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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길은 도시의 심장을 향해 흐른다

골목길은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문화의 공간이자 생활의 쉼터이자, 아이들의 놀이터이며 좌판상인들의 수레의 길이며, 저 도심을 향해 콸콸 타고 내려가는 수정동 하수구 물소리처럼 높은 곳에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세상의 중심을 만나는 통로의 상징이다.

골목길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카메라의 산책'에서 작가의 세계관과 작가의 삶의 시선을, 삶과 꿈의 이분법처럼 해석해 볼 수 있다.

유교의 공자 왈, 사람의 길은 하늘의 길에 따르는 것이라고 했는데, 부산의 산복도로의 좁다란 골목길을 걷다보면, 하늘의 길과 구름의 길, 또 사람의 길이란 도(道)에 닿는 길과 같다는 것을 여실히 깨닫는다.

아주 낮은 곳에 임한 길이 바닥에서 부터 올라오기도 하고, 가장 높은 곳에 임한 공중의 길이 돌계단으로 내려가 세상을 만난다. 더구나 작가의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산복도로의 좁다란 골목길 속으로 깊이 들어오면, 막다른 골목길의 끝을 찾을 수 없어서 다시 헤매는 미로 속에서, 어떤 풀리지 않는 실마리 같은 길 하나를 찾게 된다.

공간의 미학, 골목길
▲ 골목길은, 큰 하수구의 물소리따라 내려간다. 공간의 미학, 골목길
ⓒ 최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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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길, 골목길의 길, 솟대처럼 하늘에 닿는다

현재 마산에 살고 있는 최영환 작가는 30대의 젊은 작가이다. 물론 예술의 길은, 나이와 무관하지만, 물리적인 숫자의 나이에 지배를 받는 현시대를 사는 젊은 작가란 의미도 함께한다. 최 작가는 부산사람이다.

부산에서 학교를 나왔고, 부산에서 거주하다 마산으로 이주해갔다. 해서 그는 부산작가이기도 하고, 마산에 현재 체류하기에 마산작가로 불리기도 한다. 지역을 논하는 것은 그의 많은 작품이 부산을 무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골목길> 일련 작품들은, 그의 첫 개인전의 성과물이고, 이는 최작가의 세계의 모태에 다름 아니다.

<골목길>의 텅빈 공간의 시학은, 다양한 사회학적 해석의 함의와 소외된 기층민의 삶의 직접성을 찾을 수 있다. 통상의 '골목길'의 의미는 통로의 의미가 크지만, 우리의 토속 신앙의 하늘을 향해 높이 솟은 솟대가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매체로서 '길'을 상징하고, 여기서의 부산의 고지대의 산복도로의 골목길은, 바로 이 민중의 신앙, 솟대의 길을 떠올리게 하기 충분하다.

고불고불한 곱창길은 하수구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소리를 따라 내려가면 지상으로 닿고, 늦은 퇴근 길에 발밑만 쳐다보고 올라가야 하는 가파른 연탄길은 어느새 산의 암자를 품은 정상을 올라와서 높은 새둥지 같은 판잣집 대문앞에 걸음을 멈추게 된다.

여기까지 숨을 헉헉대며 올라와서 비로소 뒤를 돌아서서, 탁 트인 허공을 바라보면, 그때 풍경은 어떤 경악으로 다가온다.

넓은 불빛 바다를 자신의 앞 마당으로 삼은 가난한 행복감에 모든 피로와 짜증을 씻게 되는데, 이것이 힘들지만 산복도로 높은 산지대에 사는 위안과 작은 행복이 되곤 했다. 여기서 바라보는 도심의 불빛 바다는, 찬란한 적멸보궁의 세계에 다름아니었으니.

그 꿈의 계단참에서
어머니는 아버지를,
큰 오빠는 봉제공장에서
아직 귀가 못한 누이를 기다렸다.
▲ 야곱이 잠든 계단, 그 꿈의 계단참에서 어머니는 아버지를, 큰 오빠는 봉제공장에서 아직 귀가 못한 누이를 기다렸다.
ⓒ 최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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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과 이웃의 계단문화...점점 골목길에서 사라지다

골목길을 산책하다보면 행복을 얻는 길의 통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좁은 길을 걷다보면, 길은 무수히 가라지고, 어느 길로 가야할지 모를 때, 길이 막다른 골목임을 알려준다. 또  막다른 골목길에서는, 대개 대문이 없는 방문이 활짝 열려져 있다.

그 방문 앞에 비에 젖은 신발과 방금 벗어 놓고 들어간 신발들이 나란히 놓인 골목을 따라 걷는 길은, 기층민의 살아가는 대문도 울타리도 없는 삶과 맨살처럼 닿게 된다.

 외등이 졸고 있는 돌계단을 응시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곧 사람이 가야할 길이 한없이 낮은 곳으로 임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도 하지만, 이 골목길의 계단참에서 앉아서 조으는 불빛 아래,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초조한 기다림과 또 아직 돌아 오지 않는 봉제 공장에 다니는 여동생을 기다리는 큰 오빠의 서성거리는, 사람의 길을 확대시킨다.

텅 빈 골목길은 인문학의 미학처럼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읽게 한다. 사진은 많은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설명하는 매체이지만, 이 작가의 카메라의 세계는 여기에서 그 경계가 다르다. 많은 것을 비워주면서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 카메라의 미학을 추구하고 있다 하겠다.

높은 산동네의 구름의 길로 이어진다
▲ 솟대처럼 산복도로 길은, 높은 산동네의 구름의 길로 이어진다
ⓒ 최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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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차도 올라오지 못하던 좁다란 골목길의 회억 속으로

유클리드의 기하학처럼 우리의 삶은 꿈과 이상으로 평행선을 유지하듯이, 사진 속의 골목길은 빛이 바래가는 기억처럼 점점 우리의 삶 속의 골목길에서 자취를 감추어간다. 고지대의 산동네들도 근사한 고층아파트로  순식간에 바뀌고, 골목길 대신 숨막히는 엘레베이터가 도시의 삭막한 삶을, 이웃 없는 단절된 아파트 공간으로 자동 키 하나로 실어나른다.

서양의 'road, way'는 길, 거리, 통로 등에 따라 그 의미가 다소 차이가 생기지만, 그것들이 어울려서 이법, 질서, 방법, 인생 등을 상징한다. 부산의 고지대를 향해 올라가는 돌계단길은 계단문화, 골목문화란, 인문학적의 텍스트로 종종 회자되지만, 그 백팔개도 넘는 돌계단을 힘들게 올라와, 다락방 방에서 잠이 청하면, 봉창 밖의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들은 만질 듯 했던, 가난한 시절의 행복은 결코 인문화되지 못한다.

최 작가의 카메라는 텅 빈 골목길의 '비어있으나 가득한' 공의 미학의 형상화이다. 그 어둑어둑 어둠이 밀려오는 골목길로 바퀴를 굴리며 세상으로 내려가는 포장마차의 길은, 그러나 어느새  명멸하는 세상의 중심에 가장 형형한 반딧불이로 떠오르고 있다.

앙상한 가지 끝에 머무는 쌩쌩 바람은
그 좁다란 골목길을 쓸다가
비가 새는 스레트 지붕 위에 올라가서
우당탕 대못질을 하기도 했지.
어떤 이는 한 없이 넓은 등을 보이고
골목길 모퉁이로 사라지고
어떤 집은 포클레인에 실려간 뒤
다시 돌아오지 않았지.
아버지는 언제나 작고 초라한 뒷모습으로
총총 막다른 골목길로 사라졌지.
나풀나풀 고무줄 뛰던, 그 추억의 길은
살면서 다 삭아 재처럼 흩어졌지.
그래도 두 눈을 감으면 
외등 하나 졸고 있는
그 푸른색 철대문 보이는
돌계단 앞에 그 녹슨 못하나
그대로 잠들어 있지.

-<수정동 블루스>(자작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블로그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태그:#최영환, #추억이 손짓하는 골목길, #골목길, #수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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