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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 경기도 안양 샘병원에서 열린 아프간 피랍자 21명 기자회견에서 한 피랍자가 피랍기간 동안 입고 있었던 구멍 뚫린 바지를 보여주고 있다.
 12일 오전 경기도 안양 샘병원에서 열린 아프간 피랍자 21명 기자회견에서 한 피랍자가 피랍기간 동안 입고 있었던 구멍 뚫린 바지를 보여주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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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에서 탈레반에게 납치됐다 풀려난 21명이 12일 오전 11시 샘안양병원 샘누리홀에서 퇴원 기자회견을 열었다.

피랍자 대표인 유경식(55)씨는 "아프간에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많아 돕기 위해 떠난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너무나 죄송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또 "(피랍자들은) 언론과 국민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다"며 "그동안 치료로 인해 취재요청과 국민의 요청에 응하지 못했던 것들을 오늘 밝히겠다"고 말했다.

"해외 선교에 대해서는 교계의 의견을 따를 것"

피랍자들은 취재진과의 질의 응답을 통해 "우리와 관계없는 일들이 우리가 한 것처럼 되어있어 당황스럽다"며 그동안 제기되어온 의혹들과 비판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외신을 통해 보도된 내용 중 잘못된 것이 많았다. 예를 들어 민소매 차림으로 시장을 돌아다녔다는 보도는 오보다. 잘 때도 현지인들이 입는 온몸을 두르는 스커프를 착용했었다. 또 고급 버스를 전세낸 것이 아니다. 매일마다 칸다하르로 운행되는 버스를 전세로 내서 빌렸을 뿐이고 커튼도 다 쳐져 있어 외국인이 탑승한지 몰랐다. 지나가는 주마다 검문을 하던 경찰이 좋은 일을 한다며 흔쾌히 보내줄 정도였다." - 임현주(32) 씨

"현재 이 자리에 여행자제 안내공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한 사람은 없다." - 유경식씨

"6월부터 우리 팀의 비자 발급과 관련한 일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아프간 안전 문제에 대해 어떤 단체나 기관으로부터 공지나 서신을 받아본 적은 없다. 순조롭게 진행됐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는 작년 다른 단체가 진행한 행사에 대한 이야기다." - 이선영(37)씨

아프간에서 활동 내용을 묻는 질문에도 "선교활동은 없었다"고 말했다. 김윤영(35)씨는 "그동안 아프간에서 장기간 사역하는 분들을 돕는 일이었다"며 "이발 봉사와 함께 벽화 그리기, 노래부르기 등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랍자들은 해외 선교에 대해서는 "해외 선교 전반에 대해 교계에서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안다"며 "교계의 의견이 정리되면 그에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와 관련해 "3000명의 배형규 목사가 나와야 된다는 박은조 목사의 설교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대해 "직접 듣지 못해 어떤 뜻으로 말씀하신 것인지 모르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또 구상권 청구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와 교회가 입장을 밝힌 만큼 그에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12일 오전 경기도 안양 샘병원에서 아프간 피랍자 21명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12일 오전 경기도 안양 샘병원에서 아프간 피랍자 21명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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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공포, 노예 같은 생활, 감금... 끔찍했던 45일

이날 피랍자들은 피랍 기간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도 증언했다.

피랍자 유정화(39)씨는 "비디오를 촬영할 때 내 앞에 기관총을 든 탈레반이 있었고 큰 구덩이가 파져 있었다"며 "그 때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고 말했다. 또 유씨는 "탈수 증상으로 쓰러진 뒤에도 무장한 탈레반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임현주씨랑 꼭 껴안고 신음소리도 내지 못했다"며 "지금도 카메라를 보기 힘들다"고 피랍 생활 당시 고통을 증언했다.

"억류 상황에서 풀리고 난 뒤에도 목사님과 심성민씨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 언론을 통해 비판여론을 접하는 등 정신적으로 쉴 여유가 없었다. 피랍자 중 우울증이나 불면증으로 인해 약물을 복용하는 이도 있고 너무나 오랫동안 감정을 표현하지 못해 정상적으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산악지역 토굴에서 피랍 생활을 한 제창희(38)씨는 피랍 기간 동안 입은 옷가지들을 보여주며 "노예 같은 생활을 했다"고 증언했다.

"산길을 닦으라거나 물을 떠오라는 식의 요구를 남자인질들에게 했다. 그 외에도 일부 탈레반은 이슬람 기도문을 따라 외라는 등 개종 요구를 하고, 총에 착검한 대검을 목에 들이대며 협박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동할 때는 머리에 천을 뒤집어 씌우고 구타를 하기도 했다."

나머지 피랍자들의 기억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특히 민가로 이동된 경우 밖에서 자물쇠로 잠그고 식사나 용변 등의 이유를 제외하고 감금 상태로 지냈다고 했다. 그러나 박 목사가 주장한 '성폭행 의혹'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언론에 밝힌 것 외에 이야기할 것이 없다고 답했다.

"국민의 사랑과 기대에 부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며 살겠다"

12일 오전 경기도 안양 샘병원에서 아프간 피랍자 21명의 기자회견이 열린 가운데 여성 피랍자들이 힘들어 하며 얼굴을 가리고 있다.
 12일 오전 경기도 안양 샘병원에서 아프간 피랍자 21명의 기자회견이 열린 가운데 여성 피랍자들이 힘들어 하며 얼굴을 가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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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살된 배 목사나 심씨와 같은 그룹에서 억류생활을 한 이들은 피살된 이들의 마지막 모습도 말했다. 한지영(34)씨는 "배 목사가 탈레반에게 끌려나가기 전 우리를 쳐다보지 않은 채 '믿음으로 승리하세요'라고 말했다"며 흐느꼈다.

탈레반은 피랍자들의 육성멘트도 일일히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임씨와 유씨는 "탈레반이 말할 내용을 미리 주고 이에 따라 연기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퇴원 기자회견을 마치며 유경식 피랍자 대표는 "이번 일로 인해 국민과 정부에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큰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죽었을 것인데 다시 살아난 만큼 국민의 사랑과 기대에 부응하도록 살아가고 하나님의 사랑을 남에게 베푸는 삶을 계속 살겠다"고 말했다.

한편, 피랍자들은 치료해온 샘안양병원 박상은 원장은 "일부 환자들은 급성 스트레스 반응에 준하는 우울, 불안, 불면증상이 있어 지속적인 관찰과 치료가 필요하다"며 "퇴원 후 약 일주일간 일상 복귀를 위한 생활적응훈련이 요구되며 추석 명절을 보낸 뒤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정신과적 진료를 받아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피랍자들은 이날 일단 퇴원한 뒤 일정 기간 단체 요양을 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태그:#아프간 피랍자, #탈레반, #해외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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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2007~2009.11)·현안이슈팀(2016.1~2016.6)·기획취재팀(2017.1~2017.6)·기동팀(2017.11~2018.5)·정치부(2009.12~2014.12, 2016.7~2016.12, 2017.6~2017.11, 2018.5~2024.6)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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