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회령에서 출발한 지 8일 만에 영고탑에 도달한 조선군은 청나라 지휘관 사르프다의 간소한 환영식을 받았다. 조선군을 맞이하려 도열한 청나라 군대를 보며 김억만은 투덜거렸다.


"원 저놈들 머릿수도 많구먼 뭐가 부족하다고 자기들 싸움에 우리까지 불렀담."


그 앞을 배군관이 쓱 지나가며 중얼거렸다.


"청나라 되놈들 총 놓는 솜씨가 아주 개판이라서 그래. 우리가 싸워야 할 나선 양인들은 총 놓는 솜씨가 귀신같다더군."


배군관이 지나간 후 한 참후에 김억만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누가 지 한테 물어 봤남."


"자 모두 듣거라!"


초관 박세웅이 손뼉을 치며 크게 소리쳤다.


"우리는 이제 청군과 함께 배를 타고 강을 따라나선 양인들을 치러 갈 것이니라! 가지고 온 짐과 식량은 배에 실어 먼저 실어 두어야 하니 모두 서둘러라!"
"아따…, 좀 쉬고 할 일이지."
"잔말이 많다! 서두르지 않으면 곧 해가 진다!"


조선 병사들은 투덜거리며 수레에 실은 짐과 식량을 짊어지고 청나라 지휘관들의 지시에 따라 먼 강가에 정박되어 있는 배에 이를 실었다. 늦은 시각까지 일을 한 뒤 조선병사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청나라 병사들과 함께 아침점고를 마치고 온 포수들 사이에서 뜬금없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거 포수들은 죄다 나누어져서 청나라 놈의 지휘를 받게 된다는구만."
"말도 안 통하는 놈들 지휘를 받으면 어쩌란 말인가."
"그러니 말일세."


포수들끼리 이러저러한 말이 오가는 도중에 배군관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급한 마음에 평소에 거리를 두어왔던 그를 잡고 사실 여부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거 사실일세."
"에구!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한단 말이외까? 저 되놈들이 불로 뛰어들라면 불로 뛰어들고 물로 뛰어들라면 물로 뛰어들라굽쇼? 내 그리 죽긴 싫소.."
"맞소 맞소!"


포수들이 모두 입을 모아 한목소리를 내자 배군관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굳은 표정으로 소리 질렀다.


"야 이놈들아! 난들 어디 그게 좋은 줄 아느냐!"


포수들이 움찔하여 조용해지자 배군관은 머쓱한 표정으로 언성을 낮추어 말했다.


"전투 중에만 그렇게 나뉘는 것이니 소소히 신경 쓸 것은 없네."


침울한 분위기를 억누르며 청나라 병사들과 함께 강으로 이동한 포수들은 각기 작은 배에 나누어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밀려 가는 포수들의 표정은 침울하기 짝이 없었고 노를 저어가는 한인(漢人)의 표정도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저 배는 대장선도 아닌데 뭐가 저리 요란스러운가?"


포수 하나가 그들의 옆으로 나란히 가는 배를 보고서는 새삼스럽게 말했다. 배 가장자리로는 병사들이 흔들리는 배 위인데도 불구하고 창을 잡고 다리를 벌려 굳게 서 있었고 작은 지붕이 설치된 배의 가운데에는 젊은 청나라 무관 하나가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청나라 놈들 팔자 조∼오타! 완전 뱃놀이를 나왔구나!"


배 끄트머리에 길게 누운 김억만이 모두가 깜짝 놀랄 정도로 크게 소리를 쳤다. 그 소리에 차를 마시던 청나라 무관도 김억만이 탄 배를 쳐다볼 정도였다. 그 청나라 무관이 사람을 불러 무엇이라고 이르자 그 배는 점점 김억만이 탄 배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에구 뭐야! 이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거 아니야?"


사람들의 작은 소동에 누워만 있던 김억만도 조금 당황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점점 다가오는 배를 바라보았다. 청나라 무관은 어느덧 배의 앞머리까지 나와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붉고 푸른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허여멀쑥한 얼굴을 한 그 무관은 대뜸 김억만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사르프다#영고탑#최항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