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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를 허용키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찬반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6년여간 100여명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변호해 온 김수정 변호사의 글을 전재한다. [편집자말]
 논산 육군훈련소 연병장에서 훈련병들이 제식훈련을 받고 있다(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논산 육군훈련소 연병장에서 훈련병들이 제식훈련을 받고 있다(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조용학

정부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를 허용한 이번 조치를 진심으로 환영하며, 조속한 시일 내에 대체복무제가 도입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나는 2001년 5월 종교적 신앙(여호와의 증인)에 따라 병역 혹은 총을 들기를 거부하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교 신도들을 변호하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약 100여명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변호했다. 이중에는 여호와의 증인교 신도뿐만 아니라 불교의 불살생계율과 평화주의자의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도 있었다.

2001년 당시의 법정은 가혹하였다. '지금이라도 총을 잡으라는 상관의 명령을 이행한다면 용서해줄 수도 있다'는 회유는 물론 홍안의 어린 그들이 감옥행을 결심할 만큼의 독한(?) 양심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 부모나 교단의 사주에 의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피력하며 심지어 방청석에 앉아 있는 부모를 일으켜 세우기도 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이러한 가혹한 처사는 그 역사가 사뭇 오래된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 잔혹사

대한민국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는 일제 식민지 시절이던 1939년 최초의 처벌 기록이 보고 된 이래 지금까지 처벌된 숫자가 1만여명에 달한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는 본질적으로 자신의 신념이 유일한 증거일 수밖에 없고 도주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거의 예외 없이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현재 재판을 받고 있거나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이들 중 80%가 2001년 중반 이전에 군사 재판을 통해 군형법 제44조에 근거한 항명죄로 법정 최고형인 3년형을 기계적으로 선고 받았다. 아버지나 형이 같은 이유로 투옥되거나, 형제가 동시에 투옥된 경우에도 양형에 있어 거의 참작이 되지 않았다.

또한 이들 가운데는 의사나 카이스트 등 특수 전공자로서 4주의 기본군사훈련만 이수하면 보충역의 한 형태인 전문연구요원 제도나 산업특례요원 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기본 군사훈련을 면제받을 수 없어 군형법, 병역법에 의거 실형을 선고 받고 복역한 경우도 있었다. 2001년 중반 이후로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대부분이 군 입대 자체를 거부하여 군형법 대신 병역법이 적용되었으며, 이에 따라 이들은 군사법원이 아닌 민간법정을 통해 재판을 받아 18~2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투옥되어, 전례 없는 국가주의와 강화된 병역법으로 인해 매우 가혹한 고문, 구타, 가혹한 처벌을 경험하기도 했다. 1975년 당시 병무청 직원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입영율 100%를 달성하라는 지시를 내림에 따라 징집영장도 없이 여호와의 증인교 신자들의 집회 장소를 에워싸고 있다가 징집 연령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는 젊은이들을 군부대에 강제로 입소시킨 뒤 그곳에서 징집영장을 발부하는 일도 있었다.

고문, 가혹행위, 사망... 이를 각오하고 '양심'을 지키려는 이유는?

이들이 재판을 받기까지 투옥되어 있던 군 영창에서 고문과 가혹 행위가 자행됐다. 1976년 강제로 징집된 여호와의 증인 이춘길은 창원 39사단 헌병대 영창에서 구타로 인해 사망하기도 하였으며, 또한 이 무렵에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가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는 날 교도소 정문에서 병무청 직원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그에게 징집 혹은 예비군 소집 영장을 제시하고 다시 재판과 투옥을 하는 과정을 반복시켜 여러 번 투옥하는 사례도 있었다.

또한, 이들은 1991년경까지 가석방 대상 자체에서 제외되었으며, 이후에도 일반 재소자들과 달리 여호와의 증인교 신도인 병역거부자들은 가석방 심사기준에서 특별한 유형으로 분류되어 심사됐다. 이들은 교도소 내에서 대표적인 1급 모범수로 평가받고 있음에도 통상의 경우 50%이상 형기를 복역하면 가석방의 혜택이 주어지는데 반하여, 형기의 75%이상을 복역해야 가석방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경축일을 비롯하여 매년 몇 차례씩 정부가 전체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면·복권 대상에도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또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수감자들은 외부로부터 정기적으로 교직자의 방문을 받는 등 종교활동이 허용되고 있었으나, 2003년 중반 이전까지는 일체의 종교 활동을 허용 받지 못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석방된 후에도 전과로 인해 공무원 임용자격이 없으며, 민간 기업에 취업하고자 하는 경우에도 신원 조회에서 탈락하는 등의 사회적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병역법 제76조에 따라 관청허가업종 등에 종사하는 데 있어서도 제한을 받고 있다. 2004년 2월경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인한 수감자들이 521명으로 세계 최다를 기록하기도 하였고, 2004년 10월에는 병역을 거부한 여호와증인교의 신자인 김아무개씨가 캐나다에서 종교난민으로 인정받기도 하였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이러한 가혹한 처사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한국은 군사독재정권하에서 국가안보를 최우선시하는 정책을 펴왔고, 남북 분단 상황은 병역의 의무를 신성시하는 관행을 존속시켜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의 질적 개선이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등을 논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였으나, 반면 극소수 특권층은 그들의 지위를 이용하여 자식들의 병역을 면제받는 등 이로 인하여 군대는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만 가는 곳으로 인식되는 등 국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 가중하는 곳이 되기도 하였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 <방문자>.
여호와의 증인 신자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 <방문자>. ⓒ

대체 복무 결정은 환영할 일, 아쉬운 점은...

이 때문에 국민들의 관심은 병역제도의 개선보다는 병역의무의 형평성에 기한 병역기피의 방지에 있었다. 이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이나, 사병들의 인권 등의 문제를 논의하기 어렵게 만드는 원인 중의 하나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1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한 주간지에 소개된 것을 계기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문제뿐만 아니라, 군대내의 사병들의 인권문제, 제대군인에 대한 지원문제 등 군의 개혁 또한 다양하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의 인정과 사병과 제대군인들의 권리는 전혀 배치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서로가 격려하며 달려가는 쌍두마차와도 같은 모습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번 정부가 발표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도입은 진정 환영할 만한 조치이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한 대체복무제와 관련하여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대체복무자들의 복무기간을 현역병의 2배로 하였고, 군복무 중인 자 및 예비군 훈련중인 자의 대체복무는 인정하지 아니하였다.

현역병들과의 형평성, 병역기피자의 악용가능성,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라는 현실 여건을 고려하여 불가피하게 이러한 조치를 선택한 것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한민국도 동의표명을 한 유엔 인권이사회 결의 제77호는 이미 군복무를 하고 있는 사람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이 있으며, 대체복무는 형벌적 성격이 아니어야 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정부조치에 따르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현역병의 복무기간이 18개월로 단축된다 하더라도 최소한 36개월을 대체 복무해야 한다. 지나치게 긴 복무기간은 사실상 감옥행을 대신하는 형벌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현역병의 경우에도 얼마든지 자신의 양심에 대한 고뇌 끝에 총을 들기를 거부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노회찬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현역병의 거부권을 인정하고 있으며, 노회찬 의원과 임종인의 의원의 법안 모두 대체복무기간은 현역병의 1. 5배로 하고 있다). 현역병에 대하여도 비전투역등에서 복무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번 정부의 발표를 계기로 여러 현실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논의가 성숙되는 과정을 거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의 인정이 완전한 형태에 이를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국가 안보 위태롭다? 분단 독일·대만도 대체복무 허용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이 인정되는 것과 관련하여, 가장 많은 우려 중 하나는 국가 안보가 위태로워 질 것이라는 우려일 것이다. 외국의 사례가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이 평화 시가 아니라 전쟁의 시기에(프랑스의 알제리 전쟁, 미국의 남북전쟁, 베트남 전쟁, 제1, 2차 세계대전 등)에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어 인정되고 그 인정범위가 확대된 역사와 우리와 같이 분단국가였던 독일, 현재도 중국과 대치 중인 대만의 사례에서 위와 같은 우려가 기우일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독일(통일 전 서독)은 2차 대전 이후 전쟁의 광기에 휩쓸린 나치제국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하여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수단으로서 국민 각자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독일의 헌법인 기본권에 명시하였으나, 오히려 우월적 지위에서 동독과의 통일을 주도하였으며, 병역의무의 대체로 출발한 시민 봉사제도는 독일이 사회복지국가로서 자리 잡는데 중요한 요소로 기능하였다.

대만의 경우는 중국과 대치중이지만 군 정예화, 소수화, 강력화를 특징으로 한 현대화 부대를 구축하기로 하고 국가안전과 병역 공평성에 대한 고려를 바탕으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였고, 2000년 7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를 시행하였다. 시행결과, 병역회피를 목적으로 병역거부를 주장하는 사례가 드러나지 않아 2002년 3월경 현역병보다 1.5배 길었던 기존의 복무기간을 더 감축하였다.

나는 일각의 우려처럼, 갑작스레 많은 사람들이 병역거부 또는 병역기피를 하여, 국가안보가 심각히 위협받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란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양심 때문에 군대에 갈 수 없는 것이지, 단순히 군대에 가기 싫은 것이 아니다.

국가 위해 총을 든다는 다수의 양심과 총을 들 수 없다는 소수의 양심

정부의 발표에서 보았듯이 앞으로 도입될 대체복무는 어쩌면 현역입대보다 훨씬 더 가혹한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도대체 군대에 가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대체복무를 견뎌낼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대체복무는 병역 의무를 면제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할 뿐이다(현재 존재하고 있는 공익요원도 사실 대체복무의 한 형태이다. 물론 정부가 발표한 대체복무제와는 복무기간, 복무역, 집단생활 등에서 질적 차이가 있지만). 물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인지 여부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여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이제는 국가와 민족, 평화를 위해서 총을 들 수 있는 다수의 양심들이 평화를 위해 총을 들 수 없는 소수의 양심에게 위로와 연대의 손을 내밀 때가 아닐까. 다수가 소수를 더 이상 적대시 하지 아니하고,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머리를 마주하고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는 물꼬는 터졌다. 정부가 한발 내 딘 발걸음을 이제는 국회가 나서서 끌고 가야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자들(Conscientious Objecters)에 대하여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용어를 일반적으로 더 많이 사용한다. 혹자는 '양심적’이라는 뜻을 오해하여 군에 입대하는 사람들은 ‘비양심적’이라는 것이냐 라는 비판하기도 한다. 이에 일부에서는 이러한 비판에 수긍해 ‘자신의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다는 뜻’으로 이들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로 부르기로 하였다. 이러한 취지에 공감하여 필자 또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로 서술하기로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대체복무#김수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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