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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17일부터 19일까지 노점시범거리사업 홍보의 일환으로 ‘노점 표준디자인 실물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이번 행사는 종로구 동묘공원, 중구 명동 등 25개 자치구 노점시범거리에 설치될 표준노점 실물전시와 더불어, 현재 노점을 운영 중인 상인들을 참여시켜 직접 상품을 진열하고 영업하는 모습을 시연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전국노점상연합회 소속 회원 700여명은 행사 전인 오전 11시부터 서울광장에 모여,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 중인 ‘노점 정책’에 반대하는 규탄시위를 벌였다. 이 날 전노련 측은 표준노점 전시를 막기 위해 서울시에 의견을 전달했으나, 시측은 이를 묵살하고 오후 2시 반쯤 표준노점 전시를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전노련 회원들과 서울시 관계자들 간에 승강이가 벌어졌고 일부 표준노점 전시물이 심하게 파손되기도 했다. 시위장에서 만난 전국노점상인연합회 조승화 선전부장(31)은 시측과의 승강이 때문에 조금 화가 난 듯 보였다. 그는 서울시의 노점정책은 ‘서민말살정책’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영세 상인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300만원짜리 리어카(표준노점)를 사겠어요. 오늘 전시된 것들이 한 대에 300만원짜리 리어카들이예요. 이것들을 소위 표준노점이라고 해서, 노점시범거리에서 장사하고 싶으면 이걸 사라는 거예요. 사기 싫으면 장사하지 말라는 이야기죠….”

 

서울시는 교수, 디자이너 등 외부 전문가 5명에게 의뢰해 공산품용(3개), 조리음식용(5개), 농수산물용(2개) 표준 노점모델을 만들었다. 각 자치구들은 이 표준안을 토대로 자율적으로 디자인을 선정한 뒤 시범거리에서 영업토록 할 계획이다. 하지만 시에서 허가받은 표준노점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300만원 안팎의 자비를 들여야 하기 노점상들의 반발이 크다.

 

조 씨는 이어 서울시가 노점시범거리를 조성하면서 인위적으로 영업시간을 제한하려 하고 이곳에서 장사할 수 있는 상인들도 한정된 소수일 뿐이라고 말했다.

 

“정말 열 받는게 또 있는데, 300만원짜리 리어카를 사야 장사 시켜준다는 것도 모자라, 정해진 시간외에는 장사도 못하게 하려는 거예요. 이게 말이 됩니까. 해질 무렵인 오후 4시부터 12시까지만 시범거리에서 장사하라고 하고 그 외에 시간에는 집에 가서 쉬라는 거죠. 세상에 저녁 말고 아침, 낮에 잘 되는 장사도 있는데 어떻게 시간을 정합니까. 오세훈 시장님 길거리에서 장사 한번 해보시구 그런 말씀 하십니까?” (쓴웃음)

 

“그리고 저희 전노련에 추산해 본 결과 서울에 노점상들이 만 명이 조금 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점상들의 장사를 허용한 노점시범거리에 들어갈 수 있는 상인들은 이에 10분의 1도 안 되는 천명 정도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아예 생계터전을 잃고 길바닥에 나 앉는 꼴이 되는 것이죠.”


문제는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고 조승화 선전부장은 강조했다. 바로 서울시가 노점시범거리 조성사업과 함께, 대대적으로 기업형 노점과 새로 생겨나는 노점상을 집중 단속하기 때문이다.

 

“서울시에서 단속하기로 한 기업형 노점의 개념은 이겁니다. 서울시에서 지정한 표준노점의 사이즈인 가로2m, 세로 1.5m를 넘는 노점을 모두 불법 기업형 노점으로 간주한다는 이야기죠. 그리고 요즘 양극화 때문에 서민경제가 많이 안 좋지 않습니까.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신 분이나 사업에서 실패하신 분들이 노점을 시작하지는 경우가 늘고 있어요. 그리고 이런 분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희망이 바로 ‘노점상’이죠.”

 

조 씨는 또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3월부터 노점상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대화를 회피해오고 있으며, 노점자율개선위원회를 통해 상인들의 처지를 잘 알지 못하는 교수들과의 토론으로만 노점상 정책을 꾸려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아무리 외치고 만나자고 해도 묵묵부답이죠. 우리의 목소리엔 관심이 없는 건지 아니면 그럴 필요가 없는 건지…. 생각하면 자꾸 마음만 아파요. 서울시에 노점자율개선위원회라는 것이 있기는 한데 14명의 위원들 중 13명이 우리의 처지를 절대 알 길이 없는 교수들이고 나머지 1명은 노점상인 대표라는 사람이 있죠.”

 

“그런데 그 사람의 정체를 잘 모르겠어요. 우리 협회 사람도 아니고 주변에 아는 사람도 아니고 그냥 모양 갖추기 위해 앉혀놓은 꼭두각시 위원 같아요.” (쓴웃음)

 

마지막으로 그는 노점상 문제가 나아가서는 ‘빈곤의 문제’라며, 무분별한 단속과 깜짝 이벤트성의 전시행정보다는 도시 서민들을 위한 구체적인 복지정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민의 아픔을 몸소 이해하고 감싸 안는 부분이 부족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예전에 어떤 분이 실직을 해 노점상을 하려고 길거리에 자리를 잡으려고 했는데, 그 분 옆에 고등학교 동창이 앉아 물건을 팔고 있었다고 합니다. 서울 한편에서는 수억 원대에 아파트에 살며 고급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한편에서는 하루벌기 힘들어 길거리에 생계를 꾸리는 사람도 있죠. 그만큼 서울의 ‘빈곤문제’가 심각하다는 겁니다.”

 

“오 시장님도 도시를 편리하고 아름답게 꾸미는데만 신경쓰실 게 아니라 도시서민들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서울, 이를 위한 정책을 앞으로는 추진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시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느 노점상의 푸념 섞인 말이 기억난다.

 

“오늘 우리가 깽판 벌인다고 뭐 나아지겠어. 그냥 윗사람들은 모른 척 하면 그만인데 뭘…. 그래도 어떻게 해 더 지랄해야지. 세상이 우리 목소리를 들어줄 때까지….”

 

짧은 한 마디였지만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다. 노점상인들의 거친 메아리가 떠나고 난 서울광장엔 부서진 전시용 표준노점들이 서울시 직원들에 의해 황급히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잠시 후 깨끗이 치워진 광장 한편에서는 음악에 맞춘 우아한 분수가 세상모르게 춤추고 있었다.


태그:#노점상, #표준노점, #노점시범거리, #서울시,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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