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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혼했어요."


드디어 이혼을 했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그래요 정말 다행이에요" 소리가 나와 버린다.


미자(가명·30세)씨는 올 5월에 쉼터에서 소개를 받은 여성가장이자 주부구직자다. 남편의 무자비한 폭력을 피해 쉼터에서 기거를 하고 있는 미자씨가 원하는 것은 정신적인 안정과 경제적인 독립이었다.


쉼터 담당자는 간단한 문서정리를 비롯한 사무 처리는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단기적으로 끝날 일자리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추스르는 일이 중요했다. 결혼하자마자 시작된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몸은 물론 마음마저 위축이 되어 있는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 주는 것이었다.


일단 성취(성공적인 취업을 위한 구직기술의 모든 것) 프로그램에 참가를 시켰다. 수심이 가득했던 얼굴 표정이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화사해졌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생각지도 못했다는 그녀는 5일 중 3일을 우리를 위해 노래를 불러줬다.


눈을 지그시 감고 목청껏 '남행열차', '소양강 처녀'를 부르는 그녀의 얼굴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살짝 피어올랐다. 갈기갈기 찢어진 마음을 한 땀 한 땀 꿰매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거라면 일단은 성공이라 여겼다.


하지만 여전히 남편과의 문제가 남아 있었다. 같이 사는 동안 끊임없이 이어진 폭력, 그 폭력 속으로 아이들도 그녀도 다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이혼 도장 찍기까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가능했어요라는 말에 위자료, 양육비를 포기하고 아이들 양육권 또한 그녀가 갖기로 하고 합의했다며 웃는 모습이 안쓰럽다.


"하루빨리 취업을 해야 할 텐데 어떻게 해요"라고 걱정을 하자, 이렇게 대답한다.


"무작정 취업을 하는 것보다 오래도록 잘할 수 있는 직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직업훈련을 받기로 했어요."


지금은 비록 힘들지라도 그냥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실력을 쌓아 오래 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그녀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그녀에게 점심을 먹고 가라고 해도 한사코 사양을 한다.

 

 

구직자들의 종합병원


'고용지원센터'는 미자씨처럼 직업이 필요해 찾아오는 구직자들에게 종합병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월급도 필요 없고 밥값도 필요 없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갈 곳이 있으면 돼요." (60대, 고령자)
"아이들이 고등학생, 대학생입니다. 월급만 많이 주면 어떤 일이든 상관없습니다."(40대, 가장)
"남편도 아이들도 떠나버린 집에 있으면 숨이 막혀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어떤 일이든 하고 싶어요." (40대, 주부)


"아이들 유치원 보내고, 남편 퇴근하기 전까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요." (30대, 주부)
"5년 동안 공무원 시험 준비에만 매달렸어요. 이번에 또 떨어졌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해요." (30대 초반 구직자)
"제 적성에 대해 알고 싶어요." (10대, 학생)


청소년에서 고령자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진로와 직업에 대한 처방을 요구한다. 처방전이 금방 효과가 나타나는 구직자가 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나도 별다른 진전이 없는 구직자가 있기도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쉽게 포기할 수는 없다. 


직업상담을 처음 시작할 때는 일이 곧 직업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11년째 직업상담을 하면서 느낀 것은 어떤 이에게는 일이, 어떤 이에게는 생계를 위한 직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과 직업의 사전적인 의미는 ① 일(어떤 가치창조를 위하여) 몸과 마음을 쓰는 활동 작업 ② (어떤 사건이나 사태에 관련된) 짓, 행위 ③ (생계나 벌이를 위한) 노동, 직업 ④ (되어 가는)형편 ⑤ 볼일, 소간사, 용무이다.


직업은 ① 생계를 위하여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다. 일이 훨씬 포괄적인 의미다.


일이든 직업이든 한 사람을 살게 하는 힘 그 자체만으로도 존재감을 갖게 하고 의미부여가 되는 것이 일이자 직업이다. 직업상담은 그들의 다양한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그에 맞는 맞춤형 처방을 해 주기 위해 구직자와 같이 노력해야 하는 과정이다. 일과 직업을 찾아가기까지 그 과정이 짧은 여정이든, 긴 여정이든, 개개인에게는 인생을 걸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오늘도 그 중심축에서 고용지원센터는 돌아가고 있고 그 안에서 때로는 웃음이, 때로는 눈물이 묻어나는 직업상담이 이뤄지고 있다. 미자씨를 비롯한 모든 구직자들 얼굴에 함박웃음이 묻어나는 그날까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취업#구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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