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아주 먼 옛날을 일컬어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이라고 한다. 그게 언제쯤일까. 아무리 멀리 잡아도 조선 후기를 넘어갈 수 없다. 이 땅에 담배가 처음 도입된 게 조선후기였으니까. 고려는 호랑이가 담배 피기도 전 시대였다.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미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란 책을 통해 고려시대 사람들의 생활사가 소개된 적이 있다. 재미있게 읽혔던 책이다. 최근 한국역사연구회 개경사 연구반에서 <고려 500년 서울 개경의 생활사>를 출간했다. 남북 교류의 폭이 확대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는 상황에서, 개성 관광 문도 열리고 개성 공단 사업도 확장되기를 바라면서 개성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대중들과 함께 나누고자 했던 것이 책의 편찬 동기라 밝히고 있다. 변방에서 도읍지가 되기까지 수도가 되기 전까지 개성은 변방에 불과했다. 이 일대에 사는 사람들 역시 변방 사람들일 뿐이었다. 고려 왕조가 들어서면서 변방에서 수도로 바뀌었다. 이런 변화는 전시대와의 결별을 의미했다. 신라라는 낡은 질서와의 결별, 골품제라는 낡은 신분질서와의 단절, 경주 김씨라는 낡은 정치 세력과의 단절을 의미했다. 고려의 수도가 되었지만 개경은 완벽한 곳이 되지 못했다. 지세도 약하고 수덕도 순조롭지 못한 곳이라고 했다. 건국 초부터 약한 개경의 지세를 보완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 비보사찰을 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종 때부터 개경의 기운이 쇠락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남경 길지설과 서경 길지설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묘청이 난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일들은 고려 왕조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것이었다. 이민족의 침입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다. 거란의 2차 침입 때 개경은 함락되고 현종은 나주까지 피난했다. 공민왕 때 홍건적의 침입을 받아 개경이 함락되고 왕은 안동으로 피했다. 몽고 침입을 당해 최씨 무신정권은 강화도로 천도했다.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500년 동안 고려 왕조의 수도였던 개경은 명실상부한 고려의 중심이었다. 정치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조운이나 교역의 중심지기도 했다. 각 지방과 외국의 물산이 집결되는 경제의 중심지였으며, 뛰어난 지식인들이 모여드는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생활사 읽기가 주는 감동
생활사란 주제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이 다양한 계층 사람들의 갖가지 삶의 모습들을 두루두루 살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개경 사람들의 삶을 생활사로서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안으로는 황제, 밖으로는 왕이었던 고려 국왕들, 사치와 부정에 젖어 살았던 귀족과 관료들, 속세를 거닐었던 승려들, 외국어로 출세한 역관들, 금권 유착이 난무하던 시장, 고려로 귀화했던 외국인들, 출세의 길을 달렸던 노비들, 개성 출신 문장가들의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맹렬 여성들의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재혼녀의 신분으로 남편의 뜻을 어겨가면서 자식의 출세 길을 열어준 여성, 강남 엄마 못지않은 고려 엄마들의 자식 교육열, 개방적 성 의식과 혼인 풍습, 묘비명에 이름을 올린 여성, 기녀들의 사랑과 애환 이야기들도 재미와 흥미를 더해준다. 책을 읽으며 '개경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네'란 생각이 들었다. 고개 들어 바라보기조차 어려웠던 왕, 귀족, 관료들이 호화스런 생활에 젖어 살던 곳이 개경이다. 더불어 힘도 배경도 없는 사람들의 눈물과 한이 켜켜이 서린 곳이기도 했다. 차마 몸을 시궁창에 박고 죽을 수 없어 마을을 비우고 산에 올라 도토리와 밤을 줍던 사람들, 대궐 같은 저택 공사 때문에 집이 헐려 쫓겨난 사람들, 머리채를 팔아 건설공사에 동원된 남편의 점심 식사를 마련한 아내, 술과 몸을 팔아야 했던 기녀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싸한 아픔을 느낄 수 있다.
고려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들고 고려의 모든 이야기가 흘러드는 곳 개경, 그곳에 살았던 각계각층 사람들의 삶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개경 사람들의 생활이 내게로 성큼 다가서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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