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강을 흑룡강이라고 부른다더군.” 전투를 앞두고 긴장한 병사들은 배위에서 때로 근거도 없는 얘기를 꺼내어 화젯거리로 삼고는 했다. “내가 이 흑룡강에 대한 얘기를 알고 있는데 우리 할아버지에게 들은 얘기네.” 말수가 적은 경원포수 박사길이 운을 떼었다. 그는 화승총 시범 때 총이 파열되어 왼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흑룡강에는 말 그대로 흑룡이 살고 있었는데 그 용이 포악하기 짝이 없어 매년 처녀를 바칠 것을 요구했지. 어느 해 처녀 하나가 스스로 용의 재물로 갈 것을 자원했는데 그 처녀를 흠모하던 총각이 용감히 따라나서 활로 흑룡을 쏘아죽였네. 그래서 흑룡강이 된 거라.” “에이 그건 아닌 것 같소. 내가 살던 강가에도 그런 얘기는 있었음매.” 김억만은 괜히 퉁을 주며 박사길의 말에 장단을 맞춰주지 않았다. 김억만은 사구조다가 자신이 탄 배에 그를 배속시킨 후로 부쩍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아따...... 진짜라니까.” 김억만과 박사길이 티격태격하려는 찰나 날카로운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적선이다! 깃발을 올려 신호를 보내라!” 김억만은 총을 부여잡으며 강가에 정박해 있는 나선의 배들을 바라보았다. 나선의 배들은 청나라 배들에 비해 매우 컸는데 나선인들이 배위에 다 오르지 못하고 강가의 풀숲에서 허둥대는 모습이 김억만의 눈에도 확연히 들어왔다. -펑! 펑! 펑! 청나라 배들이 포를 쏘며 접근하자 나선의 배에서도 응사가 시작되었다. 양쪽의 대포 포수들의 실력이 시원치 않은 것인지 포탄은 배를 비켜나가 거센 물벼락만을 일으킬 뿐이었다. “몸을 낮추어라. 적선에 가까이 가기까지 몸을 드러내지 말라. 구령이 떨어지면 일제히 사 격하라!” 배군관이 사구조다에게 미리 지시받은 대로 배위의 포수들에게 일렀다. “사냥할 때처럼 내 발로 살금살금 다가가지 않고 배에 의존해 가는 게 영 싫구먼.” 박사길이 불안한지 부쩍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지만 아무도 이를 귀담아 듣는 사람은 없었다. 박사길의 말수는 점차 줄어들더니 곧 아무도 입을 열지 않게 되었다. 배위에서 기분 나쁜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포성소리와 고함소리는 점점 크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신호가 떨어질 때도 안 됐음매?” 기다리다 못한 김억만이 중얼거림과 동시에 깃발이 번쩍 오르며 구령이 떨어졌다. “쏘아라! 쏘아라!” 김억만은 지체 없이 총구를 앞으로 꺼내어 놓고 정면을 응시했다. 김억만의 눈앞에는 겁을 먹고 허둥대는 나선인들의 모습이 확연히 들어왔다. -타앙 탕 탕 탕! 일제히 사격이 개시되자 배위에 있던 양인들은 남김없이 꼬꾸라져 혹은 배위에 구르고 혹은 강으로 떨어졌다. 남은 양인들이 총을 들고 응사를 하려 했지만 곧 이어지는 조선포수들의 2차 사격에 그들은 모조리 쓰러지고 말았다. “갈고리를 던져라!” 배위에 남은 나선 병사들이 보이지 않자 선원들은 쇠갈고리를 던져 적선을 끌어당겼고 포수들은 이에 올라탔다. 포수들은 불씨를 들며 소리쳤다. “불을 지르고 다음배로 가자!” 포수들이 불을 지르려는 순간 배위에서 사구조다가 모습을 보이며 크게 소리쳤다. “조선 포수들! 적선에 불을 질러서는 아니 된다! 선창에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모조리 포박하고 가진 물건을 이리로 가져오라!” “선창에 사람이 있다고?” 뒤늦게 나선의 배위에 뛰어오른 배군관이 칼을 뽑아들며 나섰다. “사길이, 억만이!” “예!” “나를 따라 내려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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