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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국내 사학자들이 김홍도와 '도슈사이 샤라쿠(이하 샤라쿠)'가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 한 꼭지를 <엽기세계사>에서 만날 수 있다.

-상식과 상상을 넘나드는 발칙한 세계사
▲ 엽기세계사 -상식과 상상을 넘나드는 발칙한 세계사
ⓒ 추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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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시대 어느 날, 혜성처럼 나타나 10개월간 작품 활동을 하고 연기처럼 사라진, 일본의 자긍심 샤라쿠는 생몰연대도 확실하지 않은 미궁의 화가이다.

세계인들은 그를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더불어 '세계 3대 초상화가'로 손꼽는다. 또한, 인상파의 대가 빈센트 반 고흐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 조선 후기 풍속화의 대가인 김홍도는 샤라쿠가 일본에 혜성처럼 나타나 활동한 1794년에 조선에서는 단 한 점의 작품도 남기지 않았다. 그야말로 행적이 묘연하다.

그즈음 조선 정조는 일본에 대한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였다. 하지만 통신사의 왕래가 끊겨버린 터라 답답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수도인 한양의 남쪽을 방어하는 기지로서 수원 화성을 축조한다거나, 왕릉의 석재물과 부장품을 줄이라는 유언을 할 만큼 실용을 추구했던 정조의 치적을 미루어 보면 누구든 발 빠른 사람을 보내 일본의 사정을 캐내고도 남을 법하다.(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국내 사학자들에 의하면, 이렇게 지목된 사람이 정조의 밀명으로 이미 5년 전(1789년)에 쓰시마 섬에 잠입하여 지도를 그려 온 김홍도라는 것이다.

김홍도와 샤라쿠의 일치점은 '조닌 문화'와 조닌 문화의 대표랄 수 있는 '우키요에', 우키요에 중 '야쿠샤에'이다. 조닌 문화? 우키요에? 야쿠샤에?

풍속화의 대가 '김홍도'가 일본으로 잠입했다?

샤라쿠가 남긴 140여점의 야쿠샤에(인물화)는 오늘날 연예인들의 브로마이드 정도에 해당한다. 당시 일본에는 돈이 넘치지만 쓸데가 없어, 다 쓰지 못하고 죽을 것만 같아 '삶이 덧없는' 조닌들에 의한 야설, 가부키, 외설이 흥행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조닌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난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중앙 집권체제로 지방을 통제하면서 발생한, 자금력이 탄탄한 거대 상인들이다. 특정 영주에 얽매이지 않고 상업 활동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남는 건 돈과 시간뿐인 이들은 저마다 색(色)을 찾아 나서고 그 탐닉은 점점 심해진다. 그런 와중에 '좀 더 색다른 색'을 찾는 한 조닌이 '오사카 상인 이하라 사이카쿠'에게 외설 저술을 부추긴다. 타고난 필력이 아깝지. 신분 때문에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고 상인으로 살면서 재능을 푹푹 썩히던 사이카쿠로선 귀가 번쩍 뜨이는 제안이었다.

그는 자신의 타고난 재능과 동료들이 탐닉하는 색을 접목한 제3의 길인 '야설'을 택한다.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고쇼쿠이치다이오토코><고쇼쿠이치다이온나-好色一代女>는 이렇게 탄생한다. 고쇼쿠이치다이오토코란 '자식은 원하지 않으면서 애욕에 인생을 걸고 사는 남자'를 뜻한다.

보수적인 에도 시대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대중 소설로 유곽을 배경으로 한 조닌 문화를 상세하게 보여주는 사이카쿠의 야설은 일본 문단을 뒤흔들었다. 점점 다양한 외설 작품들이 생겨나 동성애, 가부키로 발전한다.(그래서 조닌과 게이샤가 주인공인 가부키가 많다.)

음란에 대한 탐닉과 그 풍속이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에 막부에서 이를 통제해보지만, 일본의 실세인 조닌에 의한 문화, 그것도 원초적인 문화가 쉽게 없어지랴. 근절은커녕 좀 더 쇼킹, 좀 더 색다른, 더욱 더 색다른, 기막히고 판타스틱한 그 어떤 경지의 색을 추구하고 탐닉하게 된다. 이렇게 '우키요에'는 탄생한다.

우키요에 중에는 당연히 춘화가 많았다. 이런 우키요에를 조닌과 일본인들만 즐겼으면 좋았을 것을, 나가사키항에 들른 네덜란드 상인들에 의해 프랑스로 건너가 그림 수집광들과 서구 인상파 예술가들을 열광하게 만든다. 일본에서 어떤 내력으로 탄생하였든 유럽인들 눈에 비친 동양의 인물 목판화는 태고의 신비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 인기와 영향이 얼마나 컸던지, <목신에의 전주곡>으로 유명한 드뷔시는 우키요에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에서 영감을 얻어 <바다>를 작곡했고, 수많은 인상파 화가들이 동양적인 목판화 우키요에를 모방했다.

우키요에 중 극 중 배우의 모습을 그리는, 오늘날 연예인의 브로마이드에 해당하는 '야쿠사에'도 있었다. 한 인물의 특성을 표현하는 것이 야쿠사에이건만 대부분의 화가들은 아름답고 폼 나게만 그렸다. 즉 미인과 미남 일색이었다. 따라서 늠름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대부분이라 찍어낸 인형처럼 획일적이었다.

 
▲ 김홍도의 그림(오른쪽)과 도슈샤이 사라쿠(왼쪽) 그림, 둘 다 양국의 각 국립 박물관 소장 
ⓒ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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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디서 왔는지, 누구에게 그림을 배웠는지,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정체불명의 화가 샤라쿠는 달랐다. 멋있고 아름답게만 그리는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런 그림들의 상식을 뛰어넘어 우악스럽고, 해학적이고, 아름다움 이면의 결코 아름답지만은 못한 그 인물들만의 특징을 날카롭게 잡아내 과감하게 그려버린 것이다.

그가 이렇게 남긴 140여점의 그림과 김홍도의 그림들은 전혀 다른 그림이지만 같은 그림의 느낌을 받는 것들이 많다. 신분 때문에 정치에는 뛰어 들지 못하지만 일본의 실세였던 조닌들을 충족시켜줄만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김홍도라면 그들에게 빠른 시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만큼 커지지 않을까?

이미 쓰시마섬에 잠입하여 지도를 그렸던 김홍도인 만큼 일본어에도 능통했을 것이다. 가장 잘나가는 문화의 주류에 끼어 들 수 있는 만큼 위장도 쉬울 것이요. 첩보 자금도 그만큼 쉽게 벌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정도라면 김홍도가 조선에서 행적이 묘한 시기에 일본에서는 단 10개월 빛을 발한 화가였을 거라는 추정은 확신을 갖게 한다.

"그는 첩보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정체를 숨기고 우키요에를 그렸다고 한다. 김홍도와 샤라쿠의 필법이 같다는 점, 일본인들이 만들어 낼 수 없는 독특한 화풍이라는 점, 김홍도의 그림 중에 발가락이 여섯 개인 부처가 많은데 샤라쿠의 부처 그림에도 발가락이 여섯 개인 부처가 있다는 점 등이 그 증거라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자나 미술가들은 샤라쿠와 김홍도의 그림이 상당히 유사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만일 일본을 대표하는 수많은 걸작을 만들어 낸 샤라쿠가 김홍도라면, 일본으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책 속에서

알고 있는 상식을 사정없이 흔들어 보자

2004년,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김홍도와 도슈샤이 샤라쿠가 동일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의 추적 프로그램을 보면서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지만 잊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나름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다. 김홍도가 도슈샤이 샤라쿠일 가능성이 많다고 추정하고 있는 터라 무척 반가운 한 꼭지의 글이기도 하였다.

어떤 이야기들이 더?
▲정말 '성녀=잔다르크'일까? ▲키가 작은 사람들에게 희망일 수도 있는 숏다리 나폴레옹은 당시 프랑스 남성 평균키인 164.1cm보다 3.5cm나 큰 167.6cm였다는데 어떻게 숏다리 영웅이 된 것일까?▲에디슨의 비뚤어진 욕망이 만들어 낸 사형의 기술인 사형 전기의자▲통조림과 병조림이 국운을 걸고 팽팽한 전쟁을 벌였다? ▲콘플레이크(켈로그, 포스트 등)는 자위 방지를 위하여 만들어 낸 신병기? ▲레니에 3세와 그레이스 켈리의 '세기의 결혼'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이벤트였다? ▲꽃밭으로 놀러 오세요-일본 화류계의 역사와 진실(?) ▲히로시마에 핵폭탄 투하가 만든 치명적인 유혹 가슴 키우기 열풍-어떻게 실리콘이 여자들의 가슴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나? ▲전세계 일회용 휴지의 대명사가 된 크리넥스 티슈의 원조는 군대? 전쟁이 남긴 여성들의 필수품인 생리대?-책 내용 일부
<엽기 세계사>(추수밭)는 <엽기 조선 왕조 실록>, <엽기 조선 풍속사> 등 유쾌하고 엽기적인 시선으로 역사를 재조명하여, 역사를 재미있고 기발하게 다시 바라보게 한 이성주의 신간이다.

앞선 두 권의 책처럼 주제가 되는 한 꼭지의 글을 잘 아는 사람과 술 한 잔 나누면서 여담을 나누는 것처럼 가볍게 풀어쓰면서 역사적인 관련 사실을 뒤에 별도로 보충하는 형식이다.

목차나 책 뒤표지에 요약해놓은 목차만 대충 훑는 것만으로도 우선 흥미로운 소재이다.

'자위방지를 위해 만든 것이 콘플레이크라고? 어떻게 이런 공식이 가능해? 어? 모차르트가 요절한 게 아니라 살만큼 산거라고? 35세가?' 이렇게 만난 목차였다.

저자의 기발하고 엽기적인 시선과 물음에 동조하면서 자신만의 호기심을 더해 읽으면 훨씬 아는 것 많아지고 재미있는 책읽기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엽기 세계사>-상식과 상상을 넘나드는 발칙한 세계사 (이성주 지음/추수밭.2007.7.30/정가 :13,000원)



엽기 세계사

이성주 지음, 추수밭(청림출판)(2007)


태그:#김홍도, #책읽기, #책동네, #서평, #도슈사이 샤라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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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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