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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물'하면 떠오르는 동물, 무엇이 있을까? 거북이, 뱀, 고란이, 고양이, 호랑이… 등 사람마다 각기 다른 종류의 동물들이 떠오를 것이다.

예로부터 영물을 건들거나 다치게 하면 그 사람에게는 액운이 끼어 화(禍)를 당한다는 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영물이라 여기던 동물에게는 눈길조차 주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 이러한 설을 뒤로 한 채 과감하게 영물 퇴치에 나섰으나, 결국 전해 내려오는 설과 같이 큰 화를 입었던 에피소드가 있어 들려주고자 한다. 지금부터 들려주는 이야기는 필자가 군 재직시절 실제로 겪었던 고양이에 얽힌 에피소드다.

 최전방 철책 근무시절 모습. 뒤로 까마득히 북쪽이 보이고 오른쪽 사진 뒤에는 한탄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뒤로 보이는 저곳이 바로 DMZ다. 저곳에는 수많은 종류의 동물과 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물론 야생고양이도...
▲ [GOP부대 근무시절] 최전방 철책 근무시절 모습. 뒤로 까마득히 북쪽이 보이고 오른쪽 사진 뒤에는 한탄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뒤로 보이는 저곳이 바로 DMZ다. 저곳에는 수많은 종류의 동물과 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물론 야생고양이도...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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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P 고랭이=고양이+호랭(랑)이의 합성어

'GOP 고랭이'라고 들어봤는가? 아마도 처음 들어 본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전방 부대에서 근무했던 대한민국 남자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름일 것이다. '고랭'이는 고양이와 호랭이(호랑이)를 교묘하게 섞어놓은 합성어이다. 물론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병사들이 만들어낸 은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병사들은 왜 고양이를 고랭이라고 불렀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호랑이와 비슷한 무늬가 있는 고양이의 몸집이 호랑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일반 고양이에 비하면 매우 비대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일반적으로 고양이 하면 연상되는 것이 날램, 날카로운 이빨과 눈초리, 마치 아이 울음소리를 연상시키는 소름끼치는 울음소리인데, GOP 고양이는 덩치만 클 뿐 이 모든 조건을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

이곳 최전방의 고양이들은 군대 짬밥의 잔반 수거반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청소부'라고나 할까? 최전방 부대는 후방부대와는 다르게 소대, 중대, 대대가 한울타리에 위치하고 있지 않고 소대별로 전선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후방지역보다도 더 많은 음식물 찌꺼기(잔반)가 나오게 된다.

이러한 잔반들은 가끔 민통선(민간인 통제선) 내 마을에서 가축을 기르는 아저씨가 가져가지 않는 이상 뾰족하게 처리할 방법이 없었다. 그 방법을 고민하고 있던 때에 바로 GOP 고양이들이 잔반 처리반으로 나선 것이다.

야생고양이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가진 집고양이. GOP 고랭이를 사진으로 보여주지 못하는게 너무나 아쉽다. 아마도 GOP 고랭이는 일반 고양이들보다 3~4배 이상의 덩치를 자랑한다.
▲ [집고양이] 야생고양이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가진 집고양이. GOP 고랭이를 사진으로 보여주지 못하는게 너무나 아쉽다. 아마도 GOP 고랭이는 일반 고양이들보다 3~4배 이상의 덩치를 자랑한다.
ⓒ 이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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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양이들은 소초 주변 한 편에 잔반을 모아두면 서로 달려들어 잔반을 모두 먹어치운다. 그 식성이 얼마나 좋은지 잔반을 모아두기가 바쁘게 바로바로 먹어치운다. 매일 매일 이런 식으로 다양한 음식과 영양가 있는 음식들을 먹다 보니 살이 찌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GOP 고양이들은 과대비만을 넘어서 축 처진 배가 땅에 닿을 만큼의 비만 현상을 보인다.

이렇게 비만이다 보니 사람이 나타나면 도망가거나 경계를 하는 다른 고양이들과는 달리 GOP 고양이들은 사람이 나타나건 발을 구르면 위협을 하든 간에 눈만 껌뻑일 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는 고양이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마치 바닷가 갯벌에서 갯지렁이들이 지나간 것처럼 그 흔적들이 땅에 남아 있기도 한다. 또 번식력은 얼마나 좋은지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저곳 사방에 고랭이 천지가 되었다.

마침내 벌어진 고양이 소탕작전

이쯤 되다 보니 고랭이는 그 수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잔반 처리를 하며 병사들과 최전방을 지키던 동료(?)였지만 기하급수적으로 숫자가 늘어난 이제는 잔반 처리를 초월해 내무반에 있는 병사들의 특식까지 먹어치우는 최전방 경계근무를 방해하는 적(敵)으로 탈바꿈되고 있었다.

온 사방에 고양이이고 이것들이 근무에 방해를 주다 보니 영물이라고 그동안 '해치지 말라'고 지시했던 중대장도 어쩔 수 없었나 보다. 한참을 고심하던 지휘관은 마침내 결정을 내리고 명령을 하달했다.

"지금부터 고양이 소탕 작전에 돌입한다."

'고양이 소탕작전? 그런데 뭘로 잡지? 실탄이 장전되어 있으니까 총으로 갈기라는 건가?'

총으로 잡다니? 그건 아니었다. 아무리 최전방이고, 실탄이 장전되어 있더라도 고양이를 총으로 잡다가는 물론 쉽게 잡을 수는 있지만 오히려 고양이보다 병사들에게 위협이 될 것이고, 또 북한에서 오인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그건 방법이 될 수 없었다.

그럼 무엇으로 잡지? 고양이 소탕작전을 모인 병사들의 손에는 총이 아닌 삽과 곡괭이, 빗자루 등이 들려 있었다.


"자~ 지금부터 작전 개시!"
"가능하면 산 채로 잡아라!"


중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고양이 잡기에 돌입했다. 명령을 받은 병사들은 잡긴 잡아야 하는데 괜히 잡았다가 행여 자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맘 놓고 잡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고양이 잡는 시범을 보여준다며 부대 병기관이 나섰다.

"그렇게 잡아서 언제 잡을래? 잘 봐. 시범을 보여줄테니까…."

말을 마치자마자 병기관은 삽자루를 들고 고양이 앞에서 마치 골프를 치듯 삽자루를 내둘렀다. 경쾌한 마찰음과 함께 고양이 한 마리가 피를 흘리며 허공 위로 떠올랐다. 땅에 떨어진 고양이는 몸을 움찔하더니 이내 움직임을 멈추었다. 즉사였다.

"봤지? 잡으려면 이렇게 잡아야 되는 거야. 알았나?"
"네."


자신 없게 대답한 병사들은 병기관의 시범이 있은 후로도 여전히 소심하게 고양이를 뒤쫒고 있었다.

병기관의 어이없는 신호탄 발사 사고와 병사의 골절, 이 모든 게 고양이의 저주?

어느덧 1시간여의 시간이 지나고 생포한 고양이만 10마리가 넘었으며, 즉사시킨 고양이도 두 마리에 이르렀다. 죽은 고양이가 병기관이 죽인 한 마리뿐일 줄 알았는데, 본부에서 같이 근무하던 병사 한 명이 죽인 고양이까지 두 마리였다.

"이 정도면 됐을 거야. 지들도 무서우면 이제 안 나타나겠지."

그렇게 해서 고양이 소탕작전은 마무리가 되었고, 사건은 이제부터 벌어지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죽인 병기관과 본부 병사에게 변고가 생긴 것이다.

먼저 부대의 탄약고를 책임지고 있는 병기관은 매일 제 집 드나들 듯 왔다갔다하던 탄약고 안에서 갑자기 신호탄이 발사되면서 이마를 스쳐 얼굴에 큰 화상을 입게 된 것이다. 본부병사는 식사를 타기 위해 매일같이 오르락 내리락거렸던 비탈에서 굴러 다리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게 되었다.


"이 모든 게 죽은 고양이들의 저주야!"
"잡은 사람들은 다 괜찮은데 죽인 사람만 다친 걸 보면 고양이가 영물이긴 영물인가 보네."


이 사건 이후로 부대 내에서는 이러한 소문들이 나돌았다. 소문은 흘러흘러 대대장의 귀에 까지 들어갔고, 이내 대대장은 전 부대원들에게 지시했다.

"오늘 이 시간 이후부터 철책선 내건 밖이건 간에 뱀, 고양이, 고란이 등은 잡지도 말고 절대 죽여서는 안된다."

이날 이후로 대대에서는 철책선에서 철수할 때까지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이 무사히 후방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투입된 부대에 인수인계 할 시에도 그날 일어났던 사건을 이야기하며 근무하는 동안 절대로 고양이를 잡지 않도록 당부했다.

이 에피소드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나는 고양이를 더욱 영물로 생각하게 되었고 지금도 고양이만 보면 그날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태그:#고양이, #G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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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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