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6.25 전쟁과 그 당시의 어려웠던 한국 생활만 기억하다가, 한국에 와서는 우리의 발전상을 보고 놀랜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신문 지상에 오르던 때가 있었다. 나에게도 ‘베트남’이라는 단어는 후진국, 베트남 전쟁 그리고 통제된 공산국가 등 부정적인 생각뿐이다.
역마살이 끼었다는 소리를 심심치않게 해온 주위 사람들의 말을 증명이라도 해 보이듯 나이들어 베트남이라는 곳까지 흘러오게 되었다. 비오는 계절이라 그런지 시커먼 비구름 사이를 비집으며 비행기는 날고 있었다. 몹시도 흔들리며 착륙하는 비행기에서 마음을 졸이며 호찌민시티공항에 도착했다. 사이공이라는 지명으로 익숙하게 알고 있는 도시다.
베트남 전쟁이 다시 터졌나 싶을 정도로 지붕을 부술 듯이 두들기는 요란한 비는 입국 심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비에 흠뻑 젖은 채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들어온 가방을 들고 공항을 나서니 직장에서 나온 사람이 내 이름을 영자로 크게 쓴 피켓을 들고 마중 나와 있다.
말로만 듣던 베트남. 자동차 유리창을 통해 처음 대하는 베트남의 거리. 많은 사람이 베트남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지 않는 길가를 가득 채운 오토바이. 그 사이를 승용차, 버스 그리고 트럭까지 합세해 눌러대는 매연 속의 크락숀 소리와 함께 베트남의 인상은 내 머릿속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아오자이라는 하얀 옷을 입고 자전거 페달을 밟는 여인이 있는, 어디선가 본 베트남 사진의 낭만적인 풍경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나와 또 다른 직원을 태운 봉고차는 수많은 오토바이 사이를 잘도 빠져나간다. 아니 잘 빠져나가는 것뿐만이 아니라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곳에서 기사는 좌회전 우회전은 물론 유턴[U Turn] 까지도 힘들이지 않고 해나간다. 차선을 지키는 차량은 보기가 힘들다. 심지어는 차선을 반대로 타고 유유히 오는 오토바이도 종종 있으나 기사는 크게 신경을 쓰지도 않으며 갈 길만 열심히 달린다. 아마도 이러한 조건에서 오랫동안 운전을 해온 그들만의 약속이 있는 것 같다. 내가 방금 떠나온 시드니 같으면 교통사고로 아수라장이 되었을 거리가 어수선함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그들만의 질서를 지키며 차량은 잘도 흘러간다.
베트남에 왔으니 그들의 흐름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한 달, 두 달 아니면 일 년? 우리가 다른 사람을, 다른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일런지 모른다. 그러기에 몇 십 년을 같이 살아온 아내와 남편도 서로를 이해 하지 못하겠다며 헤어지고 있지 않은가?
세계속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다른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 못지않게 다른 문화, 다른 삶의 방식 그리고 다른 가치관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폭넓은 마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하나만 알고, 자기가 알고 있는 그 하나만이 옳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따라서 그러한 무식함과 우월주의에 사로잡혀있는 근본주의자는 그들이 하는 짓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가장 용감하게 일을 저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