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차 고치러 왔어요.” “어디가 고장 났는데요?” 요즘 들어 더아모 15인승이 연세가 조금씩 들어가니 돈 달라는 소리를 간혹 해댄다. 그런데다가 나를 비롯한 아내의 ‘차량 관리 수준’은 왕초보 인데다가 워낙 생태적(더러우면 더러운 대로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사는 방식을 일컬음^^)이다보니 차가 주인을 잘 못 만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불평 한 번 하지 않는 차가 고맙기만 하다는 주인 탓에 차량은 기가 막힐 게 뻔하다. 아무리 생태적(?)으로 타기로 결심한 차라도 손을 봐줘야 차가 굴러갈 것은 자명한 일이라 안성 시내에 있는 카센터에 오래간만에 차를 수리하러 갔던 것이다. “여기 하고 저기가 고장 난 거 같은데요.” “그래요. 손 봐드리죠. 좀 기다리세요.” 차량을 맡겨 놓고 카센터 사무실에 들어가 앉아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잡지랑 신문을 열심히 검열(?)하고 있으려니 주인 아저씨가 의외의 말을 던져온다. “이건 간단하게 고쳤는데. 저건 안 고쳐도 될 거 같은데요.” “왜요. 저것도 고쳐야지 않을까요?” “저것은 놓아두세요. 소리만 덜커덩거릴 뿐이니 웬만하면 그냥 타시죠.” “아…뭐…예….” “그냥 타셔도 차가 가는 데는 크게 지장 없어요.” “그럼 얼마죠.” “그냥 가세요. 오늘은 뭐 한 것도 없는데.”
장사하는 곳에서 차마 듣지 못할 진귀한 소리라 잠시 나의 어안이 벙벙해진다. 사실 그동안 주인 아저씨의 전적으로 봐서는 그리 놀랄 일만도 아니다. 사소하게 고장 난 것은 공임도 받지 않고 고쳐주거나 저렴하게 수리비를 받는 일이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아저씨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미처 몰랐다. 병원과 카센터는 ‘허가 낸 도둑놈’이라는 소리가 사람들 사이에 공공연하게 들리는 요즘 시대가 아니었던가. 전문분야일수록 일반인들이 잘 모르기에 가격을 달라는 대로 주어야 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어쨌든 돈이 되게 하려면 웬만하게 고장난 것도 새 부품을 추천하는 게 카센터의 관례(?)가 아니었던가 말이다. 어디가 어떻게 고장 나서 어떻게 고쳤는지 설명을 들어도 ‘그런가 보다’ 할 일이었다. 일일이 확인해 볼 수도 없고 확인도 안 되니 그냥 믿을 수밖에 없는, 그래서 바가지를 써도 증명할 길이 없는 일이 아니었던가. 피라미드의 미스터리보다 더 미스터리한 일이 바로 카센터와 병원의 계산법이었다는 것을 한번쯤은 겪어 보았으리라. 지인 중에 한 사람은 차량 정비공장에 차량 도색을 맡겼다가 낭패를 본 일이 있단다. 아는 사람이니 ‘가격을 싸게 해달라’고 했는데 원하는 가격대로 차량 도색을 하고 난 일주일 후 차량에 이상이 생겨 다른 카센터에 가봤더니 글쎄 엔진 부품을 누군가 바꿔 놓았다는 것. 그러니까 차량 도색 값을 싸게 해준 대신 상급 부품을 떼 내고 하급 부품을 달아 놓았다는 것이다. 지인은 그 후론 다시 그 정비공장에 가지 않았다며 얼굴을 붉힌 적이 있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사례다. 그래서 세상이 불신에 불신이 꼬리를 물지 않는가 싶다.
그럼에도 내가 사는 안성에서 만난 카센터 주인아저씨 덕분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낚시꾼이 월척이라도 낚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무뚝뚝한 아저씨의 얼굴에 빛이 난다. 요즘말로 아저씨의 배경에 '아우라'가 가득한 듯하다. 그런데다가 아저씨를 취재해서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섭외하던 나에게 “안 하렵니다. 뭐 한 게 있다고.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을 취재해서 신문에 실으세요”라는 아저씨는 뭐라고 칭찬해주어야 할까. 차량에 문외한인 나에게 이보다 더 큰 홍복이 있을까. 이사 가지 않는 한 이 카센터의 고정 단골은 바로 나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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