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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웨이 아치
 게이트웨이 아치
ⓒ 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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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가 좀 못 돼서 눈이 떠졌다. 미주리 주의 세인트 루이스. 이번 미국 횡단 여행 중 머무르게 되는 첫 도시다. '서부로 가는 관문(Gateway to the west)'이라 불리는 이 도시에서 첫 밤을 보낸 후 서쪽으로 쭉 달려 보는 건 나름대로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

어제는 온종일을 달려왔지만 아직 여행 초기인 데다 저녁에 호텔 수영장에 아이들을 풀어 놓고 피로를 푼 덕인지 몸이 개운하다. 게다가 오늘처럼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경우엔 마음도 가볍고 아침 시간이 훨씬 수월하다.

1층의 작은 식당엔 백발의 노인들이 가득하다. 알록달록 깔끔한 차림새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신문을 들척이기도 하고, 아침 뉴스를 보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아무래도 단체 관광객인 듯하다. 우리도 그 틈에 적당히 자리잡고 앉아 아침 식사를 한다. 따뜻한 와플에 스크램블 에그와 햄, 과일, 요플레… 이 정도면 든든한 아침이다.

관광객들은 게이트웨이 아치를 배경으로 저마다 다양한 연출을 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관광객들은 게이트웨이 아치를 배경으로 저마다 다양한 연출을 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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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챙기고 꼬마 둘 챙겨 호텔을 나선 시간이 오전 8시 30분. 오늘 우리가 올라갈 게이트웨이 아치(Gateway Arch)는 어제 스쳐 지나온 다운타운 쪽으로 다시 좀더 거슬러 가야 한다. 제퍼슨 내셔널 익스팬션 메모리얼 파크(Jefferson National Expansion Memorial Park) 내에 위치하고 있는데 지도를 보니 꽤 넓은 공원이다. 마켓 스트리트로 들어선 후 주차장 입구를 찾느라 잠시 긴장하긴 했으나 큰 탈 없이 잘 찾아냈다.

9시간 이하에 한해 주차료가 6달러란다. 기껏해야 서너 시간 둘러볼 텐데 6달러를 다 내려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투덜거려보지만 뭐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니 얌전히 차를 세우기로 한다. 날이 많이 뜨거워서 지상보다는 지하가 낫겠다. 아직 오전 10시도 안 된 아침인데 벌써부터 찌는 듯하다. 그래도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것이 전망대 오르기엔 딱 좋은 날이다. 

아치는 기대했던 것보다 높았다. 특히나 땅에 맞닿은 기둥 부분은 생각보다 넓고 육중한 느낌이었다. 하긴 그러고 보니 높이가 630피트(192m)에 달하고, 뉴욕 자유의 여신상의 2배 높이이며 미국 내 기념물들 중 가장 높다는 말이 이제서야 조금 와 닿는다. 이 거대한 곡선의 조형물 속으로 작은 캡슐 모양의 트램이 지나다니며 저기 아득한 꼭대기의 전망대로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는 것인데 어떤 모양새일지 짐작이 되질 않는다.

게이트웨이 아치
 게이트웨이 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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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꼭대기, 아치의 가장 높고 가느다란 부분에 전망대가 있다.
 저기 꼭대기, 아치의 가장 높고 가느다란 부분에 전망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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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웨이 아치를 즐기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다. 아치 바로 앞에 미시시피 강이 흐르는데 그 위를 떠다니는 유람선에 올라 아치의 우아한 곡선과 도시의 빌딩들이 이뤄내는 풍경을 감상하는 방법, 헬리콥터를 타고 도시와 아치를 통째로 내려다 보는 방법, 아치 속으로 들어가 트램을 타고 꼭대기로 올라 도시를 내려다 보는 방법 등. 우리는 꼭대기로 올라갈 생각이다. 

아치 주변에서 맴돌며 시간을 좀 보낸 후 입구로 가보니 그새 줄이 꽤 길어져 버렸다. 그러고 보니 성수기엔 오래 기다려야 하므로 일찌감치 서두르라 했던 안내서의 문구가 생각난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뜨거운 햇살아래 마냥 서 있자니 아이들도 어른도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다. 대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입구의 삼엄한 검문을 거쳐 지하로 들어오니 시원하고 넓은 홀이다. 서부개척의 역사, 아치의 건축 과정 따위를 알려주는 영화 상영관과 뮤지엄이 있고, 물론 기념품 상점도 있다. 서둘러 매표소로 가 보니 오전 11시 40분 표를 판매 중이란다. 아직도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다는 뜻. 아침 일찍 서두른 공도 없이 이렇게 늦어질 줄이야. 아치 밖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낸 탓이다. 일단 표를 끊어 놓고 뮤지엄을 먼저 관람하기로 한다.  

아치의 건축 과정과 역사를 보여주는 조형물
 아치의 건축 과정과 역사를 보여주는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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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개척 역사를 보여주는 뮤지엄
 서부개척 역사를 보여주는 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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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개척 시대 인기있던 교통수단
 서부개척 시대 인기있던 교통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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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웨이 아치는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루이지애나 매입(Louisiana Purchase)'을 기념하고 그 의미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세워진 기념물이다. '루이지애나 매입'은 1803년 미국 정부가 프랑스 정부로부터 루이지애나 영토를 1500만 달러에 사들였던 사건을 말한다. 당시 '루이지애나'라 하면 뉴올리언즈로부터 시작해 미시시피강을 따라 쭉 올라가 서쪽으로는 로키산맥까지 이르는 거대한 땅이었는데 한반도의 10배에 이르는 크기다.

열악한 교통환경과 약탈의 위험 등으로 육로보다는 수로가 애용되었던 당시, 미시시피강은 매우 중요한 통로였다. 그러나 미시시피강의 입구인 뉴올리언즈가 프랑스 영토였던 탓에 정착민들은 통행료를 지불해야 했고 이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은 루이지애나 땅 매입을 위해 의회를 설득하고 협상단을 프랑스로 파견한다. 당시 프랑스 황제였던 나폴레옹은 쓸모 없는 땅을 팔아버리고 군비를 확충하자는 생각에 1500만 달러에 이 땅을 매각해 버리기에 이른다. 1에이커당 대략 3센트 정도였던 셈.

'미국 역사상 가장 현명했던 구매'라 일컬어지는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영토를 두 배로 확장하고 서부 개척의 커다란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더불어 토머스 제퍼슨은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등과 함께 미국 유치원생들도 이름을 아는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앙받게 된다. 하지만 이로 인해, 이미 프랑스로부터 미국이 사들인 땅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이주민들과 조상 대대로 수세기 동안 거주해온 원주민들 사이의 끔찍한 전쟁이 있게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루이지애나 매입 이후 1804년, 루이스와 클락이 이끄는 탐험대가 서부로 원정을 떠나게 되는데, 미주리 강을 따라 이동해 태평양까지 닿았다가 되돌아오는7500마일의 대장정은 28개월 만에 막을 내린다. 이들 탐험대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 된 곳이 바로 세인트루이스였던 까닭에 '서부로 가는 관문'이라는 상징적인 의미의 게이트웨이 아치가 바로 이 도시에 세워지게 된 것이다. 

The Journey to the Top. 전망대로 오르는 트램을 타기 위해 기다리며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
 The Journey to the Top. 전망대로 오르는 트램을 타기 위해 기다리며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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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 입구엔 토머스 제퍼슨이 실물 크기 조형물로 서 있다. 아이들은 대통령과 키를 견주어 보기도 하며 재미있어 한다. '루이지애나 매입' 당시의 역사적 상황, 루이스와 클락의 대탐험, 서부개척 시대의 생활상 등을 보여주는 전시물들을 훑어보다 보니 1시간도 충분치 않다. 말하는 마네킹이나 작동해 볼 수 있는 전시물들은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에도 충분하다.

오전 11시 40분. 마침내 우리 차례다. 높은 전망대로 오르기 위해선 작은 트램을 타야 하는데 5인용 트램이 딱 여덟 개 뿐이다. 정확한 시간대별로 정해진 인원만 탑승 가능하므로 기다리는 시간이 이렇게 많았던 것이다. 깊은 지하에서 기다리는 동안의 분위기도 스산하거니와, 후덥지근하고 덜컹거리는 좁은 공간에 갇혀 위로 올라가는 느낌은 그닥 유쾌하지만은 않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세인트 루이스 다운타운과 Old Courthouse, 그리고 저 멀리 지평선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세인트 루이스 다운타운과 Old Courthouse, 그리고 저 멀리 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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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창문에 납작하게 기대 서서 거의 요가 자세로 찍은 아치의 그림자와 깨알만한 사람들
 전망대 창문에 납작하게 기대 서서 거의 요가 자세로 찍은 아치의 그림자와 깨알만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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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의 꼭대기에 마련된 좁고 긴 통로 형태의 전망대는 매우 인상적이다. 좁은 통로 양편에 마련된 길쭉한 모양의 작은 창들, 엎드리듯 기대 서서 내려다 본 세인트루이스 다운타운, 유유히 흐르는 미시시피 강물, 저 멀리 지평선. 게다가 지금 서 있는 곳이 192m 높이의 아치 꼭대기라 생각하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아찔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삼십 분쯤 지났을까, 안내원이 이제 내려가란다. 줄서서 다시 그 덜컹거리는 트램을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가만…그러고 보니, 아까 그 꼭대기 안내원은 매일 이걸 타고 출퇴근을 하는 셈이네. 식당이나 화장실을 가려 해도 오르락 내리락. 무엇보다 종일토록 그 허공 중에 서서 얼마나 심심할까. 이 뜨거운 여름날 말이지.

덧붙이는 글 | 지난 여름 17일간 7000마일을 달린 여행의 기록입니다.



태그:#세인트 루이스, #게이트웨이 아치, #미국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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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통해 시대를 넘나드는 기호와 이야기 찾아내기를 즐기며,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인문학자입니다. 이중언어와 외국어습득, 다문화교육과 국내외 한국어교육 문제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대학교수입니다. <헤밍웨이를 따라 파리를 걷다>, <다문화 배경 학생을 위한 KSL 한국어교육의 이해와 원리>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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