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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카', 축하의 박수처럼 쏟아지는 공동우물
 
근 일 년 동안 재 수질검사를 기다린 끝에 우리 동네 공동우물이 콸콸 쏟아진다. 수돗물이 흔하지만, 수돗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가정은 거의 없다. 당국에서는 수돗물이 식수로 안전하다고 하지만, 대개 시민들은 수돗물을 믿지 못하고, 식수를 사 먹거나 정수기를 이용한다. 그러나 우리 동네는 늘 고마운 약수터가 있어서 물을 끓여 먹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러나 지난봄부터 주변의 쓰레기와 오염 때문에 수질검사를 받는 동안 마을의 공동우물이 족쇄가 감겨 있었으나, 최근 콸콸 약수가 쏟아져서 우리 동네 사람들뿐만 아니라, 인근 아파트나 먼 동네 사람들까지 물통을 들고 낙타처럼 물을 길으러 온다.
 
 
옛말에 '감정선갈'이라고 '맛이 좋은 우물은 길어가는 이가 많으므로 빨리 마른다 하였는데, 이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 일찍 쇠폐함을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같은 우물을 파먹고 산다'는 말처럼 도심에서 동리의 약수터를 함께 나눈다는 것은 공동체의 의식을 단결한다.

우물에는 생명력과 정화력, 부정을 물리치는 힘이 있고, 여성적 생산력의 상징이라는 믿음이 있다. '물할미'는 '산할미'와 함께 노고 신앙을 형성하고 있다. 물할미는 노적봉 전설에 나타나듯이 권능으로 외적을 쫓는 지역 수호신이기도 하고, 약수 신앙과 연결되어 섬김을 받고 있다.

약수는 신령스러운 물이라는 관념을 표상하는데, 바리공주의 생명수라는 신화적 관념에서 퇴화된 것이다. 샘과 약수 등에 담겨 재생력과 생명력은 물을 용의 집이자 정기로 간주하는 용신 신앙에서 엿볼 수 있다.

옛날 할머니들과 어머니들은 우물터와 약수터에서 촛불을 밝혀두고 물의 깨끗함과 신성함을 빌었다. 우리 동네 족쇄가 채인 약수터가 콸콸 다시 쏟아지는 것은 유독 할머니들이 많고, 이제나저제나 물이 다시 콸콸 쏟아지길 기원하는 기도의 힘이 큰 것이다.
 
 
우리 동네는 유독 폐쇄된 공동우물이 군데군데 많다. 정말 못 먹는 우물이 되어서 자물쇠가 채워진 우물일까. 주위의 숲과 깨끗한 공기와 파도소리처럼 시원한 바람소리와 잡풀 속에 버려진 우물은 스스로 족쇄를 채운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필요 없기 때문에 자물쇠가 채워진 우물인 것이다.

우물은 저 은하수까지 이어지는 신령한 물의 원천이었다. 이제 각 가정마다 수도꼭지만 틀면 되는 수돗물은 공동체 의식을 느낄 수 없다. 아파트 높은 옥상에 물탱크도 사라진 요즘. 물은 우리의 생명의 원천이며 하루를 이어주는 양식이지만 우리는 물에 대한 고마움도 또 한 그릇 물에 대한 기도도 잊고 산다.
 
 
물의 질이 좋고 나쁜 것을 수질검사로 정하듯이, 우리가 만나는 사람의 인품도 물에 빗대어 왕왕 이야기한다.

"저 사람은 너무 물처럼 착해 빠졌어", "저 사람은 물에 물 탄 듯 희미해", "저 사람은 물맛이야", "저 사람은 너무 물처럼 맑아서 이 세상에 살기 힘들지…" 등 사람이 좋은 사람을 이를 때 '물'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더러운 물에 놀면 더러운 사람이 되고, 흙탕물에 놀면 나쁜 사람이 되고, 밝은 샘물에 놀면 물처럼 맑은 사람이 된다.

옛 사람들은 제사 때는 '물 한 그릇'을 올려놓았다. 요즘은 '물' 대신 '술'을 대개 쓴다. 생전에 술을 마시지 않았던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술을 올린다. 이때 술은 음주용이 아닌 정화수의 대체적 변이로 볼 수 있다.
 
가난했던 옛 사람들은 결혼식도 '물한 그릇' 떠 놓고 올렸다. 목마른 나그네에게 '물 한릇'은 얼마든지 마음껏 공동우물에서 권했다.

그러나 도심에서도 시골에서도 '물 한 그릇'도 얻어 먹을 수 없다. '물'도 '돈'으로 환산되는 세상, 물처럼 흔한 인심은 고갈되었지만 우리 동네는 아직 박수치듯이 쏟아지는 축복의 약수터가 다시 부활되었다.

나는 그동안 목이 말랐던 사막의 낙타처럼 아주 큰 물통을 하나 사들고, 아주 오랜만에 콧노래를 부르며 숲 속의 '오아시스'를 찾아 나선다.
 
산모퉁이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 윤동주의 '자화상' 중에서

태그:#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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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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