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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육해공군에 진급의 계절이 다가왔다. 이번 육군의 정기인사에서는 그동안 15개 기수 6600여명이 임관했으면서도 단 한명의 장군도 배출하지 못한 채 그야말로 육군의 서자로 천대만 받아온 단기사관출신의 장교들에게도 장군진급의 기회가 부여될 것인지 궁금증이 증폭돼 가고 있다.

하지만 그 간절한 염원은 성취된다 해도 상징적 형태에 불과한 반짝 영광에 그칠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진급대상권에 드는 현직의 대령이 10여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부사관출신 장교라는 출신의 한계와 이에 대한 육군의 잘못된 인사 관행이 만들어낸 육군의 서자 단기사관. 그들을 통해 육군 부사관 및 부사관출신 장교들의 인사(진급)제도를 확인해 본다.

  육군부사관출신 장교단의 기원

2006년 후반기 육군 수뇌부 인사에서 갑종간부(甲種幹部) 출신의 마지막 현직 장성이었던 2군사령관 권영기(222기) 대장이 군문(軍門)을 떠남으로써 갑종출신 장교들이 육군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일본은 중일전쟁 발발 직전인 1933년부터 대륙침략을 위해 장교요원으로서의 갑종간부후보생과 부사관요원으로서의 을종간부(乙種幹部)후보생을 양성하기 시작했는데, 갑종은 주로 병이나 부사관 중에서(소요부족 시는 민간지원자 중에서 선발) 단기교육을 통해 연간 4000~1만1000명까지 임관시켜 전장에 투입했던 초급장교 양성과정 중 하나였다.

한국군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부족한 장교 수요를 보충하기 위해 이 제도를 그대로 수용해 1950년 육군보병학교에서 1기 363명의 임관을 시작으로 ‘69년 230기까지 총 4만5424명의 장교를 배출시켰다.

이중 1만508명이 한국전쟁에 참전했으며 805명이 전사했다. 또한 1만4712명이 월남전에 참전해 174명이 전사했다. 3명의 태극무공훈장 수훈자를 포함해 5만342명이 무공훈장을 받고 200여 명이 장군으로 진급했다. 이중 5명은 대장으로 진출했으며, 그중 2명은 국방장관까지 역임했다. 그러나 다수가 출신이 갖는 한계 때문에 자신들의 능력을 전부 발휘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이외에도 이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방법으로 육군은 종합간부라는 이름으로 육군종합학교에서 단기교육을 통해 7277명을 장교로 임관시켜 127명을 장군으로 진급시켰다.

이와 함께 가장 눈여겨 볼만한 것은 전쟁이 발발하자 부사관 중에서 전투력이 탁월한 자를 선발해 교육 없이 현장에서 바로 장교로 임관시켰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현지임관(現地任官) 장교다. 이렇게 해서 장교로 임관된 인원은 4240명에 달했으며 그중 12명이 장군으로 진급했고, 4명은 사단장까지 진출했다.

현재도 군인사법은 “전시에 있어서 탁월한 통솔력을 발휘한 준사관 및 부사관으로서 장관급지휘관(將官級指揮官)으로부터 현지임관의 추천을 받은 자”를 장교로 임관시킬 수 있게 규정해 놓고 있다.

또한 군인사법시행령 8조 2호에는 “사관후보생은 4년제 대학 졸업자. 다만, 4년제 대학 졸업자만으로써 군의 수요를 충족할 수 없을 때에는 고등학교졸업자 또는 이와 동등 이상의 학력을 가진 자나 준사관·부사관으로서 5년 이상 군복무경력을 가진 자로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15개기 6600여명 임관, 그러나 단 1명의 장성도 배출 못해

따라서 육군은 월남전이 한창이던 1966~67년 파월병력증파에 따른 우수한 전투역량을 가진 초급장교의 소요충족을 위해 부사관들 중에서 우수자원을 선발, 단기교육을 통해 장교로 임관시켜 시간과 예산을 절감하고, 풍부한 군복무경험을 활용해 전력증강에 기여토록하며, 부사관들에게 신분상승의 기회를 부여해 복무활성화 및 부사관의 인사적채 해소 등에 기여한다는 목적으로 보병과 포병위주로 1기에서 10기까지는 3667명을, 이어 1976년부터 80년까지는 전력증강으로 인한 간부확보계획에 따라 소요되는 4985명을 충원하기 위해 11기부터 15기까지 2930명 등 총 6597명을 단기사관이라는 이름 아래 장교로 임관시킨바 있다.

그러나 15개 기수 6597명이 장교로 임관했음에도 대령진급자가 전체기수를 통틀어 45명(0.7%)에 불과하고 더욱 놀라운 것은 지금까지 장군진급자가 단 1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비슷한 임관출신이라고 할 수 있는 현지임관 출신 4240명 중 12명, 종합학교 출신 7277명 중 127명, 갑종 출신 4만5242명 중 200여 명이 장군으로 승진한 것과 비교해 볼 때 엄청난 차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 육군은 1기에서 10기의 경우 파월병력 철수에 따른 정원감소로 인한 대위급 장교의 대량 전역과 11기에서 15기의 경우 장기복무자의 감소 등을 이유로 들면서 11기 이하가 앞으로 장군진급 대상권에 포함되기 때문에 장군으로의 진출기회가 남아있다고 하고 있으나 그래봐야 대령이 전부 13명밖에 안 되는 현재의 구조 하에서는 설득력이 없는 말이다.

육군은 지금까지 변화와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음에도 유독 인사부문에 있어서만은 아직도 전근대적인 군내 패권주의적 인사 관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비단 단기사관출신에게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지만, 단기사관에 대한 인사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육군 내 복수의 믿을만한 소식통들에 의하면 지난 2004년과 2005년 10월 정기인사 직전 장군진급대상이던 단기사관출신의 모 대령은 육사출신의 한 장성으로부터 “부사관 출신이 대령까지 진급했으면 출세한줄 알아야지 주제넘게 무슨 장군이냐”는 수모를 당해야 했으며, 또 다른 모 대령은 역시 또 다른 육사출신 장성으로부터 “단기사관은 양성목적이 초급장교활용에 있기 때문에 장군은 절대 안 된다”면서 “일반출신은 평정으로 장군진급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심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지금까지 단기사관출신 장교들의 진급률에 비춰볼 때 육군 내부의 정서를 그대로 대변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육군의 장교임관체계는 육사, 3사, 간호사관, 학군, 학사, 간부사관, 법무·군의·군종·정훈 등 특수사관의 7개 출신으로 구분된다. 이중 가장 엘리트 자원으로 평가받고 있는 육사출신 장교들의 경우 매년 300여 명이 임관해 대부분 중령까지는 별 어려움 없이 진급하고 있으며 대령은 60%, 장군은 15%의 진출율을 보장받고 있다.

물론 장차 육군의 주력으로 활용키 위해 엄선된 자들에게 최고의 교육을 통해 양성한 전문직업전사집단(專門職業戰士集團)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진급공석을 육사 대 비육사로 나누고 이를 50 대 50으로 적용한다니! 이건 육사출신들이 무조건 50%는 먹고 들어가겠다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장교임관을 위한 교육과정의 하나에 불과한 사관학교 교육 4년이 30여년 뒤에나 붙이게 될 장군계급장의 등용문(登龍門)이나 보증수표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초급장교의 자질은 국가전략과 연계해 군사전략을 수립하고 대부대작전을 지휘하는 등 고도의 판단력과 관리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풍부한 학술지식과 군사적 경험을 필요로 하는 고위 장성급 장교들과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명 임관 당시에 요구되는 자질과 기준이 아니며 임관 후 오랜 군대생활을 거치면서 본인들 스스로가 제도권이나 비제도권 교육을 불문하고 스스로 갈고 닦아감으로서 터득해야 하는 노력의 산물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기사관의 경우에는 임관시의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아니 이 이유 때문에 더욱 분발하고 정진하여 피눈물 나는 노력을 통해 자기분야에서 전문성을 입증하고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 학력을 구비해도 육군의 계획성 없는 때우기식 인원할당으로 임관 후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진급과 보직 등에서 다른 출신 장교들보다 통상 2~4년이 늦어 후배장교의 부하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아예 진급공석이 할당되지 않아 진급자료가 진급심사장에 제시되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한다.

  장교임관의 기준 학력제일주의

군대는 폭력의 총체적 관리집단이다. 따라서 군대의 존재가치는 전력유지를 통해 전쟁을 억제하고 미연에 방지하며 유사시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하는데 있다. 전쟁이 발발할 경우 국가의 존망이 군대에 달려있다고 볼 때 승리 이외에 그 어떤 것도 군대의 최고 가치일 수는 없다는 점에서 장교는 분명히 국가의 간성(干城)이다.

그러므로 장교로서의 기본자질은 투지에 불타며 진취적인 지휘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고, 애국심, 명예, 품위, 충성심, 직업적인 자긍심 등 기본 정신자세와 함께 장교의 임무와 역할수행에 필요한 지식, 기술, 능력 등을 얼마나 잘 갖추고 있는가와 관련해 규정되어져야 한다.

이는 과거에 그가 학력을 통해 어떠한 성취를 보였는가보다는 장교 직에 대한 적성의 관점에서 앞으로 장교로서의 임무와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재능이 있는가가 장교선발의 기준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수 장교를 학업성적 우수자로만 여기는 현재의 학력 중심의 장교임관제도는 전투에서의 승리를 궁극적 목표로 삼는 군대의 존재가치와도 배치되는 분명한 한계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능력고사 성적과 대학 성적은 장교선발의 가장 결정적인 요소로 활용되고 있는 반면, 전투임무수행과 지휘통솔 및 관리능력으로 대표되는 장교의 임무와 역할은 학교 교과영역에서의 성취 이상의 필요성을 갖는 것임에도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장교가 될 기본 자격조차 주지 않는다. 무슨 일을 하던지 ‘대학’자가 안 들어가면 무조건 얕보는 한국사회의 풍토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단기사관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간부사관 선발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육군은 1996년부터 병 및 부사관 중에서 우수자원을 장교로 선발한다는 목적 하에 2006년 현재까지 11개 기 2200여 명을 장교로 임관시켰으나 2006년을 기준으로도 부사관의 78%가 고졸학력이고 전문대졸 이상은 15%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자격기준을 육군 제3사관학교의 입학기준에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전문대학졸업 이상으로 규정함으로써 매년 지원자가 선발계획인원에 미달되는 현상이 지속됨으로서 야전지휘관들로 하여금 지원자 충원에 애로를 겪게 만들어 지휘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렇게 되자 2002년부터는 계획인원의 50%만 선발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학력이 더 높은 대졸출신의 학사장교에게 미선발 인원을 전환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국내외 박사학위자만 매년 1만 명씩 쏟아져 나오고 있는 그야말로 박사인플레이션시대에 언제까지 고학력만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과연 학력이 높다고 군인으로서의 능력과 자질이 우수한 것인지는 분명히 따져봐야 할 문제다. 하지만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육군이 전투전문가로서의 장교에게 요구되는 인재상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하나의 관행처럼 장교의 자질과 기준을 학력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은 교교졸업생의 82%가 대학에 진학하는 세계 최고의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는 국가로서 풍부한 고학력 자원 활용과 군의 과학화 및 정보화 추세에 따른 고지식과 고기능의 인력소요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경험하기 어렵고 일반화하기 어려운 전투수행을 주 임무로 하는 군대의 특성상 정훈장교가 아닌 전투병과 장교들이 학력만으로 병사들을 지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초급장교는 개인 및 소부대전술을 통해 전장에서 적을 직접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잘 쏘고 잘 뛰며 골목대장으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해 전투를 승리로 이끌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군사학교교육이든 부대군사교육이든 어떤 형태를 통해서든 군대정서와 전투감각에 확실하게 물들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다년간의 군복무 경험은 필수적으로서 “짭밥이 말해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군은 매년 전체 임관장교의 70% 정도를 단기복무 장교로 양성하고 있으며, 이들은 전체 육군 장교의 70%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래서는 진정한 의미의 전문직업군이라고 할 수 없다. 단기간의 의무복무만 마치고 제대하는 장교들에게 직업정신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뿐 아니라 그에 부합하는 복무기간의 미달로 장교로서 발휘해야 할 능력이 일정한 경지에 이르렀다고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은 대부분의 군관(장교)을 하전사(下戰士) 중에서 우수자를 선발하여 군관학교 양성과정을 통해 임관한다. 예외적으로 직발군관, 민간발탁군관, 예비군관 등이 운영되고 있으나 매우 소수에 불과하며, 남한과는 달리 장교와 부사관의 구분이 없고 장교들 간에도 출신별 파벌이 거의 없다.

미국은 일찍부터 병과 부사관들에게 간부후보생(OCS)제도를 통해 장교로 임관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웨스트포인트육군사관학교출신 뿐만 아니라 버지니아육군사관학교출신, 학군(ROTC)출신, 간부후보생출신 등이 대체적으로 능력에 따라 공평하게 상위계급으로 진출하고 있다.

‘마샬플랜’으로 유명한 조지 마샬 장군은 2년제인 버지니아육사를 나와 육군참모총장과 국무장관을 역임했다. 흑인으로 할렘가 빈민굴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콜린 파웰 장군은 학군장교출신으로 합참의장과 국무장관을 지냈고, 초대 한미연합사령관을 지낸 존 베시 장군은 사병에서부터 출발한 간부후보생출신으로 육군참모총장과 합참의장까지 승진했다.

중국도 장교선발은 병사에서 임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중국은 “군(軍)은 민(民)에서 나오고, 장(將)은 병(兵)에서 나온다”는 원칙에 따라 인민해방군 창군 당시부터 설사 취사병이라 하더라도 능력만 입증되면 즉시 군관으로 임관시켰다. 현재 중국군 수뇌부를 구성하고 있는 원로급 장성들은 거의가 사병에서부터 출발한 인물들이다. 이러한 현상은 계급제도가 부활된 뒤부터 군의 과학화와 전문화 추세에 따라 후퇴한 경향이 있으나 지금도 대다수의 군관을 사병생활을 거친 자들 중에서 선발하고 있다.

이외에도 독일을 비롯한 유럽지역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병 및 부사관들에게 근속승진을 통해 장교로 임관되는 문을 열어 놓고 있으며, 특히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의 과거 공산권 국가들에서는 이 같은 전통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일제잔재에서 비롯된 육군의 인사 관행

그러나 해방 후 일본군 초급 장교 및 부사관 출신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한국군은 친일청산의 성역으로 남아 구일본군의 잔재를 그대로 이어받고 여기에 한국전쟁 이후에는 점점 미군의 강한 영향력에 의해 미군적 요소까지 포함됨으로서 전통과는 거리가 먼 혼혈적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창군 60년인 현재까지도 일본군의 잘못된 관행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부분이 부사관 출신의 장교들을 업신여기는 육군의 단기/간부사관에 대한 인사정책과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순혈주의(純血主義)현상이다.

19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일본 육군 장교의 충원방법에는 4가지가 있었다. ① 당시 6년제였던 중학교 학제에서 군사고등중학교라고 할 수 있는 육군유년학교 출신의 육군사관학교 시험합격자, ② 일반 고등중학교 출신 가운데 육사시험에 합격한 자, ③ 각 병과의 부사관 출신 가운데 육사시험에 합격한 자(이 제도로 장교가 된 인원은 9000여명), ④ 각 병과의 준위 또는 상사가 특별채용이나 현지임관 형태로 소위로 진급하는 경우와 갑종간부로 임관하는 경우 등이다.

①, ②, ③은 준사관 및 부사관 출신은 물론 만주국의 2년제 신경군관학교에서 편입학한 경우에도 졸업 후에는 서로 간에 출신별로 구분되거나 차별대우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④는 대위까지만 진급할 수 있었고 그 이상은 불가능했다. 그나마 태평양전쟁 말기에 중령까지 진급을 시켰으나 그게 전부였다.

당시 일본은 프러시아적인 단일 사관학교제도의 도입으로 육군사관학교가 육군의 가장 유력한 장교양성기관이었으므로, 사관학교출신 이외에는 장교로 임관돼도 주류세력에 들어갈 수 없었다. 만주국의 신경군관학교에서 편입학하거나 아니면 갑종간부로 준·부사관에서 임관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들은 군내에서 비주류로 취급됐다. 그 결과 대다수의 고위 장교가 육사출신으로 육사의 성적은 군대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 장교의 진급과 주요 보직은 육사의 졸업서열에 의해 좌우됐다.

따라서 군인으로서의 운명을 결정하는 졸업서열을 잘 받기 위해 생도들은 사관학교의 교육이 요구하는 규격과 형식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에만 노력했고 가장 획일화된 자가 승리자가 됐다. 이처럼 자주성과 개성이 말살된 규격본위의 형식주의적 획일성은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의식과 함께 강한 자존심과 엘리트의식으로 나타나 육사졸업서열이 낮은 장교와 갑종장교를 비롯한 부사관출신 장교 및 부사관에 대한 멸시현상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일본육군의 최고학부이자 전술의 전당이라고 칭하는 육군대학교의 입학에서도 드러난다. 일본의 육군 장성들은 전부 천보전조(天保錢組) 즉 육대 출신들이다. 육대졸업휘장이 에도막부가 년호로 사용한 천보(天保)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타원형 동전인 천보전(天保錢)을 닮았다하여 이름 붙여진 이 휘장은 육군 내 엘리트 장교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당시 일본육군에서는 육대를 나오지 못하면 장군이 될 수 없었다. 육사졸업서열이 낮았던 장교나 부사관출신 장교들이 각고 정진하여 육대의 필기시험에 합격을 거듭해도 재심사에서는 전부 탈락한다. 이는 육대졸업자 명부에 부사관출신 장교가 단 한 명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러일전쟁 직후부터 일본육군의 일부 선각자들은 전투에서 부사관과 부사관출신 장교들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러일전쟁의 경험에 비추어 미래의 전쟁에서도 부사관으로 장교를 보충하는 것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 “제일선 중·소대장의 격렬한 소모를 메우기 위해서는 부사관이나 부사관출신의 장교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일본육군 수뇌부는 패전의 마지막 순간까지 부사관출신 장교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일본 육군중장출신인 누카다 히로시의 말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왜 조금 일찍부터 부사관을 대우해서 장교로 가는 길을 열고, 장교가 되고 나서도 사관학교 출신자와 같이 진급을 촉진하지 않았는가.”

  무관심과 주먹구구식 부사관 인사관리 

이렇게 볼 때 만약 임관과정 하나만 가지고 모든 기준을 삼는다면 군대생활에 가장 쉽게 적응하고 실무에 가장 능률적일 수 있는 장교집단은 군대생활 경험이 많은 부사관출신 장교들일 것이다 이와 함께 장교임관 전에 전문직업전사로서의 자질을 가장 확실하게 분별해 낼 수 있는 것은 역시 군대의 말단에서부터 출발해 비교적 장기간의 복무경험을 가진 부사관들일 것이다.

그런데도 육군은 지금까지 부사관출신 장교들에게는 학력이 짧고 교양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양심적이고 공평한 진급기회를 부여했다고 보기 어려운 인사관리를 실시해 왔다. 또 부사관에 대한 인사관리는 어떠한가?

일반직 공무원은 물론 안전보장업무에 종사하는 같은 특정직 공무원인 경찰 및 소방공무원의 경우 단일 신분의 계급체계로서 자신의 업무수행 역량에 따라 최하위직에서 출발해 최고위직까지 근속승진이 가능하지만 유일하게 한국군의 부사관은 자신의 업무역량이 아무리 탁월하고 군대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뜨거워도 전쟁이 나지 않는 한 신분간의 벽을 넘어설 수 없도록 철저하게 법제화돼 있어 장교로 진출하는데 한계에 부딪치고 만다.

이에 대해 육군의 한 관계자는 부사관을 장교로 근속 승진시키기 위한 제도를 추진하려해도 많은 부사관들이 책임의 범위가 더 넓은 장교의 직책을 수행하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설사 제도를 만들어도 노련한 군대생활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고참부사관들은 임관연령제한으로 불가능하며, 또 진급을 못하면 제대해야 하는 장교보다는 진급이 제한돼 있어도 정년까지 갈 수 있는 부사관으로 남아 있으려고 하기 때문에 지원자가 많지 않아 제도의 계속성 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중대한 오류를 안고 있다. 군인사법 제15조는 “준사관 또는 부사관으로부터 임용되는 소위의 최고연령은 35세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법적인 측면에서는 임관연령에 최대한의 융통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사관출신 장교들에게도 육사출신 장교들과 같은 동일한 인사관리를 실시한다면 누가 책임이 두려워 장교가 되는 것을 원치 않겠느냐는 점이다. 대부분 대위까지만 활용하고 용도폐기 시키고 있으니 누군들 장교가 되길 원하겠는가. 말이 나왔으니 하는 거지만 불공평한 인사관리는 비단 부사관출신 장교들 뿐 아니라 모든 비육사출신 장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례 아닌가?

어찌됐던 부사관은 이처럼 근본적으로 직업으로서의 메리트와 비전이 없기 때문에 군대에서 진짜 필요한 유능한 부사관들은 장기복무를 거부하고 군문을 떠나고 있으며, 전역한 뒤에도 주변의 후배들에게 부사관 지원을 만류하고 있는 것이다. IMF 이후 생활고로 인해 고학력자들을 포함해 지원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부사관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나 불합리한 인사제도가 개선돼 나타난 근본적인 결과라고는 할 수 없다.

지금까지 육군은 대규모 병력에 의한 노동집약적 군구조를 유지해 왔으나 앞으로는 계속되는 병의 복무기간 단축과 이에 따른 단기복무 초급장교의 획득감소에 직면하게 될 것인바 이로 인한 부사관의 양적 질적인 소요증가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게 변해 가는 데도 국방부 본부에는 부사관의 인사관리를 전담할 부사관과 하나 없다. 물론 군인사법 제13조 제3항에는 “부사관의 임용은 참모총장이 행한다”고 규정되어 있으나 동법 제14조에는 “준사관 및 부사관의 임용에 관한 사항은 국방부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국방부는 상급기관의 자격으로 부사관 관리에 관한 정책방향과 지침을 통해 각군을 얼마든지 지시·감독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물론 육군을 제외한 해·공군에도 부사관 전담부서가 없다는 것은 한국군의 부사관 인사관리가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벌써 20여 년 전부터 육군의 일부 뜻있는 장교들과 많은 부사관들이 우수인재의 안정적 확보와 자질향상을 위해 훈련소 수준에 불과한 육군부사관학교의 2년제 전문대학과정으로의 승격을 수없이 건의해 왔지만 이에 대해 육군은 학·군 제휴협약으로 특수학과를 설치한 13개 대학과 부사관학과 개설 14개 대학 등으로 우수인력확보에는 문제가 없다며 부사관학교의 전문대 승격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다.

만약 육군의 논리대로라면 학군무관후보생제도(ROTC)나 학사장교제도 그리고 간호전문대학 등이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 육군사관학교나 국군간호사관학교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왜 사관학교에는 엄청난 예산을 들여 고급인력을 양성해 내면서도 부사관학교는 훈련소 수준에 머물러 있게 하는가? 어떤 장교의 말처럼 “부사관이 너무 똑똑하면 장교가 지휘하는데 문제가 있”기 때문인가?

육군은 툭하면 군대의 허리인 부사관의 학력수준이 병사보다 낮아 부대관리와 교육훈련 및 리더십 발휘의 제한요소로 작용한다며 판단력·이해력·합리적인 사고력향상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말과는 달리 그동안 육군의 부사관에 대한 인사관리는 고의적인 무관심과 무성의로 일관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육군부사관학교의 전문대학과정 승격에 대해 육군이 명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것은 그 단적인 예에 속한다.

하지만 계속 이런식이 돼서는 곤란하다. “부사관의 기본 학력이 전문대학 수준이 돼야 한다는데 이의가 없다”면 부사관학교의 전문대학 승격을 통한 부사관의 질적 향상 및 우수자에 대한 육군 제3사관학교 입교와 일반대학 3학년 편입학,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자의 정규 대학 위탁교육 등을 통한 장교진출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주인의식을 가지고 복무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육군은 하루빨리 현재와 같은 분권적 부사관 인사관리체계에서 벗어나 장교에 준하는 인사관리로 필요인력을 장기 활용할 수 있는 안정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월간 '신동아' 2007년 10월호에 기고한 것을 대폭 보강한 것임



#단기사관#간부사관#갑종간부#현지임관#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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