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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품 구입이 쉽지않은 영세 IT벤처기업에게 불법소프트웨어 단속은 치명적이다. 사진은 MS 윈도비스타 시연회.
 정품 구입이 쉽지않은 영세 IT벤처기업에게 불법소프트웨어 단속은 치명적이다. 사진은 MS 윈도비스타 시연회.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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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이야기①] 불쌍한 IT 노동자, 불쌍한 IT 벤처기업 사장

나는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에서 3년 동안 병역특례로 근무한 후 2003년 2월에 회사를 설립하였다.

최근 노예노동으로 억압받는 IT 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발하는 기획 기사들을 보면서 한편으로 함께 느끼고 가슴 아파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러한 노동을 강요하게 되는 스스로에게 자괴감을 가지기도 한다.

친구와 함께 두 명이서 시작한 우리 회사는 이제는 스물댓 명의 직원이 있는 그런 대로 모양새를 갖춘 회사로 성장하게 되었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척박한 IT 소프트웨어 개발 현실에서 월급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성장하는 회사를 꾸려 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은 일이다. 스스로 노예노동자라고 선언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고발이 단순한 푸념이 아니라 처절한 삶의 절규임이 현실인 상황에서 중소 벤처회사들의 처지 또한 벼랑 끝에 놓여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가끔 노예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기사에서 사장만 배불리기 위해 노동한다는 구절을 보기도 하는데, 그 정도로 직원들을 혹사시키면서 사장이 배부를 수 있는 회사만 되더라도 많이 앞서 있는 회사라 여겨진다.

착한 자본가는 없다고 주장하며 학생 시절에 돌도 많이 던져보기도 하였지만, 무산의 자본가가 된 후에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장들이 어떻게나 눈에 잘 뜨이는지, 착하지는 않더라도 금빛 이빨을 번득이는 착취의 화신과는 거리가 먼 시대의 희생양, 또는 시대의 개척자들을 많이 보고 만나게 되었다.

최근에 비슷한 처지에 있는 선배 사장들이 힘겹게 유지해오던 회사를 접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설비가 없는 소프트웨어/인터넷 업종의 회사를 정리하게 되면, 물론 체불임금 등으로 피해를 입는 직원들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마지막 자금을 대기 위해 그동안 가지고 있던 자신의 모든 자산과 신용을 총동원한 후 건질 것 하나 없이 마지막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사장들의 종말 또한 처절하다.

IT 강국, 지식정보화 산업을 통한 미래 한국의 꿈은 노예노동에 질식하고 있는 IT 노동자와 더불어 IT 벤처기업의 사장들과 함께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무너져가는 IT 노동자들의 현실뿐만 아니라 무너져 가는 IT 벤처사장들의 꿈 또한 우리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현실이다.

우리 회사는 그나마 착실히 성장해오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최근에 회사를 정리한 선배 사장의 멘트는 아직도 귓가에 멤돈다.

"세원아, 니도 이제 미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냐. 결혼도 하고 해야지…."

[벤처이야기②] 한중일을 잇는 동아시아 온오프라인 비즈니스 중심기업

벤처거품 다 꺼지고 IT 벤처기업은 대기업의 저임금 하청회사로 고착화되던 시기인 2003년 2월에 회사를 설립했다. 그러한 상황적 인식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고, 그 상황을 한중일 동북아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으로 극복해낼 수 있다는 일종의 관념적 자신감으로 회사를 설립한 것이었다. 여러 업종에서 창업하는 거의 모든 분들은 관념적 자신감, 또는 환상의 거품을 모두 가지고 있다.

대형 SI의 하청으로, 저비용의 중소 클라이언트들한테 시련을 겪으면서도 한중일, 한중일 나발을 불었더니 4-5년 지난 지금은 어떻게든지 일본과 중국과 비즈니스적으로 밀접한 연관을 맺게 되었다.

원래 일본에는 형이 회사를 설립하면서 창업 초기부터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이제 사업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게 된 것이고 최근에는 중국과의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많은 고민과 열정을 쏟아붓고 있는 중이다.

90년대 IMF 위기극복을 위한 충격 요법으로 뻥튀기된 IT 환경의 몰락 현실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돌연변이적 상황을 기껏 스물댓명의 직원이 있는 중소기업의 역량으로 돌파해낼수 없다면 외부의 패러다임 변화로 눈을 돌릴수 밖에 없다고 여겨진다.

가끔씩, 이러한 구상을 하고 현실로 만들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내가 "애국자"라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세상의 긍정적 변화 발전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의 열정과 도전을 통해서 만들어졌을테니.

[벤처이야기③] 불법 소프트웨어 단속과 피해금액

지난달 중국 출장을 다녀온 다음날, 한 떼의 험악한 사람들이 회사에 들이닥쳤다. 수색영장과 정보통신부 산하 사법 경찰관 신분을 제시하며 회사 컴퓨터를 일일이 뒤지더니 두 장의 불법 프로그램 사용 리스트를 내어 놓는다.

대충 훑어 보니 회사 문닫을 상황인데, 친절하게도 고가의 프로그램 몇몇은 삭제해 주는 아량도 베풀어 준다.

보안 관리를 메뉴얼대로 철저히 하는 일부 대기업 이외 90% 이상의 회사들에서 이런 식으로 뒤진다면 우리 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개별 직원이 설치한 프로그램 모두 적발 대상이니 실제 회사 업무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는 적발된 건의 50% 정도가 될 것이다.

대부분 마이크로소프트사와 어도비사의 제품인데, 그 목록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IT 강국 대한민국의 현실에 서글픔이 밀려들었다.

일주일 후, 검찰청에서 호출이 왔고 피해금액 4500만원 딱지를 확인하고 왔다. 4500만원 어치 정품 소프트웨어를 구매하고 고소 고발 당사자인 법무법인에서 4500만원에 대한 합의를 보고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물론 불법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직원 개인들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응당 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에서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는 비용은 2000만원 정도인데, 그럼 그 이외의 비용은 어떻게 발생한 것인가.

마이크로소프트사와 어도비사 등 글로벌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이러한 법률과 정책을 제정하도록 압박한 데 든 로비 비용과 일부의 이익을 보장해 줌으로써 시스템적인 결탁관계를 유지하는 저작권협회와 소송대리인인 법무법인의 손으로 들어가게 된다.

대기업으로부터, 또는 여러 "갑"들로부터 노동에 대한 직접 착취를 당하는 데에야 익숙해져 있는 터라 당황하거나 놀라거나 하지는 않는다. IT 노예노동 및 야근에 관한 기사가 떴을 때, 친한 직원 중에 누가 기사의 URL 주소를 메신저로 보내면서 "참 공감이 가네요"류의 메시지를 보내오면, "야! 저런 회사도 있는데 우리 회사는 백 배는 낫네~"라고 능청스럽게 받아주는 여유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적인 착취 관계에 직면하게 될 때면 무기력한 좌절감이 밀려온다.

회사의 자본금 정도 되는 돈을 얼굴도 한번 마주한 적 없는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가져다 바쳐야 하는, 그리고 그 비용에 대한 노동의 대가를 노동에 질식하는 우리 직원들로부터 얼굴 마주하며 뽑아내야 한다는 비애.

갑자기 분노감이 밀려왔다. 이런 일에 쉽게 합의해 줄 수 없다.

민형사상 100% 필패의 구조이지만 이런 억한 심정을 어디다가 호소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저작권에 대한 보장은 하면서 국내 중소 회사들의 상황을 배려해줄 수 있는 훨씬 세련되고 부드러운 절차가 분명히 존재함에도 초국적 대형 기업과 소수 그 대리인들의 이익만을 보장해주는 제도에 누군가 계란이라도 집어 던져야 하는 것 아닌가.

오전에 술 덜 깬 상태에서, 소송대리하는 법무법인에 전화를 걸어 이런 취지로 한마디 했다. 그러니 돌아오는 냉정하고도 쌀쌀한 말.

"마음대로 하세요~"


태그:#IT벤처기업, #불법소프트웨어, #단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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