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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등지고 술을 벗 삼아 놀때 무희의 가는 허리에 내 마음이 감기었다.

지나간 십년의 일들이 모두 꿈속 같고나

남은 것은 청루에 무정타는 말뿐이다.

'두목(杜牧)'

 

 
바다 개구리가 우는 달빛 해안의 절경
 
바다에 닿는 달빛들은 해면 위에 능파를 일군다. 그 은빛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개굴개굴 바다 개구리가 우는 이기대 공원. 개굴개굴 바다 개구리가 우는 소리는 하도 신기해서 절로 눈동자가 크게 열리지만, 바다 개구리들은 달빛 환한 밤에 해안가의 바윗돌에 올라와서 울어대니, 이는 운이 좋아야 목격할 수 있다. 
 
이에 산책로에 깔린 낙엽을 밟으며 가을 풀벌레 우는 소리와 어디선가 울어대는 휘파람 새소리 따라 걷게 되는 이기대 산책로에서는, 누구라도 대한민국에서 이런 아름다운 명소가 있었나 하고, 와우 !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다.
 
이기대의 산책로 진입 방향에 따라 걸으면 오륙도 선착장으로 갈 수 있고, 오륙도의 등대와 갈매기들이 따라 다니는 그림 같은 유람선과 수많은 갈매기들이 똥을 누어서 하얗게도 보이기도 하는 오륙도를 볼 수 있다. 또 등대 불빛을 향해 다가오는 입항·출항의 무적소리를 쉽게 얻어 들을 수도 있다. 
 
이 해안도로의 비경을 한 바퀴 돌아나오면서, 신축 아파트 단지 내의 산책코스로 이어진 길은, 광안리 해수욕장 백사장의 해안도로를 따라 민락 수변 공원까지 이어진다. 이 해안길은 밤낮 구분이 없다. 많은 조깅족들이 해안선을 따라 뛰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세파에 시달린 앙상한 새의 발목 같은 피곤을 풀어주는 파도소리가 '물파스' 이상으로 시원하다.
  
 
사라진 용호농장의 안마당 같은 바다
 
이기대 공원은 부산직할시 남구 용호동에 소재한다. 일반인에게 사랑을 받은지는 그닥 시간이 오래 되지 않는다. 옛 '동국제강'의 자리에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는 군부대주둔으로 묶여서, 해안선을 침투하는 간첩이나 밀수꾼 등을 철통같이 지켰고, 오륙도 용호농장의 한센촌 일대가 완전 철거되기 전까지도, 여타 부산 관광명소에 비해 단지 '한센촌'이란 사유로, 그 찾는 발길이 한가했던 공원이다. 그 덕분에 공원이 존재하는 인근 산과 바다는 비교적 깨끗한 편이다.
 
부산엔 많은 바다가 있지만, 이곳에 오면 바다가 왠지 푸근한 안 마당처럼 느껴진다. 바다가 마당처럼 넉넉하게 보이는 이기대 공원, 여기서는 광안대교가 바로 코 앞이고, 해운대가 목측이다. 
 
이기대에서 바라보는 부산 바다는 여느 부산 바다와는 다르다. 해운대에서 혹은 광안리에서 이기대 공원을 바라보는 바다의 느낌과 이기대 공원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느낌은 그 경계가 확연하게 다르다.
 
밝음 속에서는 어둠이 잘 안 보이지만, 어둠 속에서는 밝음이 너무 잘 보이는 것처럼 화려한 불빛이 현란한 곳에서는 밤 바다가 잘 안 보인다. 그러나 이기대 공원의 바다에서는, 오색 조명등의 명멸하는 광안대교와 서울의 압구정을 연상케 하는 현란한 해운대 신시가지의 불빛 바다가 환하게 잘 보인다. 여기서는 멀리 수평선에 걸린 집어등과 그리고 더 멀리 연안 12 마일의 바다에서 조업하는 녹등, 홍등들도 안개가 없으면 잘 보인다.  
 
 
 
두 기녀의 유혼을 기리는 뜻의 '이기대'의 유래 
 
이기대라는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세가지 해석이 있다. 그러나 정확한 자료는 없다. 조선시대 역사와 지리를 소개한 동래영지(東來營地)에서 이기대라고 적고 있고, 두 기생의 무덤이 있어서 이기대라고 말한다고 적혀 있으나, 더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또 하나는 경상좌수사가 두 기생을 데리고 놀아서 이기대라고 하였다는 말도 있으나, 옛날 큰 벼슬을 한 관리들은 가는 곳마다 기생놀이를 했고, 그래서 근거 없는 말이 아닐 수는 없으나, 천민에 속했던 두 기생의 무덤이 있다고 경관이 빼어난 곳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렵다. 또 하나 구술로 전해 오는 바로는, 그 옛날 두명의 기생이 사또 일행과  절경의 바위에서, 사또의 사랑을 독차지 하기 위해 싸우다가 두 명이 다 바다에 익사해서, 두 관기의 유혼을 기리기 위해, 이기대라고 지었다는 설도 있는, 이기대. 왠지 풍문의 유래를 믿고 싶은 이기대( 二技臺). 
 
1998년 당시만 해도 이기대의 유래를 적어 놓은 조악한 관광안내판이 있었던 이기대 공원에는 오륙도 해녀들이 굴과 해삼, 멍기 등을 따오던 바위 곁에 해녀들의 임시 처소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오륙도 선착장 역시, 제주도의 해녀들까지 진출해서 좌판 어시장이 열리고, 한센촌민들이 커피를 끓여와서 팔던 그 옛날 풍경은 이제 자취를 감췄다. 어느 옛시조의 싯구처럼 '인걸은 간곳 없고 산천만 의구하다'의 상전벽해는 초 읽기로 달라져서 인걸은 그대로인데 산천은 수없이 바뀌는 것이다.
 
그러나 산천은 바뀌지만 바다는 영원하고, 이기대의 바다는 자갈과 모래들이 보일 정도로 깨끗하다. 그리고 그 바다 곁에 전에는 발길이 닿아서 여는 오솔길이 있었지만, 지금은 잘 정비된 목계단과 흔들 다리 등 산책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새 산책로로 예쁘게 단장되어 있다.
 
 
 
습자리 포구가 맞아요? 섶자리 포구가 맞아요?
 
'습자리' 포구로 불리기도 하지만, '섶자리 포구'로 불리기도 한다. 여린 식물을 돕는 막대의 '섶'이란 어원에서 포구의 이름이 지어진 듯 보인다.  부산은 영화의 도시, 습자리 포구는 많은 실습 영화감독들의 단편영화의 단골 촬영장이기도 하였으나, 최근에는 <눈 부신 날에> 등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까지 습자리 포구는 어민들의 아침 출항의 무적을 울리던 어촌. 지금도 거룻배들과 통발어선들이 인근바다에서 고기를 잡아들어오기도 하지만, 포구의 바다는 손바닥만해져서 점점 폐항의 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활어 센터들이 즐비하고, 이곳에 오면 양식회가 아닌 싱싱한 바다에서 바로 잡아온 생선회를 즐길 수 있다고 맛과 멋을 즐기는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 밤이면 회 센터 주위에 여타 포장마차들이 모여들고, 밤바다의 경치와 함께 먹거리를 즐기는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혀 가고 있다.
 
해질무렵 어둑 어둑한 해안산책로에서 산길 쪽으로 올라가면, 멀리 대마도가 한 눈에 들어오는, 절벽에 범종처럼 매달린 암자의 연등은 멀리 바다로 나간 어부들의 안녕을 비는 등신불처럼 은혜롭게 다가온다. 어민들에게 결코 하루도 빠질 수 없는 무사안녕을 비는 기원과 소원의 행렬이 수평선을 바라보는 갯바위 마다, 일회용 커피잔과 패트병을 이용해 켜둔 촛불과 향불들이 줄지어 있다. 더러 무당들이 북을 울리며 번제를 지내는 모습도 보인다.
 
 
상처의 풍경, 풍경의 상생
 
세상의 모든 풍경은 상처를 입고 다시 그 상처를 상생한다. 인간의 마음도 이러한 상처의 풍경을 몸 속에 안고 신생을 꿈꾸지 않을까. 해안 산책로를 걷다보면 '해안의 폐광'이 눈길을 끈다. 이 해안 탄광은 일제 시대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순도 99.9% 구리를 채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갱도는 당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다섯 군데나 된다.
 
1호 갱도는 이기대 입구 섶자리 근처 우물로 사용하고 있으며 2, 3, 4호는 해안길 중간 중간에 있다. 5호는 이기대 어울마당 민박집 마당에 있다. 수익성이 없어 지금은 모두 폐광된 상태다. 몇 년 전에 만난 적이 있는, 이 민박집 안주인은 탄광의 안주인이었다고 한다. 이기대의 공원의 바다를 안마당처럼 차려 놓고 관광객에게 차와 민박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묵시록처럼 바다는 골천번도 더 밀려와 부서진다. 부서지면서 상처를 입은 풍경을 쓰담고 어루만져 주고 수평선으로 또 사라진다. 사람은 가고 사랑도 가지만 두 기녀의 설화가 어린 이기대의 바다는 저 홀로 남아 더욱 달빛 아래 아름답게 빛난다. 캄캄한 폐광 안에는 바다의 해룡 한마리가 눈부신 비상을 위해 깊은 천년의 잠을 자고 있을지도. 
 
 
바다가 보이는 언덕길 금련암 우편함은 새집 모양이다
새집 모양으로 동백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다.
지나는 등산객마다 우편함을 한번쯤 열어 보았는지
손때가 까맣게 묻어있는 우편함,
새들도 들어와서 쉬었다 가는지,
새똥까지 하얗게 배달되어 있다.
머귀 나뭇잎 뒹구는 텅 빈 구석엔 비오는 어느 밤
집 없는 새들이 비를 피했는지,
젖은 깃털 몇 낱이 으슬으슬 바람에 떨고 있었다.
우편함이 새둥지가 될 수도 있다니,
골똘히 들여다보면
알 껍질을 쪼아대던 부리 끝처럼 뽀쪽한 햇살도 보였다.
이따금 곰솔 숲에 씻긴 파도소리도 말갛게 들려오는 금련암 우편함,
본디는 새집이었을까, 새집이 우편함이 되었을까,
스님은 무슨 다정(多情)이 그리 많아
새둥지를 우편함으로 갖고 사는지,
아무려나 해종일 아무도 오지 않는 숲속,
동백꽃잎이 붉은 소인(消印)처럼 찍혀 있다 
<바다가 보이는 금련암 우편함>-'자작시' 
 

태그:#이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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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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