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란 노래에 ‘화포 최무선’이 등장한다. 최무선은 화약제조기술을 터득한 이후에 화포를 만들어 직접 왜구를 격퇴하는 등 혼자서 ‘1인 다역’의 역할을 소화해냈다. 한국인들이 어려서부터 배우는 최무선의 이야기는 ‘화약제조를 위한 끈질긴 노력’ ‘나라에 대한 헌신적 충성’ 등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 속에는 그 외에도 또 하나의 흥미로운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것은 바로 ‘남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최무선 이야기 속에 나오는 바와 같이, 당대 세계 최강 원나라는 고려에게 화약제조기술을 넘겨주지 않았다. 그저 다 된 완성품만을 제공할 뿐이었다. 원나라가 기술을 통제한 이유는 간단하다. 고려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고려와 원나라의 관계를 살펴보면, 이러한 원나라의 태도가 얼마나 야박한 것이었는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양국은 일종의 동맹국이었다. 물론 대등한 동맹국은 아니었다. 원나라의 주도권을 전제로 한 동맹관계가 두 나라 사이에 존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와 원나라는 어디까지나 긴밀한 동맹국이었다. 게다가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이기까지 했으니, 양국관계는 오늘날의 한미관계보다도 더 긴밀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원나라는 고려의 각별한 동맹국이었지만... 그뿐 아니라 고려는 원나라의 중원지배에도 간접적으로 기여한 적이 있다. 고려가 대몽항전을 포기하고 화친으로 돌아섬으로써 원나라는 중원에 대한 영향력을 공고히 하는 데에 에너지를 투입할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두 나라가 약 30년간의 군사적 대립을 끝내고 강화조약에 서명한 1260년은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가 중국적 국가를 지향하기 시작한 시기였다(한화정책 漢化政策). 유목국가에서 탈피하여 중국적 국가를 지향해야 할 상황 하에서 고려와의 장기전은 몽골족의 업그레이드에 장애만 될 뿐이었다. 그래서 원나라는 고려와의 화친을 추진한 것이다. 고려와 화친한 바로 그 1260년부터 원나라가 한화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그때부터 중국적 국가를 지향했다는 것은 고려의 화친노선이 원나라의 중원지배를 도운 측면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려가 시간적 여유를 준 덕분에 중원지배를 공고히 할 수 있었으니, 원나라 입장에서는 고려란 나라가 각별한 동맹국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밀접한 동맹국이인데도 불구하고 원나라는 고려에게 화약제조기술을 끝내 이전해주지 않았다. 동맹국 고려가 왜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최무선이 화약 독자개발에 나선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원나라가 동맹국이기는 하지만 화약제조법을 가르쳐줄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국산개발’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강남 사람 이원에게서 염초제조기술을 배워 자신의 화약개발을 완성시키는 데에 성공하였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원나라가 고려에게 화약제조기술을 이전하지 않은 것은 고려에 대한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동맹국이니까 더 잘 가르쳐줄 수 있을 것도 같지만, 바로 그 동맹국이라는 이유 때문에 가르쳐줄 수 없었던 것이다. 고려가 너무 많이 알면 원나라에게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최무선이 원나라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개발에 나선 이후에야 비로소 고려가 화약제조기술을 확보하여 왜구를 격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오늘날의 한미관계에도 일정 정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미국이 한국의 미사일 개발을 제한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현재 한국군은 한·미 미사일 지침에 따라 사정거리 300km를 넘는 미사일은 개발할 수 없다. 그나마 2001년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 이전에는 180km를 넘는 미사일을 개발할 수 없었다. 그런데 180km든 300km든 간에 현재로서는 한반도 밖을 겨냥할 만한 미사일은 개발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한미관계가 한국의 군사기술력을 억제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의 미사일 개발을 제한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한국의 군사력을 미국에 종속시키려는 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종속적 한미관계에서 신속히 벗어나지 않는 한, 한국의 군사력은 주변 강대국인 일본·중국보다 항상 뒤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단 미사일뿐만 아니라 여타 군사기술 분야에서도 한국은 미국이 가하는 제약 때문에 신속한 발전을 이룩할 수 없을 것이다. 최무선 시대의 경우에는 원나라가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더라도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전투에 활용할 수 있었으나, 오늘날의 경우에는 미국이 아예 사정거리 300km 이상의 미사일은 개발하지도 못하게 하고 있으니 대한민국 군대가 겪는 어려움이 고려 군대가 겪는 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 종속적 한미관계 하에서는 미국이 가르쳐주지도 않고 미국에게서 배울 것도 없다는 점은 비단 군사적 분야뿐만 아니라 경제적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제패망 이후 한국경제가 미국경제에 의존했지만, 한국이 미국에 의존한 결과로 얻은 것은 1997년 IMF 사태였다. 미국은 한국을 자국의 지배하에 두면서도 한국을 올바른 길로 안내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은 악덕고용주와 마찬가지 이는 마치 기술 배우러 들어온 종업원을 저임금으로 부려먹으면서 끝내 기술을 전수해주지 않는 악덕 고용주와 다를 바 없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이 숙련되면 더 이상 종업원을 저임금으로 부려먹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종업원을 곁에 둘 수도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고용주들이 간혹 있다. 그런 악덕 고용주와 같은 나라가 예전에는 원나라였고 지금은 미국이다. ‘이른 새벽’에 최무선이 짐 싸들고 가게 문을 몰래 열고 도주한 것은, 그런 ‘악덕 고용주’ 밑에서는 노동력만 착취당할 뿐 배울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런 지혜로운 최무선 덕분에 고려는 화약 자주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도 최무선처럼 신속한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미국 밑에서는 아무 것도 배울 게 없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 가르쳐주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와 군사를 올바로 세우려면, 한국은 미국의 그늘 아래에서 신속히 벗어나 독자적인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 세상 천하에 한국 잘 되라고 길을 올바로 안내해줄 나라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한국 스스로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나서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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