. 붕어 같은 작은 고기도 있지만, 잉어 같이 중간 크기 고기도 있다. 메기 같은 고기는 거의 1m 가까울 정도로 큰 것도 있다. 말라위 호수의 메기 중에는 자신의 알을 새끼에게 먹이로 주는 1m이상의 커다란 캄팡고(Kampango)와 보통 크기가 20~30cm인 가장 흔한 음람바(Mlamba) 등이 있다.

버스가 서는 곳마다 물고기를 팔려는 젊은이와 소년들로 난리법석이다. 어떤 젊은이는 구운 고기를 바구니에 담아 팔기도 하고, 철사꽂이에 방금 잡은 물고기를 꿰어 꾸러미로 팔기도 한다. 호숫가 집집마다 거적 위에 고기를 늘어놓고 햇볕에 말리는 장면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들이 파는 고기는 주로 붕어나 잉어 같이 생긴 참보(Chambo)이다.

은코타코타에서 출발하자마자 10분도 안되어 작은 마을에 이르자 두 젊은이가 타는데, 갑자기 버스 안이 온통 생선 비린내로 진동한다. 한 젊은이는 물고기를 잔뜩 담은 플라스틱 양동이를 들었고, 다른 젊은이는 아예 철사로 물고기 10여 마리씩 입을 꿴 여러 꾸러미를 들고 차에 오른다. 그렇다고 누구하나 불쾌해하지 않는다. 너무나 익숙한 호수 주변의 일상생활이다.

말라위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를 햇볕에 말리는 모습
 말라위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를 햇볕에 말리는 모습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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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위 호수를 따라 은빛들녘을 만드는 갈대의 숲

말라위 호수 근처를 달리는 또 다른 재미는 갈대숲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 키보다 더 큰 갈대숲이 호숫가 도로를 따라 끝없이 펼쳐진다. 누렇게 잎이 바랜 갈대가 호수의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며 은빛들녘을 만들고 있었다. 버스는 한 시간 이상 갈대숲 사이를 달리면서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치아 늪지대(Chia Lagoon)를 지나고 있다. 말라위 호수를 달리면서 가장 멋진 장소 중 하나다.

아마 아프리카의 여름에 해당하는 12월에 이곳을 달린다면 파란 갈대숲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간다 음부로 호수 주변이 '나비의 숲'이라면 말라위 치아 늪지대는 '갈대의 숲'이다. 대여섯 명의 여자들이 갈대묶음을 머리에 이고 가는 모습을 여기저기 볼 수 있다. 사람 키의 2배가 넘는 긴 갈대를 머리에 이니 양 끝이 땅으로 활처럼 휘었다. 갈대는 지붕의 이엉으로 사용하거나 바구니나 장식공예품을 만드는데 사용한다.

한 시간 가량 더 호수를 따라 달리던 버스는 벤가라는 지역에서 호수와 작별하고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버스가 다리를 건널 때마다 정차를 한다.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도로는 포장된 2차선 도로인데 다리는 1차선폭으로 건설되어 두 차량이 동시에 다리를 건널 수가 없다. 천상 마주 오는 차량이 다리를 건널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다리 폭이 좁고 인도가 별도로 없다보니 사람들도 차량이 다리를 지나갈 때는 마냥 기다려야한다.

아주 오래 전 교통량이 적을 때 만들어진 다리다보니 도로의 폭보다 좁은 1차선이다. 마치 타자라 등 아프리카 대부분의 철길인 단선철도와 같은 단선다리이다. 단선철도에서 마주 오는 열차가 지나가도록 기차역의 대피선에서 열차가 기다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다리를 건너는 것이 위험하다보니 1차선 다리 앞에는 '1차선 다리 앞(Single lane bridge Ahead)'이라는 안전운전 주의팻말이 도로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말라위에서만 볼 수 있는 도로 팻말이다.

물론 일부 새로 놓은 다리는 2차선 도로보다 더 넓은 다리 폭과 별도의 인도 설치 등 안전에 신경을 쓴 것이 역력했으나 여전히 1차선 다리가 많았다. 말라위 호수 주변의 도로에 작은 다리가 많은 것은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지류인 작은 강들이 많기 때문이다.

말라위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를 팔기 위해 차량에 몰려든 행상들
 말라위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를 팔기 위해 차량에 몰려든 행상들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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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마는 교회의 천국이다

버스는 수도인 릴롱궤에 도착하기 전 살리마(Salima)라는 도시에 들러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다. 살리마 시내에서 가장 놀라는 것은 교회 건물들이다. 왜 그리 교회가 많은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교회 천국이다. 침례교회도 있고, 루터교회도 있고, 가톨릭교회도 있고, 그리스도 재림교회, 개신교회 등 기독교 모든 종파들의 집합체이다. 교파마다 경쟁을 하듯 교회를 지었고, 교회마다 영어로 자신들의 종파와 교회이름을 알리는 팻말을 세워놓았다. 아프리카 여행 중 가장 많은 교회가 있는 도시였다.

리빙스턴의 탐험 이래 많은 스코틀랜드 선교단이 말라위로 몰려와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펼친 결과이다. 현재 말라위의 종교적 분포는 기독교(개신교) 55%, 가톨릭 20%, 이슬람교 20%로 범 기독교가 압도적이다. 리빙스턴은 두 번째 아프리카 탐험(1858~64년)에는 은코타코타 주변까지 탐험했으나 마지막이자 세 번째 탐험(1866~73년)에는 말라위 호수를 거슬러 올라가며 탄자니아 탕카니카 호까지 탐험하면서 종교적으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셈이다.

살리마에서 릴롱궤로 가는 사이에는 철길이 지나고 버스가 철길의 건널목을 몇 차례 건너가야 한다. 철길의 폭이 좁은 것으로 보아 역시 협궤이며, 철길에 풀들이 자라고 건널목에 역무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운행이 중단된 철길이다. 우간다의 빅토리아 폭포 철길과 탄자니아의 모시 철도처럼 아프리카에서는 운행이 중단된 철길을 자주 보게 된다.

릴롱궤 교외에 다가오자 갈대로 만든 바구니와 식탁의자, 식탁 테이블, 안락의자 등을 도로 옆에 펼쳐 놓고 파는 행상들이 많다. 갈대 장식품이다. 말라위 호수 주변에서 여자들이 머리에 이고 가던 갈대묶음으로 만든 생활용품과 공예품들이다. 갈대제품들은 도시의 중산층을 겨냥한 물건이다.

갈대제품과 함께 검은 숯을 자루에 가득 담아 파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역시 릴롱궤의 음식점이나 가정의 땔감으로 숯을 판매한다. 도시냐 농촌이냐에 따라 길거리에서 파는 제품이나 물건도 다르다. 농촌지역에서는 주로 과일이나 음식, 야채 등을 판매한다.

말라위 호수의 칸데 해변 모습
 말라위 호수의 칸데 해변 모습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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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가지와 옛 시가지가 뚜렷이 구별되는 릴롱궤

마침내 버스가 목적지인 릴롱궤에 도착했다. 오후 3시 40분이니 7시간 30분이나 걸렸다. 내가 릴롱궤에 온 것은 다음날 모잠비크를 통해 짐바브웨의 하라레로 가는 국제버스를 타기 위해서이다. 이 코스는 모잠비크를 경유하는 비자요금을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단점이 있으나 말라위에서 짐바브웨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버스는 정부종합청사와 외국 대사관들이 들어선 신시가지를 지나 버스터미널과 재래시장 등이 있는 옛 시가지로 들어섰다. 릴롱궤 버스 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옆에 있는 무노루라마 국제버스(Munorurama Bus) 사무실을 찾았으나 몇 년 전에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여행정보는 3~4년 전 정보였다.

새로 이사 간 버스 사무실을 찾느라 릴롱궤 강의 다리를 서너 번 왔다 갔다 하다 힘겹게 발견했다. 그런데 너무 늦게 도착해서 표가 모두 매진됐다. 난처한 상황이다. 국제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하루를 더 기다리거나, 아예 잠비아를 거쳐 짐바브웨로 들어가는 일정으로 코스 자체를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꼭 내일 아침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고 말하자 사무실 직원은 "승객이 당일 날 취소하는 경우가 있으니 버스 출발시간에 맞춰 내일 아침 6시에 나와 보라"고 말한다. 자리가 비면 운전사에게 직접 돈을 내고 탈 수 있다는 말이다.

다음날 버스를 탄다는 보장이 없지만, 나로서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취소하는 승객이 있기만을 기대하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국제버스 사무실 위층에 있는 숙소에 방을 잡았다. 아침 일찍 출발하는 승객들을 위해 바로 위층에 여행객 숙소가 있었다. 잠만 자고 새벽에 바로 떠나야 하는 나 같은 배낭여행객에게는 정류장 옆에 숙소가 있다는 것은 둘도 없이 편리하다.

숙소에 배낭을 내려놓고 시내 구경에 나섰다. 아프리카도 이미 한 달 반이나 여행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여행에 자신감도 생기고 익숙해졌다. 낮에 어지간한 도시는 마음대로 걸어서 시내를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근처에 숍라이트라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대형 슈퍼마켓이 있었다. 각종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파는 곳으로 우리의 이마트나 미국의 월마트 같은 곳이다.

다음날 짐바브웨 하라레로 가게 되면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가야하기 때문에 생수와 음료수, 갓 구운 빵과 사과, 비스킷 등 버스 안에서 먹을 것을 잔뜩 사고, 사진기 건전지와 볼펜 등도 새로 샀다. 아프리카 장거리 탑승에는 자기가 먹을 것을 스스로 챙겨야지, 그렇지 않으면 쫄딱 굶어야 한다.

말라위 호수에서 "아프리카의 따뜻한 마음"이란 말라위 관광구호가 적힌 카누를 타고 있는 외국 여행객
 말라위 호수에서 "아프리카의 따뜻한 마음"이란 말라위 관광구호가 적힌 카누를 타고 있는 외국 여행객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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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에는 백인들만 나가라"고 외쳤던 말라위 목사 칠렘브웨

릴롱궤 시내는 신시가지와 옛 신가지가 뚜렷이 구별되는데, 신시가지의 정부종합청사 앞 도로의 이름이 칠렘브웨 로드이다. 말라위 독립운동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인 목사 존 칠렘브웨(John Chilembwe)의 이름을 따서 붙인 거리이다. 미국 신학대학에서 학위를 받는 등 서구식 교육을 받았던 칠렘브웨는 제국주의의 아프리카인에 대한 강제노동과 1차 세계 대전에 대한 강제 징병에 반발해 1915년 식민지 종주국 영국에 대한 봉기를 일으켰다.

"평화로울 때는 모든 게 백인의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면 아프리카인들에게도 평등하게 피를 흘리라고 요구한다. 전쟁에는 백인 부자나 가라. 부자나 은행가, 지주들이여, 전쟁에 가라, 가서 총알을 맞아라."

칠렘브웨의 유명한 아프리카인 출병 반대 연설이다.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아프리카인들을 '남의 전쟁'인 세계 1차 대전에 내모는 것에 반대해 말라위 국민들에게 참전을 거부할 것을 촉구했다. 칠렘브웨의 봉기에 앞서 1914년 말라위에서 영국 등 연합군과 독일군이 싸웠을 때 56명의 전사자가 났는데, 모두 아프리카인이었다. 애꿎은 아프리카인들이 유럽 백인들의 총알받이가 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때 조선인이 일본군에 강제 징병되어 '천황 폐하'를 위해 죽어간 것과 같다.

비록 칠렘브웨의 봉기는 실패로 끝나고 자신도 처형되었지만, 말라위 역사상 최초로 부족주의를 뛰어넘는 국가 정체성을 확립한 민족주의의 선구자이자 독립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자신의 신분이 목사였지만, 아프리카인에 대한 차별과 제국주의의 비인간성에 스스로 총을 든 행동하는 성직자였다. 칠렘브웨는 릴롱궤 거리 이름 뿐 아니라 매년 1월 15일을 '존 칠렘브웨의 날'로 정해 국경일로 추모하고, 말라위 지폐에도 그의 초상 얼굴이 들어있는 등 말라위의 상징이다.

칸데 해변의 말라위 호수
 칸데 해변의 말라위 호수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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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주화 과정과 닮은 말라위의 민주화 운동

칠렘브웨의 영향으로 말라위의 독립과 민주화에는 성직자가 커다란 기여를 한다. 1994년  장기독재정권을 내쫓고 민주화를 달성하는데도 종교계의 역할이 컸다. 독립운동의 지도자로 1964년 초대 대통령에 오른 하스팅스 반다(Hastings Banda)는 집권 이후 점점 독재자로 변신하게 된다. 1971년 스스로 '종신 대통령'을 선포한 반다는 1978년에는 독립이후 첫 국회의원을 선거하면서 입후보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영어시험을 실시하여 입후보자의 90%를 영어실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탈락시켰다. 터무니없는 발상이었다.

반다가 점점 이성을 잃은 독재정치를 강화하자 1992년 가톨릭의 주교단이  반다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한다. 이를 계기로 학생과 종교계를 중심으로 전국적인 민주화 요구 시위가 벌어졌다. 반다 정권은 결국 1994년 선거에 의해 축출되면서 장기 독재정권은 막을 내리게 된다.

지난 1987년 6월 항쟁 때 시민, 학생과 함께 우리 민주화의 한 축이었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연상케 한다. 말라위 민주화운동은 우리나라 민주화 과정과도 상당히 유사한 측면이 많다. 시민과 학생, 종교계가 힘을 합쳐 독재정권을 내쫓고, 민주화 시위를 통해 대통령 직접 선거를 관철하고, 비폭력 평화적 방법으로 정권교체를 이룬 점 등이다.

내가 다닌 말라위 배낭여행 여행루트(파란색)
 내가 다닌 말라위 배낭여행 여행루트(파란색)
ⓒ 아프리카보호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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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종식 이후 서방국가의 지지 철회로 무너지는 아프리카 독재국가들

반다가 국내의 민주화 요구에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1991년 옛 소련의 해체에 따른 국제환경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동서냉전의 종식과 함께 영국 등 서방국의 지원중단 뿐 아니라, 아프리카 국가 중 유일하게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던 남아공 백인정권의 몰락으로 안팎으로 지원세력을 잃어 고립됐기 때문이다.

케냐의 모이 정권의 일당 독재정권과 남아공 백인정권의 몰락과 비슷하다. 냉전시대에는 아프리카 뿐 아니라 아시아와 남미 등 전 세계의 독재정권에 대해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 독재정권을 묵인해준다"는 원칙이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외교정책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서방국가들은 독재정권 지원에 대한 국제적 비난에 직면하자 냉전종식 이후 태도를 바꿔 독재자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국내의 민주화 요구를 탄압하며 서방국가의 군사적 경제적 지원으로 버티던 독재정권들이 무더기로 몰락하게 되는 것은 필연이다.

1992년 케냐 모이 정권의 일당독재 폐지와 94년 말라위의 반다 독재정권과 남아공의 백인정권 몰락, 1997년 당시 자이르(콩고민주공화국)의 모부투 독재정권의 몰락, 아프리카 뿐 아니라 1998년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독재정권 붕괴 등 아시아와 중남미에서도 서방국가의 경제적 군사적 지원에 의존하던 독재정권의 몰락이 잇따랐다.

말라위에서 자주 보게 되는 무화과 나무와 개똥지빠귀 새
 말라위에서 자주 보게 되는 무화과 나무와 개똥지빠귀 새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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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지폐와 우리나라 지폐는 무엇이 다른가

말라위 지폐에 새겨진 칠렘브웨의 초상화를 보면서 나는 우리나라 지폐가 떠올랐다. 우리나라는 10만 원권 고액지폐에 누구의 얼굴을 넣어야 하느냐를 놓고 오래전부터 논란이 뜨겁다.

지폐는 단순한 상품의 거래수단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와 정체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지폐에 새겨진 인물과 동식물 등을 살펴보면 그 나라의 특징이 그대로 나타난다. 내가 다닌 아프리카 14개국의 지폐도 역사와 문화만큼 나라마다 달랐다. 여행하면서 각 나라의 지폐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중의 하나이다.

말라위 지폐의 가장 큰 특징은 5, 10, 20, 50, 200 콰차 등 거의 모든 말라위 지폐의 앞면에 독립운동가인 칠렘브웨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말라위 뿐 아니라 대부분 아프리카 국가의 지폐에는 식민지 시대 독립운동을 한 인물들이 그려져 있다.

케냐 지폐에는 독립 운동가이자 초대 대통령인 조모 케냐타의 얼굴, 탄자니아는 역시 독립 운동가이자 초대 대통령인 줄리어스 니에레레의 얼굴, 나미비아의 지폐에는 독일 제국주의에 대항해 싸웠던 전설적 게릴라 지도자인 헨드릭 위트부이(Hendrick Witbooi)의 얼굴, 모잠비크에는 게릴라 지도자인 에두아르도 몬들라네와 역시 독립투사이자 초대 대통령인 사모라 마셸, 보츠와나에는 19세기말 보츠와나의 독립유지를 위해 영국의 도움을 청하려 런던에 파견되었던 카마 3세와 바토엔 1세, 세벨레 1세 등 3인의 추장 얼굴이 그려져 있다.

옛날 중앙아프리카의 보카사 황제나 우간다의 이디 아민 대통령처럼 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얼굴을 지폐에 그려 넣는 낯 뜨거운 후진적 행태는 아프리카에서도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식민지배에 대항해 게릴라전이나 독립운동을 한 독립투사나 건국의 아버지들을 지폐의 얼굴로 새겨 넣고 있다는 것은 아프리카 국가도 나라의 정체성을 독립과 공화정에서 찾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말라위 10콰차 지폐에 새겨진 독립투사 칠렘브웨의 얼굴
 말라위 10콰차 지폐에 새겨진 독립투사 칠렘브웨의 얼굴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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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지폐에서 뒤틀린 우리 역사를 바라본다

이런 점을 볼 때 세계에서 제국주의 식민지배에 맞서 투쟁을 한 독립투사들이 해방 이후 가장 홀대 받는 나라는 바로 대한민국이다. 케냐의 조모 케냐타 국제공항이나 탄자니아의 줄리어스 니에레레 국제공항, 남아공의 탐보 국제공항처럼 우리나라는 독립투사들의 이름을 딴 국제공항도 하나 없고, 지폐속의 얼굴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아프리카보다도 훨씬 뒤쳐져 있다. 경제적으로 잘 산다고 그 나라가 훌륭한 나라는 아니다. 나라의 정체성과 민족정기가 살아 있지 못하면 건강한 사회라고 볼 수 없다.

물론 우리 지폐속의 세종대왕이나 율곡 이이, 퇴계 이황과 동전 속의 충무공 이순신 등은 훌륭한 우리의 조상이다. 그러나 화폐는 나라의 얼굴이자 현재 살고 있는 우리 체제의 역사적 정체성을 반영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는 해방 이전의 왕이 주인이던 왕정체제가 아니라, 역사상 최초로 국민이 주인인 공화정 체제이다.

당연히 공화정을 건설하는 데 직접적이고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을 그 나라의 지폐에 새겨 넣는 것은 나라의 역사적 정체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아프리카 뿐 아니라 식민지 경험이 있는 제3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독립투사를 지폐의 얼굴로 쓰는 것은 그들이야 말로 국민이 주인인 공화정 건설의 주역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나 우리나라나 식민지 경험이 있는 거의 모든 나라는 제국주의에서 독립한 이후 최초로 민주공화정 체제가 들어섰다.

아프리카 국가들도 대부분 독립투사들이 독립과 공화정의 상징으로 나라의 관문인 국제공항의 이름으로 또는 역사적 정체성의 상징인 지폐의 얼굴로 등장하고 있는데, 김구와 안중근, 유관순 등 우리 독립 운동가들이 이를 알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머나먼 만주의 황량한 벌판에서 눈보라치는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에서 이름 없는 독립투사들은 무엇을 위해 싸웠던가.

나라의 얼굴인 서울의 광화문 거리에도 김구나 이름 없는 독립투사들의 동상이 서 있어야하는 자리에 충무공 이순신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충무공 동상은 충무로에 세워서 영웅으로서 추앙하면 되는 것이고, 민주공화국 수도인 서울의 광화문에는 독립과 공화정의 상징인 김구나 독립투사들이 자리 잡아야 한다. 영웅은 있어야할 자리에 있을 때 더욱 빛나는 법이다. 해방 이후 뒤틀린 우리 역사가 자행한 비극적 현실이다.

아프리카에서도 식민지 종주국의 장교출신이 독립 이후 대통령이 된 사례는 아마도 영국군 장교 출신이었던 우간다의 이디 아민과 프랑스군 장교였던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보카사가 유일할 것이다.

아프리카 국가의 지폐에 나오는 고유의 동물들(위 왼쪽 마다가스카르의 여우원숭이, 오른쪽은 나미비아의 스프링복, 아래 지폐는 콩고민주공화국의 마운틴고릴라)
 아프리카 국가의 지폐에 나오는 고유의 동물들(위 왼쪽 마다가스카르의 여우원숭이, 오른쪽은 나미비아의 스프링복, 아래 지폐는 콩고민주공화국의 마운틴고릴라)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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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지폐에도 동물의 왕국이 살아 있다

아프리카 국가의 지폐에는 인물 뿐 아니라 각각의 고유한 동물이나 식물, 문화유산 등이 실려 있었다. 동물의 왕국인 아프리카답게 야생의 동물들, 이른바 '빅5'(Big5)라 불리는 덩치 큰 다섯 동물인 사자나 표범, 코끼리, 아프리카 물소, 코뿔소 등을 지폐에 새긴 나라가 많다.

케냐와 우간다, 탄자니아, 잠비아, 짐바브웨, 남아공 등 대부분 나라가 사자나 코끼리, 기린, 코뿔소, 아프리카 물소 등을 지폐에 그려 넣었다. 콩고민주공화국과 르완다는 마운틴고릴라, 나미비아는 쿠두와 스프링복, 하테비스트 등의 동물, 마다가스카르는 여우원숭이, 마다가스카르에서 우연히 본 코모로 공화국의 화폐에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실라칸스가 있었다.

에티오피아의 지폐에는 청나일폭포, 보츠와나는 오카방고 삼각지, 짐바브웨에는 '돌의 나라'라는 이름답게 그레이트짐바브웨와 3개의 돌이 쌓여있는 에프워스 밸런싱 락 등 돌 유적지, 마다가스카르는 바오밥나무와 여행자의 나무가 새겨져 있다. 우간다와 잠비아의 지폐에는 목화를 따는 장면과 우간다의 쪄서 먹는 바나나인 마토케(Matoke), 말라위는 담배 밭 등이 그려져 있어 그 나라의 특산물을 보여주고 있었다.

시내를 걸어서 둘러보니 릴롱궤는 그리 복잡하지 않은 아담한 작은 수도라는 느낌이 들었다. 옛 시가지에는 버스터미널과 재래시장, 각종 생활용품을 파는 노점상, 그리고 시내를 흐르는 릴롱궤 강 등을 볼 수 있다. 사람들도 그리 서둘거나 위압적인 인상들이 아니다. 거리를 물어도 귀찮아하지 않고 성실하게 알려주려고 한다. '아프리카의 따뜻한 마음'이라는 말라위의 관광 구호처럼 사람들이 친절하고 평온한 도시였다.

강 언덕의 한적한 작은 마을이었던 릴롱궤가 영국 식민지시대를 거쳐 수도가 된 것은 지난 1975년이다. 그동안 수도는 남쪽의 블랜타이어였는데, 지금도 여전히 블랜타이어는 경제수도이고, 릴롱궤는 정치 수도로 불린다. 릴롱궤에 아직도 덜 도시화된 농촌 풍경의 잔영이 남아 있는 것은 수도의 역사가 짧기 때문이다.


태그:#아프리카, #말라위, #칠렘브웨, #릴롱궤, #아프리카지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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