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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섭의 <광기와 천재>는 정치, 문학, 철학 각 분야에서 '대표값'을 지닌 인물로 9명의 천재를 소개하고 있다.

 

그들은 '한계상황에서 자신을 한계 너머로 밀어붙이려 했던 사람들, 불행한 의식을 견딜 수 없어 끝모를 위험에 뛰어들었던 사람들'이었다.

 

내면에 다양한 빛깔을 품고 있는 사람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힘들다. 하물며 세계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은 어떠할까. 책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이미지로 인식된 인물들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에게 삶은 하나의 '거대한 공포였다'고 한다. 권력을 잡기 전이나 잡은 후나 자신의 이력을 감추기 위해 노력한 히틀러는 누군가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볼까 늘 두려웠다고 한다.

 

히틀러는 비천한 출신 성분 아버지의 세 번째 결혼에서 얻은 자식이었다.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걸핏하면 '말을 듣지 않는 어린 아들을 초죽음이 될 정도로 채찍질하는가 하면 아내에게도 폭력을 휘두른' 사람이었다. 화가가 되고 싶었던 히틀러는 폭군이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했다.

 

책에 수록된 그의 그림을 보면 후에 있을 광포함을 읽어내기가 힘들다. 반유대주의에 경도된 히틀러는 마침내 총통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아내와 자살함으로써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히틀러는 '유사 이래 가장 광포한 상상력을 정치 현실에서 펼쳤던 인간'으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 광기의 인물의 전형이었다. 
 
루소가 쓴 <에밀>은 근대 교육학의 출발점이었다. 최초로 어린이를 발견한 저작이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작품의 저자는 현실에선 자기가 낳은 아이들을 모두 고아원에 버린 비정한 남자였다. 그는 아버지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상상력 안에서만 어린이를 사랑할 수 있었다. 자기 삶에 부착된, 삶의 일부인 아이, 곧 자식을 사랑하기에는 그의 부성이 너무 허약했다. 그 자신이 또 하나의 어린이였다. 어린이가 어린이를 사랑할 수 는 있지만 어린이가 어린이를 키울 수는 없다. 이 영원한 어린이는 자기 내부를 들여다보았고 거기서 교육학의 모든 위대한 원리들을 끌어냈다. - 152쪽

 

'시계처럼 정확하게 생활했던 독일 철학자 칸트는 딱 한 번 산책하는 것을 잊어버렸는데 그때 바로 <에밀>을 읽고 있었으며 근대 교육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페스탈로치는 루소의 이 저작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교육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루소가 <에밀> <사회계약론> 등의 빛나는 저작에도 불구하고, 작가로서 성공하는데 아이들이 방해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아이들을 버린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자유라는 개념을 절대적 가치로 끌어올린 최초의 철학자 '루소의 삶은 모순과 대결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아르놀트 하우저는 루소의 선배들이 개량주의자 · 사회개혁자 · 박애주의자였다면 그는 최초의 진정한 혁명가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빛나는 업적에도 불구하고 이면에 가리워진 루소의 삶 자체는 행복했다고 보기 어려웠다. 

 

하이데거는 문화적,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고향 마을 사람들 모두가 가톨릭 신자였고 보수적인 마을 분위기 속에서 하이데거는 자연스레 사제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건강문제로 번번이 사제가 될 수 없어 신학 공부를 포기하고 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하이데거는 마르부르크 대학에 부임하자마자 명강의로 그곳 학생들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학생들은 철학을 둘러치고 있던 장막이 걷히고 사유를 둘러싼 안개가 사라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오래된 개념도 그의 말을 통과하면 이제 막 핀 꽃처럼 생생히 살아났다.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고 굳었던 피가 다시 흘렀다. 철학은 삶과 밀착해 일상의 언어로 생동했다. 말들의 빛이 너무나 강렬해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의 강의는 환각제처럼 혈관을 타고 흘렀다. - 315~316쪽

 

'하이데거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모두들 감전된 듯 강의실을 나왔다'고 한다. 제자들에게 그런 찬사를 받을 수 있다니 실로 하이데거는 대단한 스승이었나 보다. 18세의 명민한 제자 한나 아렌트와의 사랑도 하이데거를 이야기하면 꼭 언급되는 이야기다. '아렌트는 17세나 많은 유부남과의 기약 없는 사랑을 견디지 못하고 이듬해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옮겨갔지만 그들의 사랑은 아무도 모르게 계속됐고, 1929년 아렌트가 상황을 끝내려고 다른 남자와 결혼함으로써 막을 내렸다'고 한다.


하이데거는 총통을 지도하는 국가철학자의 야망을 지니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치가 패망한 뒤에 쓴 글에서 나치로부터 대학을 보호하기 위해 총장직을 수락했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에게 내려지는 극한의 찬사는 그가 저지른 많은 실수와 실패를 망각한 다음에야 성립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외에도 <광기와 천재>는 나쓰메 소세키, 프란츠 카프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미셀 푸코 등 동전의 양면처럼 천재인 동시에 광기를 지닌 인물들의 삶을 출생부터 죽음까지를 밀도 있게 조명했다. 책을 통해 '운명과 세계의 주인이 되고 싶었던' 걸출한 인물들의 생애와 덤으로 당시 시대 흐름까지 읽을 수 있다. 그들이 없었다면 세계사는 어떻게 쓰여졌을지 자못 궁금하다.


광기와 천재 - 루소에서 히틀러까지 문제적 열정의 내면 풍경

고명섭 지음, 인물과사상사(2007)


태그:#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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