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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을 꼭 쥐고 자신의 얘기를 써내려가는 한부모들의 모습에서 진지함이 느껴진다.
 연필을 꼭 쥐고 자신의 얘기를 써내려가는 한부모들의 모습에서 진지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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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영 기자] 지난 6일 오후 7시,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이화여대 성산종합사회복지관(관장 정순둘).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3050 여성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이들은 모두 복지관에서 운영 중인 '빅 맘스 클럽(Big Moms Club·이하 빅 맘스)' 회원들로 매주 목요일마다 정기모임을 갖는다.

'빅 맘스'는 심리적·정서적·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성 한부모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일종의 동아리 모임으로, 지난 2004년부터 시작됐다.

'빅 맘스'란 세상에서 가장 넓은 가슴을 가진 엄마들이라는 뜻으로, 홀로 아이들을 가슴에 안았지만 당당한 엄마가 되길 바라는 희망이 담겨 있다. 현재 이곳을 거쳐간 이들은 43명. 지금은 20여명의 회원들이 매주 이곳을 찾는다. 

이날 2층에 마련된 교실에서는 글쓰기 작업이 한창이었다. 지난해부터 한국여성재단(이사장 박영숙)에서 지원을 받은 '한부모 여성 글쓰기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책으로 묶어 올해 말 출간을 앞두고 있기 때문. 책은 결혼과 이혼, 가족과 아이, 한부모 가정의 일과 노동, 한부모의 성 등 다양한 주제로 구성될 예정이다.

'허스토리 프로젝트(Herstory Project)'라는 이름으로 기획된 이번 작업에는 12명의 회원들이 직접 참여한다. 이들 외에도 한부모 가정을 경험한 개그우먼 김미화씨를 비롯해 연예인, 정치인 등 사회 유명인사들이 멘토로 참여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예정이다.

'빅 맘스'의 회원인 박혜순(44·가명)씨. 고1 아들을 둔 그는 남편의 가부장적인 태도를 견디다 못해 14년 전 이혼을 선택했다. 아들에게는 늘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지만 이혼 당시만 떠올리면 마음 한편이 먹먹해지면서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고 박씨는 말했다.

그에게 글쓰기 작업이 처음부터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억지로 잊고 지냈던 옛이야기를 하나둘씩 끄집어내는 일이 버겁기만 했다.

"내 얘기를 쓰라는데, 솔직히 쓰고 싶지 않았죠. 책으로까지 낸다고 했을 땐 더 망설여졌고요. 그런데 저같은 한부모 가정이 앞으로도 더 많아질 텐데, 이 사람들이 저처럼 아무런 정보도 없이 막막해지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저도 모자가정이 뭔지, 수급자가 뭔지 이런 거 하나도 몰랐거든요. 내 글을 통해 정보도 공유하고, 또 한부모 가정이 오히려 더 행복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다른 회원들도 처음에는 박씨와 비슷했다. 한부모 가정을 둘러싼 사회 곳곳의 편견 때문에 이중삼중의 고통을 경험했던 이들이라 자신의 이야기를 밖으로 드러내는 것을 내키지 않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차츰 용기를 냈고, 지난 8월부터 글쓰기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기교면에서는 서툴지만 진솔한 내용을 담을 생각이다.

회원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이름을 내건 책이 다른 여성 한부모 가장들에게 희망의 빛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전했다. 이번 작업에 높은 지지를 보낸 큰언니격인 이명애(48·가명)씨는 "자녀들에게 힘들지만 씩씩하게 살아가는 엄마의 얘기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다"면서 "쓰면 쓸수록 보람된다"고 말했다.

이날 밤 늦은 시간까지 글쓰기 작업이 이루어졌지만 회원들 얼굴에서는 좀처럼 피곤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정해진 시간 안에 마음 속에 담아뒀던 말을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해 무척 아쉬워하는 모습이었다.

연령도, 직업도, 사는 곳도 다양한 이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여성 한부모 가장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가까운 부모 형제들에게도 깊은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 이들도 회원들끼리 만나기만 하면 언니, 동생하며 아이들 교육부터 건강, 대출 문제 등을 의논한다.

정기모임 외에도 한달에 한번씩 회원 집에 모여 생일파티도 연다. 가깝게는 성산동에서부터 멀게는 강북구 수유동에서 오가는 일이 쉽지 않지만, 모임이 있는 날이면 만사를 제쳐두고 복지관으로 달려온다.

직업도 베이비시터, 봉제공장 미싱사, 할인마트 직원, 미용사 등 주로 일용직·임시직에 몰려 있다 보니 일주일에 한번씩 시간을 내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빅 맘스'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이들은 "서로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을 받는다"면서 "많은 여성 가장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우리부터 씩씩하고 당당해지자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모임을 기획한 김은정 가정복지상담센터 팀장은 "기존 한부모 가정 대상 프로그램이 아동에게 한정됐던 점을 극복하고자 (부)모 중심의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다"면서 "엄마로서 자존감을 높이는 동시에 역량 강화를 통해 한부모들이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본 목적"이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이어 "책 출간을 시작으로 여성 한부모 가장들의 지속적인 자조모임을 이끌어내겠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여름 경기도 양평에서 열린 가족캠프. 30여명이 넘는 한부모와 자녀들이 참여했다.
 지난해 여름 경기도 양평에서 열린 가족캠프. 30여명이 넘는 한부모와 자녀들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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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엄마 보여줄 겁니다"
'그래, 우리는 싱글맘 싱글대디다' 책 펴낸 싱글맘 8년차 박소원씨
박소원
 박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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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늘고 있지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우리 사회 편견의 벽은 단단하기만 하다. 이런 편견에 맞서 당당하게 '싱글맘'임을 커밍아웃한 사람이 있다. 바로 '그래, 우리는 싱글맘 싱글대디다'(맨토르)의 저자 박소원(45)씨.

광고대행사 대표로, 칼럼니스트로,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싱글맘&싱글대디 행복한 세상만들기' 카페지기 등으로 일인다역을 소화해내느라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그를 만나 '싱글맘'으로 씩씩하게 살아가는 얘기를 들어봤다.

"왜 싱글맘인가?"라는 물음에 박씨는 "'이혼녀'는 엄마로서의 존재감이 표현되지 않아 한부모가 이끄는 가정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싱글맘'이란 단어를 선택했다"며 이야기를 하나둘씩 풀어냈다.

싱글맘 8년차인 박씨는 올해로 10살이 된 아들 준석군과 함께 살고 있다. 이혼했다는 사실을 굳이 숨겨야 할 필요성을 못느꼈기에 박씨는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의 상황을 편하게 얘기하는 편이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부터는 직접 선생님을 찾아가 아빠의 부재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간혹 '엄마·아빠놀이' 같은 역할놀이를 할 때면 '아빠' 대신 '삼촌'이나 '할머니'처럼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해달라고 적극 요구하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들은 극성스럽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부모의 이혼 사실을 아이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한 나름의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그 덕분인지 아들 준석군은 부모의 이혼을 자랑할 일도 아니지만 숨겨야 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아빠와는 따로 떨어져 살지만 아이가 아빠란 존재를 긍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박씨가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정말로 어렵고 힘들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해요. 저는 사소한 것부터 시작했어요. '준석이는 아빠를 닮아 멋진 눈썹을 가졌구나' 하는 식으로 칭찬해줬어요. 아이도 아빠의 장점을 물려받은 걸 내심 자랑스러워 하더라고요."(웃음)

보통 이혼 직후에는 정신적·육체적으로 힘든 시기이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아이에게 표현하는 경우도 종종 있게 마련이다. 박씨는 "이때 아이가 겪는 상처가 트라우마(심리적 외상)로 남게 된다는 걸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씨가 싱글맘으로서의 일상을 본격적으로 세상에 드러내기 시작한 건 지난해 한 일간지에 칼럼을 집필하면서부터다. '재미있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한 칼럼은 지난 7월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왔다. 칼럼의 반응이 뜨거워 한동안은 악성댓글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더 많은 싱글맘들이 용기를 얻게 될 생각을 하면 다시 힘을 얻곤 한다.

박씨는 싱글맘들에게 이말은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도움 받기를 꺼려하지 마세요. 불쌍하게 보일 필요는 없지만, 기꺼이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도 많아요. 편견이 있을 거라는 가정 아래 마음의 문을 안 여는 분들도 많은데, 이웃이나 친척들과 좋은 관계를 만드세요. 직장 다니랴, 애 키우랴 우리 싱글맘이 항상 슈퍼맘이 될 순 없잖아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세상이 하루 빨리 오려면 우리부터 손을 내밀자고요."


태그:#싱글맘, #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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