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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제1야당인 민주당 오자와 이치로 당수.
일본 제1야당인 민주당 오자와 이치로 당수. ⓒ 오마이뉴스 재팬 요시카와 다카유키
일본 정계가 15년 만에 다시 움직이고 있다. 속단할 순 없지만 약체·단명 정권이 이어지다 결국 정계개편으로 자민당 정권이 무너졌던 1992~93년 상황과 닮은꼴을 그려가는 인상이다.

90년대 정계개편을 촉발한 것이 '사가와큐빈 사건'이란 정치자금 스캔들이었듯이 지금 자민당 정권을 곤경에 빠뜨린 근본원인 역시 정치자금 문제에 있다. 정치인들의 불투명한 회계처리가 국민적 분노를 사고 있는 것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강력한 총리의 뒤를 이어 등장한 총리들이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이는 것도 90년대의 상황과 비슷하다. 상황을 돌파할만한 리더십이 나오기 어렵다는 얘기다.

80년대 중반 전후 4번째 장기정권을 이끌었던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 이후 단명정권이 이어졌고, 지금은 나카소네 보다 더 오래 집권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또 한가지 주목할 것은 15년 전 정계개편 당시 '태풍의 눈' 역할을 했던 오자와 이치로가 이번에도 같은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지금 요동치고 있는 일본 정치의 변화는 제1야당 민주당 대표인 오자와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다.

40대에 당정 실권 장악했다가 탈당한 '풍운아'

오자와는 80년대 말~90년대 초 자민당 정권의 실력자였다. 다케시타 노보루 정권에서 관방장관, 가이후 도시키 정권에서 자민당 간사장을 거치며 당정을 사실상 손아귀에 넣고 주물렀다. 총리보다 더 힘센 간사장으로 불렸다. 당시 그의 나이 40대였다.

그런 그가 자민당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선봉에 섰던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명분은 '정치개혁'이었지만, 실제 이유는 권력투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 1993년 6월 소속의원 30여명을 규합해 자민당을 뛰쳐나왔고, 이것이 정계개편의 신호탄이 됐다.

그러나 당시 오자와의 '실험'은 1년도 못 가 좌절된다. 반자민당 정치세력을 규합, 연립정권을 출범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곧 내부 분열로 붕괴됐기 때문이다. 자민당은 놀랍게도 전후 50년 가까이 여야로 대립했던 사민당과 연립정권을 구성, 정권을 되찾아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자와의 정치생명은 그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가 만든 정당마다 분열에 분열을 거듭했다. 군소 야당의 지도자로서 그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이끌던 자유당은 90년대 말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해 겨우 연명할 정도였다.

민주당에 흡수통합... 대표 맡아 극적인 선거 승리

2003년 9월 자유당이 민주당과 합당을 선언했을 때도 오자와가 이처럼 다시 정국의 핵으로 떠오르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형식적으론 '합당'이라고 했지만, 민주당 당명에도, 지도체제에도 전혀 변화가 없는 사실상 '흡수통합'이었다. 오자와 자신도 아무런 당직을 맡지 않았다.

그러나 시대는 오자와를 다시 필요로 했다. 민주당은 60대의 시민운동가 출신 칸 나오토 대표가 연급미납 문제로 물러나면서 50대의 오카다 가쓰야에게로 당권이 넘어갔으다. 2005년 9월 총선거에서 '고이즈미 바람'에 참패를 당하자 이번엔 40대인 마에하라 세이지를 대표로 내세웠다.

참신성과 개혁 이미지로 승부를 걸겠다는 전략이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마에하라도 2006년 3월 당시 일본열도를 뒤흔들었던 '호리에몬 스캔들'에 연루돼 반년 만에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위기에 빠진 민주당은 방향을 완전히 바꿔 백전노장 오자와에게 당의 지도를 부탁하게 됐다. '참신성 전략'을 일단 접고, 오자와의 정치적 수완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 그는 이런 기대에 보기 좋게 부응했다.

지난 7월 29일 실시된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건져 올린 60석은 자민당이 얻은 의석보다 무려 23석이 많은 역사적 대승이었다. 무엇보다도 참의원을 장악함으로써 정국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실질적 힘을 갖게 됐다. 2년 전 총선거에서 여당에 중의원 의석 3분의2를 내주며 나락으로 떨어졌던 민주당이 신기하게도 오자와가 당권을 맡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개혁가인가, 구정치인인가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당수(왼쪽)가 지난 7월 11일 도쿄에서 당수 정책토론회 뒤 아베 신조 총리와 손을 맞잡고 있다.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당수(왼쪽)가 지난 7월 11일 도쿄에서 당수 정책토론회 뒤 아베 신조 총리와 손을 맞잡고 있다. ⓒ AP·연합뉴스
오자와 대표는 그렇게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정치인이 아니다. 오히려 그에게는 음모가의 이미지가 따라다닌다. 말이 어눌해서 대중연설에도 약하고, 토론도 그렇게 잘하지 못한다. 이미 40대에 정권의 막후실력자로 부상했으면서도 아직까지 총리가 되지 못한 것은 그의 근본적 한계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런 오자와가 역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출발했던 아베 신조 총리를 1년 만에 권좌에서 끌어내린 '괴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는 시대를 꿰뚫어보는 '개혁가'인가, 아니면 그저 권력욕에 사로잡힌 '구정치인'일 뿐인가?

그의 힘은 우선 권력과 선거의 속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서 출발하는 현실주의 정치행태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민주당 대표를 맡은 뒤 고이즈미-아베 정권과 모든 면에서 철저히 대립각을 세워왔다. 원래 뿌리가 같기 때문에 개별 정책 면에선 자민당과 별 차이가 없는 경우도 많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차이점을 중심으로 이슈를 만들어갔다. 일부러 자민당과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손질하기도 했다.

지금 일본 정국의 주요 이슈가 되고 있는 개헌이나 자위대의 해외파병, 양극화 문제 등에서 오자와는 사사건건 자민당 노선에 제동을 걸었다.

아베 총리 사임의 직접적 계기가 된 테러대책특별법 개정문제의 경우 당초 오자와 대표가 이렇게 완강히 반대하리라고 전망한 사람은 많지 않다. 일본 정부는 아프간에서 작전을 수행중인 미군을 비롯한 다국적군에 연료를 지원하기 위해 해상자위대를 인도양에 파견하고 있다. 현행 테러대책특별법에 따르면 오는 11월1일이 활동시한이기 때문에 이를 연장하려는 것이다.

자위대 해외파견 가능한 '보통국가론' 주장

사실 자위대의 해외파견을 그토록 염원하고, 이것이 가능하도록 환경을 정비하는데 앞장섰던 것은 오자와 자신이었다. 자민당 간사장 시절, 그는 저서 '일본개조계획'을 통해 이른바 '보통국가론'을 주창하면서 국제공헌을 위해 자위대도 해외에 파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2년 성립한 '유엔평화유지활동(PKO) 협력법'은 사실상 그의 작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범국 일본의 '군대 아닌 군대'가 전후 다시 해외로 나가는 길을 열어놓은 법률이었다.

물론 당시 자위대 해외파견에 관한 오자와의 지론은 지금 상황과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오자와는 어디까지나 '유엔 깃발 아래' 파견을 주장했으나, 지금 인도양에서의 자위대 활동은 유엔 결의가 없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의한 군사작전인 것이다.

오자와 대표는 이 점을 들어 유엔결의가 없는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자위대를 파견한 것은 잘못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뒤 미국은 토마스 쉬퍼 주일대사를 보내 협조를 구했으나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90년대 오자와가 주창한 '국제협조' 노선은 사실상 미국을 의식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강했으나 지금은 전혀 의미가 달라졌다. 그가 본래 그런 '대미관'을 갖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아베 정권을 궁지로 몰아넣기 위해 대미관을 바꾼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는 어떤 변신도 가능한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양극화 문제도 양상이 비슷하다. 오자와 대표는 지난 참의원 선거운동 기간 중 '고이즈미 개혁'에 대해 피해의식이 강한 농촌지역을 돌며 현금으로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표를 모았다. 이는 어떻게 보면 그가 '일본개조계획'에서 내세웠던 '작은 정부' 노선과는 배치되는 공약이며, 과거 자민당이 즐겨 사용하던 선거운동 전략이기도 하다.

'당수토론' 앞두고 꽁무니 뺀 아베

아베 총리는 12일 오후 1시부터 중의원에서 예정됐던 오자와 대표와의 당수토론을 앞두고 전격 사임의사를 밝혔다. 의도야 어떠했든 오자와 대표와 맞붙는 것이 두려워 꽁무니를 뺀 모양이 됐다.

아베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테러대책특별법에 대한 나의 솔직한 생각을 전하기 위해 오자와 대표에게 당수회담을 제의했으나 사실상 거부당했다"고 말해 이것이 사퇴 결심의 직접적 계기가 됐음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오자와 대표는 "그런 얘기는 있었지만 정식 제안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그는 "40여년 정치를 하면서 선거에 지고서는 사퇴를 안하고, 개각을 하고, 국회에서 소신표명 연설까지 해놓고 사임하는 총리는 처음 봤다"고 비꼬기도 했다.

오자와 대표는 이날 민주당 간부들에게 지금 자기들끼리 움직이고 있는 것뿐이니, 우리는 침착하게 가던 길을 걸어가면 된다"고 주문했다고 한다. 조기에 '중의원 해산, 총선거 실시'를 관철시켜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마치 먹이를 궁지에 몰아넣고 퇴로를 하나하나 잘라 스스로 무너지게 만드는 맹수의 사냥법을 연상시킨다.

되풀이되는 역사 그러나...

앞으로 관심 초점은 그가 과연 15년 만에 다시 일본 정계를 뒤흔들어 자민당 장기집권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느냐이다. 일단 흔들리기 시작한 자민당 정권의 혼란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른다.

자민당은 일단 얼굴을 바꿔 계속 정권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아소 다로 간사장 등 누가 총리가 되도 참의원 '여소야대'의 벽을 넘기는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중의원 해산, 총선거'를 실시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면 여야가 선거에서 정권을 놓고 한판 겨루기 전에 내부로부터 균열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역사는 간혹 되풀이된다. 그러나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는다. 선진국에서 유례가 없는 1당 장기집권 체제의 붕괴가 15년 전 변화에서는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 '신기루'에 그쳤지만, 이번에 일어난다면 보다 근본적 변화가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오자와 #아베#보통국가#테러대책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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