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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겉표지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겉표지 ⓒ 에이지21

오소희의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를 본 순간, '왜 라오스인가?'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파리도 있고, 뉴욕도 있고, 도쿄도 있는데 왜 하필 라오스인가? 라오스에 관한 여행기를 떠올려본다. 여행기라고 할 만한 것 중에서 골라보니 김남희의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3>이 생각난다.

김남희는 중국, 미얀마, 라오스 등을 다닌 뒤에 그 책을 썼는데 그곳에서 라오스를 일컬어 "자연도 인간도 느릿느릿 호흡하는 평화를 만나는 곳"이라고 했다. 그런데 오소희는 '욕망이 멈추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다. 평화로운 곳? 욕망이 멈추는 곳? 서로 의미가 닿아있는 듯 하다. 이쯤 되면 '왜 라오스인가?'가 아니라 '라오스에 무엇이 있는가?'하는 것이 궁금해진다. 그렇다. 오소희는 라오스에서 무엇을 본 것인가?

라오스에 대한 오소희의 글에는 '가난'에 대한 것이 많다. 가난한 사람들, 먹을 것은 물론이고 풍선이나 축구공 하나에도 지나칠 정도로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입은 옷은 또 어떤지. '거지'라는 단어가 나올 정도로 지저분하다. 여행 중에 이런 것들을 본다면, 인상을 찡그리며 피하고 말 것들이다.

그럼에도 오소희는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여행하는 사람으로서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오소희는 거지 취급 받는 아이들과 함께 쇼핑센터에 간다. 아이들을 씻게 해주기도 한다. 그러자 아이들은 거지가 아닌, 행복함에 젖은 천사들이 되어 돌아온다. 팔 다리와 얼굴의 묵은 때를 벗겨낸 뒤에 환하게 웃는 미소가 있기에 그러하다.

오소희의 여행은 이와 같다. 때에 가려진 것을 보는 여행이다. 더러워 보이는 것에 가려진 순수한 것을 보는 여행이다. 라오스에 무엇이 유명하다거나 어떤 유적지에 무슨 사연이 있다거나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싸바이디!(Hello!)", "곱짜이!(Thank you!)", 단 두 마디만 할 줄 아는 오소희를 반기는 순박한 라오스인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여행기인 것이다.

이런 여행기는 진솔하다. 사람들이 좋으면 눌러앉아버리는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는 여행이기에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대책 없기도 하다. 계획대로 움직이기보다는 바람에 끌려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라오스가 준비를 하지 못한 채 오소희를 맞이하게 된다. 갑작스럽게 찾아오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가. 오소희가 말하는 사람들은 라오스의 길거리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누군가에 보이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삶에 찌든 그런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고단한 이들이 분명하다. 오소희도 그네들의 얼굴에서 주름살을 발견한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그들의 얼굴에서 행복함을 찾아내기도 한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가난한 그들은 행복한 얼굴을 짓고 있는 것인가?

여기서 제목의 의미를 떠올려본다. 라오스를 두고 욕망이 멈춘 곳이라고 했다. 욕망이 멈춘 곳, 과장된 말이겠지만, 글을 보고 있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들은 경제가 발전한 나라의 사람들보다 욕망이 적다. 갖고 싶은 것도 적고 하고 싶은 것도 적다. 사고가 다르다.

예컨대 발전된 나라의 사람들은 차를 갖고 싶어 한다. 걷는 것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를 갖고 빨리 간 뒤에 무엇을 하는가? 그 후에 더 많은 걸 얻으려고 한다. 그것을 얻은 뒤에는 무얼 하는가? 더 많은 걸 가지려고 한다. 하지만 라오스인들은 어떤가? 차가 있어도 느리다. 어이없을 정도로, 우직하게 보일 만큼, 평온하게 살아가고 있다.

아직 그들이 경험하지 못해서 그런지도 모를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은 그렇게 더 많은 걸 갖고 싶어 하기에 움직이는 그런 욕망의 순환에서 비켜나 있다는 것이다. 좀 더 인간적이라고 말해도 될까? 책 하나로 그것을 판단하는 것이 위험하다 하더라도, 적어도 오소희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그렇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책에 보면 "장담하건데, 당신이 라오스에서 당해연도의 달력을 찾아내는 일은 거리에서 우연히 첫사랑과 마주치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다. 시간을 정복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너무나 동떨어진 라오스의 세계를 보여주는 말이 아닌가 싶다. 또한 라오스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자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의 여운을 구체화시켜주는 말일 터이다.

실용적인 정보는 없다. 구체적인 여행루트도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라오스의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다. 하지만 아쉬움은 없다. 라오스의 '삶'이 묻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라오스를 두고 별 것 없다고 말할 때에, 라오스를 떠올리면 "삶이란 이런 것이다 하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여행기다. 오소희의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 그 여운이 오래토록 눈을 감게 만든다.

덧붙이는 글 | 오소희의 여행기는 '1.5인'의 여행기라고 한다. 왜 그럴까? 혼자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어린 아들과 함께 한 배낭여행이기 때문이다.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 - 소희와 JB, 사람을 만나다 라오스편

오소희 지음, 북하우스(2009)


#라오스#오소희#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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