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0일)은 대통령선거 D-100일이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는 이날 1일 환경미화원으로 '100일 대장정'의 테이프를 끊었다. 이명박 후보는 강재섭 대표를 포함한 당직자들과 지역 환경미화원 등과 함께 이날 서울 이태원 관광특구 일대에서 ‘D-100 새벽 대청소’ 행사를 가졌다. 젊은 시절 환경미화원 경험이 있는 이 후보는 오전 6시부터 환경미화원 15명과 함께 크라운호텔 뒷골목에서 이태원역까지의 골목길 600m 가량을 빗자루로 쓸었다. 한나라당은 이날의 행사에 대해 ‘대선을 100일 앞두고 낡은 것은 쓸어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서민과 함께 낮은 곳으로부터 출발하겠다는 당과 후보의 다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대선 D-100일을 맞이해 이른바 ‘민생 빗자루’로 서민들의 표심을 쓸어 담겠다는 의지를 표출한 셈이다. 이명박 후보의 대권 의지는 D-100일을 하루 앞두고 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잘 드러난다. 이 후보는 9일 회견에서 “1987년 체제를 넘어 2008년 신(新)발전체제를 열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그 의미를 “산업화와 민주화를 뛰어넘은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청소'와 '검찰 조사 응하겠다'는 이명박 후보의 안과 밖 분리대응 그렇다면 ‘D-100 새벽 대청소’와 ‘1987년 체제를 넘는 2008년 신(新)발전체제’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별로 분명치 않아 보인다. 어쩌면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보다는 자신에 대한 청와대의 고소건과 관련 “필요하다면 검찰 조사에 응하겠다”고 밝힌 대목이 ‘D-100 새벽 대청소’와 더 상관관계가 있어 보인다. 이른바 안과 밖의 분리대응이다. 이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대통령도 법 아래에 있고 대통령 후보도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라며 “아직 당과 협의하지 않은 개인적 생각이지만 필요하다면 검찰 조사에 응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당과 협의하지 않은 개인적 생각’이고 ‘필요하다면’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긴 하다. 또 이쪽의 굳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과연 검찰이 유력한 대선 후보를 소환해 조사할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결국 이 후보에 대한 검찰 조사는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당의 동의’와 ‘검찰의 소환의지’라는 까다로운 절차가 선행되어야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후보가 대선을 앞두고 ‘검찰 조사에 응하겠다’고 밝힌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물론 청와대가 대선을 앞두고 야당 대선 후보를 고소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지만). 그래서 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무게중심이 실려 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과의 대립각과 전선을 분명하게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사실 어찌 보면 이 후보와 한나라당측은 ‘때 아닌 태평성대’를 맞고 있다. 여느 해 같으면 D-100일이면 여야를 불문하고 각당의 대선 후보들과 의원들이 신발끈을 질끈 동여매고 상대를 향해 전력을 투사할 때이다. 그런데 지금 한나라당과 이 후보에게는 ‘적수’가 없다.
'태평성대'일수록 '외부의 적'이 필요한 것 지지율이 50%를 넘는 이 후보로서는 현재의 범여권 예비후보들이 상대할 만한 ‘깜’이 안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범여권이 아직 ‘게임의 룰’조차 정하지 못할 만큼 오리무중이어서 누가 ‘적수’인지 윤곽조차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D-100일째인 ‘결전의 날’은 다가오는데 ‘지피’(知彼)를 못하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외부의 적’이 눈에 보이지 않다보니까 ‘내부의 적’이 실제보다 더 크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내부의 사소한 갈등도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것처럼 비친다. 그래서 ‘태평성대’일수록 ‘외부의 적’이 필요한 것이다. 이 후보가 박근혜 의원과의 협력 여부는 이제 거론할 단계를 넘어섰다고 단정지은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이 후보와 박 의원은 지난 7일 경선후 첫 회동을 했지만 박 의원은 당시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 후보를 도울 것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후보는 “박 전 대표와 저와의 화합의 문제(가 거론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선을 그었다. ‘불안한 동거’로 보는 시각 자체를 무시하고 가겠다는 것이다. 그 대신 내부의 ‘적의’를 ‘외부의 적’에게 향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내부의 결속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노 대통령이라는 ‘외부의 적’은 필요하다. 그래서 이 후보는 기꺼이 검찰 조사에 응해 전선을 유지함으로써 지지자들의 결속과 응집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라는 '외부의 적'은 전선을 유지하기 위한 한시적인 것 그러나 노 대통령이라는 ‘외부의 적’은 한시적인 것이다. 현재는 지리멸렬한 범여권이 전열을 가다듬고 실전을 통해 ‘적수’를 배출할 때까지 전선을 유지하기 위한 한시적인 것이다. 지난 2002년 대선의 구도는 ‘낡은 정치 청산’ 대 ‘부패정치 심판’이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의 두 아들 비리를 확대재생산하며 하늘 높은 줄 몰랐던 ‘이회창 대세론’은 끝내 ‘낡은 정치 청산’에 무릎을 꿇었다. 국민 대중은 정부여당의 실정을 심판하는 회고적 투표성향을 보이는 총선과 달리, 대선에서는 미래 지향적 투표 성향을 보이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은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패배한다는 2002년의 교훈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 후보가 9일 회견에서 “’정권 교체냐, 정권 연장이냐’, 이것이 대선의 기본 구도”라고 친절하게 이번 대선의 구도를 설명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그러면서 이 후보는 “무능한 국정실패세력을 유능한 국가발전세력으로 바꾸는 선거” “과거지향적 이념 세력을 미래지향적 실용 세력으로 바꾸는 선거” “지역주의 의존 세력을 국민통합세력으로 바꾸는 선거”라고 이번 대선을 규정했다. 현재의 ‘정권 연장 세력’은 무능한 국정실패 세력이고 과거지향적 이념 세력이고 지역주의 의존 세력이므로 ‘낡은 것’은 쓸어내야 한다는 ‘2007년판 낡은 정치 청산’ 구도를 역이용하려는 전략이다. 한편 민주노동당은 9일 대선 후보자 선출대회에서 심상정 후보의 매서운 ‘심바람’이 ‘권영길 대세론’을 가로막음으로써 2차 결선투표를 통한 대선 후보 확정일이 15일로 미뤄졌다. 반면에 덩지가 가장 큰 대통합민주신당은 9일 합동연설회를 시작으로 이제 막 한 달 동안의 ‘몸 만들기’ 작업에 들어갔다. 이들이 맷집을 불리고 근력을 키우는 동안, 승부욕에 불타는 이명박 후보는 온몸이 근질근질 하겠지만 아직 한 달은 더 노무현 선수와 ‘스파링’을 하거나 ‘민생 빗자루’를 쓸면서 기다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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