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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부 초입을 지나 덕소의 속살을 스치고 곧바로 팔당대교에서 한강을 건넜습니다. 하남을 돌아 몇 개의 굽이를 건너 산성의 아랫턱 주차장에서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두 번째 길이지만 <남한산성>은 예전의 보통명사로서의 의미를 잃었습니다.

 

시선이 예사롭질 않습니다. 첫 발자국 때부터 이런 진지함을 가질 수 없었음을 안타까워 하는 그 자리에서 김훈 선생님의 소설은 시작됩니다. 언제나 그렇지요. 스쳐 지나고 보면 미처 호명하지 못 했었던 그리움의 이름들, 견고한 돌틈을 성채라 부르는 지면에 몇 번인가 아쉬운 헛 쉼을 보였던 듯 싶습니다.

 

헐벗은 아스팔트를 뚫고 곁살에 의지하며 숨을 피워낸 이름을 알 수 없는 푸르름과 꽃들을 지나 마루를 가로지르며 네비게이션에 <삼전동>이란 이름을 입력했습니다. 지상에선 희미하게 작은 점으로 명멸할 그 지점은 그러나 이내 너무나도 가까이 다가와 서러웠습니다.

 

300여년 전에 너무나도 길게 펼쳐졌을 흙은 이젠 보이질 않습니다. 고요합니다.

 

폭염의 길을 가로질러 어렵사리 강남교보문고 근처에서 김훈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길거리 인파에 묻혀 자연스레 익명일 수 있는 모습이 왠지 낯설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갈 때 반만 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야지. 올 때 생각해서 체력의 반은 비축해야지."

 

 -언제나 그걸 지키십니까.

 "맘대로 못해. 좀 멀어지면 못 와, 힘들어서. 버리고 올 순 없으니까 차에 싣고 와야잖아.   그러니 체력의 반만 써야해. 나머지 반은 올 때 써야 하니까."

 

 -그 거리를 벗어나면 거기서 머무르셔야겠네요.

 "그래야지. 그럴려면 날이 저물기 전에 마을에 가야해. 해 떨어지면 무섭잖아. 서둘러 민가에 도착해야돼."

 

 -마라톤에서 하프 대회에 참석했을 때와 풀코스에서 느끼는 하프와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실 때에도 작정하신 거리에 따라 달라지시는지요.

 "아니, 난 자전거 탈 때 속도에 대한 개념은 없어. 거리를 중요시 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마라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전에 조깅은 몇 번 해봤어. 마라톤은 지독한 인내심을 요구하잖아. 좀 멀리 뛸 때 가끔 개가 따라와 물려고 해서 그 뒤로는 아예 안뛰어. 시골에서 자전거 탈 때에도 큰 개가 따라오곤 해. 평지에선 괜찮지만 오르막에선 많이 힘들어."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면서도 미흡하면 갈등을 합니다. 참가여부에...

 "얼마 전 겨울에 자전거를 타고 소백산맥을 넘을 때였어. 멀리서 하늘을 보니 흐리고 눈이 오고 무서워. 내가 저걸 넘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겨. 무섭지. 그러면 그 날은 안가, 내 속에 두려움이 있으면 안가. 그 날은 여관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 두려움이 사라지면 출발해. 무서운데 갈 순 없잖아."

 

 -평상시 운동은 어떻게 하시나요.

"젊었을 땐 암벽등반을 했었어. 지금은 등산 밖에 못해. 손 끝의 힘이 달려서 암벽은 못 타."

 

-'김류'라는 인물은 반정의 주역입니다. 하지만 주관이 없습니다.

"자기 나름의 처신은 있었지. 그리고 그곳(남한산성)에선 확신을 가질 수 없잖아. 성 안에서 확신을 가진 자들은 김상헌, 최명길이었지. 하지만 그들의 확신도 삶의 길이 될 수는 없었잖아."

 

 -소설에서 광해군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난 닫힌 성 안의 47일만을 그리고 싶었어."

 

 -그래도 그 안에서 선왕에 대한 얘기가 오가지 않았을까요.

"글쎄, 하지만 난 광해군은 관심없어. 어떻게 보면 인격파탄자 아냐."

 

 -제 개인적으로 인조라는 인물은 그닥 호감이 가질 않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인조는 나라를 구한 거야. 그 점은 인정해야 해."

 

 -쉰고개를 넘어서 등단하셨습니다. 작가로서의 역량은 어떠신지요.

 "타고난 거야 있겠어. 오랫동안 사람들과 세상을 관찰한 결과겠지. 아마도 내면을 읽을 수 있으니까 글을 쓰겠지, 그걸 놓치면 힘들거야."

 

- 선생님의 글을 한 마디로 표현해 주실 수 있나요.

 "나의 소설은 나의 문체로 이루어져 있어. 문체는 물론 그 작가의 고유한 숨결이고. 그리고 내 글은 읽기 힘들 거야. 쉬운 글이 아니니까."

 

 -앞으로 역사소설은 안쓰신다고 하셨습니다.

 "더 이상은 힘들어 관심도 없고. 안중근? 너무 어려워서 어떨지 모르겠어, 힘들어."

 

끝은 여백으로 남겨두었습니다.

 

우리의 <길> 앞을 지나쳤을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은 전설로만 남겨져 있습니다. 호명되어진 이름도 있겠지만 그대로 흙속에 묻힌 허다한 이름들도 우리 역사를 메꿔가는 크나 큰 흔적일 것입니다.

 

김상헌, 그리고 최명길….

 

그 축을 받쳐줬을 수많은 사람들은 그대로 익명입니다. 그들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시간은 흐릅니다. 그 안에서 피톨은  온기를 유지할 것입니다. 역사(歷史)라는 굳건한 힘줄을 따라...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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